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믕됴 Aug 08. 2023

폭염에도 한 번도 안 싸우고 3박4일 여행하는 법

이번에야말로 싸울 줄 알았는데…


 결혼 준비를 시작하고부터는 새는 돈을 틀어막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이번 도쿄 여행은 예랑이가 말을 꺼냈을 때부터 ’안 가면 안될까…?‘를 여러 번 물어봤다. 요즘 환율이 어떻니 물가가 어떻니하며, 국내여행에 비하면 일본 여행이 낫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리 그래도 항공권 수십만원에 ’여기까지 왔는데‘ 심리가 더해지면 해외 여행이 더 저렴할 리가 없다. 그런데 웬만해선 내 생각에 따라주는 예랑이가 이번 여행만큼은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몇 달 전부터 항공권이며 숙박을 결제하고, 안 가면 안되냐고 물으면 고집 비슷한 것을 피웠다. 그걸 고집이라고 부르는 건, 별달리 나를 설득하려고 여러 근거를 대기 보다는 그냥 여행을 가고 싶다는 자기 생각을 계속 말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비용이 부족하지도 않은 지금같은 맥락에서는 나도 그냥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번엔 내가 져주기로 했다. 여행 자체가 싫은 것도 아니었고, 일본은 언젠가 한 번은 다녀오고 싶었던데다, 요즘 환율이나 물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싼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예랑이한테는 농담처럼 말했던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번에 여행 가서는 싸우지 않을까?”

 “싸우려고 여행 가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결혼하고 나서 맨날 싸우면 어떡해? 결혼 전에 싸우고 화해는 한 번 해봐야지.“


 물론 내가 경험하고 싶은 건 싸움 자체보다는 이후의 화해 과정이지만, 화해라는 것은 본디 갈등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보다 습하고 덥다는 도쿄의 여름은 투닥투닥의 도화선으로서 완벽한 세팅이라 할 수 있다. 도쿄 주민들은 정작 외출을 삼가고 방 안에서 에어컨과 함께 보낼 폭염의 중심을, 우리는 꼭 붙어서 함께 걸어다녀야 한다. 1년의 연애와 6개월의 결혼준비를 싸움 한 번 없이 잘 엮어나가고 있는 우리라지만, 아무리 사이가 좋고 성격이 잘 맞아도 살인까지 난다는 불쾌지수 폭주기간을 무사히 넘길 리는 없다. 거기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행 기간이 내가 한 달에 한 번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시기와도 딱 맞아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중 기분 상할 만한 상황이 많이 벌어졌다. 내가 준비한 체크카드가 일본 ATM에서 자꾸 오류가 발생한다던지, 편의점에서 고른 도시락이나 디저트가 하나같이 별로였다던지, 땡볕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동선이 꼬인다던지, 비 안 올 거니까 우산 챙기지 말라고 했는데 점심 먹으러 식당 들어간 사이에 미친듯이 뇌우가 퍼붓기 시작한다던지, 잔뜩 기대하며 더위 속에서 한참 기다린 레인보우 브릿지 점등이 생각보다 별로였다던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의 대기 줄이 너무 길다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주변 다른 음식점들도 다 줄이 길어서 끼니를 놓친다던지.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는 싸우지 못했다. 오히려 웬만한 일은 어떻게든 때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서로에 대한 신뢰만 생겼을 뿐이다. 체크카드 오류는 내가 카드 앱에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예랑이는 옆에서 열심히 검색을 했고, 맛 없는 도시락이나 디저트는 고른 사람 안목 대신 만든 사람을 탓했다. 비 안 오니까 넣어두라고 했던 우산 대신 땡볕에서 버티려고 챙긴 우양산으로 어떻게든 지하철역까지 이동해서 비를 잘 피하는데 성공했고, 실망스러웠던 레인보우 브릿지 대신 만족스러웠던 이야기만 많이 나눴다. 원래 가려던 맛집 대신 다른 식당을 찾느라 시내 산책을 좀 했고, 끼니는 공항에서 때우며 기념품도 덤으로 샀다.


  내가 이번에도 싸우는 걸 잊어버렸다는 걸 깨달은 건 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고 나서였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되짚어보면 싸울만한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는데, 내가 참은 것도, 예랑이가 참아준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는 왜 안 싸우는 걸까? 솔직히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가 싸우기 전부터 화해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 처리하되 솔직하게 나누고, 원하는 건 명확하게 말하고. 싸우고 나서 관계 회복을 하기 위해 나누는 대화를 평소에 나누고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정말로 싸워서 이번 여행에서의 경험과 비교해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정확한 이유는 영영 모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해피엔딩과 이혼 이야기를 동시에 사랑하는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