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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이 Oct 31. 2023

14. 엎친데 코로나

암환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 아빠는 2023년 5월 '변연부 B세포 림프종 / MALT Lymphoma'(혈액암/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 PC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정해진 항암 일정은 총 6차. 그래서 3차까지 마치고 2주 뒤, 중간 검사로 CT를 찍었다. 그리고 또 1주일 후 진료를 보러 갔는데 교수님은 별다른 말씀 없으셨고 일단 6차까지 쭉 해보자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또 검사를 해 보자고. 그래서 4차 항암 주사를 맞고 집으로 왔다.

 

4차 후 1주일. 아빠가 코로나에 걸리셨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고 집에 왔는데, 귀가한 아빠가 자꾸 기침을 하셨다. 단순히 감기나 냉방병 일 줄 알았는데, 혹시나 싶어 자가키트로 검사해 보니 선명한 두 줄이 떴다.


처음 항암을 시작하면서도 간호사 선생님이 코로나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노약자들에게는 코로나가 폐렴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항암 치료 중에는 면역력이 떨어져 있으니 더더욱 주의하라고 하셨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마스크 의무 착용은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대형 병원 방문 때는 마스크를 써야 했고 코로나에 걸리면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시 코로나에 걸려 치료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봐, 그리고 혹 상태가 악화될까 봐 걱정되어 우리 가족은 언제나 마스크를 끼고 다녔다. 그런데... 엄한 데서 걸려오셔 버렸다... (엄마와 나는 음성)


코로나를 확인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간호사 선생님께 연락하려 했지만 이미 시간이 6시였다 (간호사 선생님과 연락은 8:30-17:30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도 연결해 보았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대처를 하시라고 했다. 기침이 아주 심하고 고열이 나면 응급실로 오시거나 (하지만 응급실 대기가 3시간이라고 하셨다), 집 근처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가정에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다음날 아침, 연락을 남겨두었더니 간호사 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일단은 잘 관찰하시되 코로나 치료제인 팍스로비드 처방을 권하셨다. 집 근처 병원에 방문하여 항암 중임을 알리고 폐렴이 의심되니 CT도 찍어보고 팍스로비드를 받아 드시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동네 내과에 CT 촬영과 팍스로비드 처방이 가능한지 미리 전화로 확인하고, 근처 약국에도 팍스로비드를 보유했는지 확인했다. 그대로 부모님께 전하니 '굳이 팍스로비드까지...'라며 집에서 타이레놀만 드실 생각을 했다. 확 짜증이 났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잖아요!!"


아침을 먹고 아빠와 동네 내과로 향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진료를 보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우리 말을 다 들었지만 팍스로비드 처방에는 회의적이었다. CT도 찍지 않았다. 약간 찝찝했지만 오히려 아빠는 안도하신 듯했다. 일단 (내가 보아도) 증상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증상별 약을 처방받아 병원을 나섰다.




다행히 아빠는 크게 힘들지 않게 코로나가 지나갔다. 지난 1월달에 3차 백신을 맞은 덕분일까, 폐렴 예방 접종 덕분일까. 어쨌든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도 기침이 좀 심해지신 것 같아 인터넷에서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항상 답답할 때에는 인터넷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항암 도중 코로나에 걸렸었던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찾아보니 폐렴이 와서 응급실에 갔다거니, 혼자 있을 때 아파서 서러웠다거나, 시골이라 구급차를 불렀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보였다.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간혹 어떤 병원을 선택하는 게 좋을지 묻는 글을 보게 된다. 가까운 병원, 먼 유명 병원, 입원 대기가 긴 병원, 유명한 선생님이 계신 병원, 심지어 지인(의 지인)이 다니는 병원 등. 우리야 아빠 친구분의 추천으로 다른 곳 알아보지도 않고 신촌 세브란스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암'이라는 적과 싸우기 위한 동료 혹은 지휘관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임은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곳' 혹은 '다니기 쉬운 곳'을 추천한다. 항암을 하면서 어떤 변수가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다. 근처에 병원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마음이 놓인다. 




며칠이 지나고,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무심결에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네"라고 내뱉었다. 그렇구나, 매일매일이 정말로 살얼음판이구나, 나... 정신적으로 지치는 게 느껴진다. 매사에 예민해지고, 집에서 부모님과 부딪히는 게 힘들다. 그래서 자꾸만 밖으로 도는데, 그러면서 또 죄책감도 느낀다.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은, 하루가 다 끝나고, 어떤 하루를 보냈던 상관없이, 침대에 누웠을 때.


코로나 소동이 한바탕 지나고 아빠는 무사히 5차 항암을 마쳤다. 병원을 다녀온 날 밤에 자러 들어가는데, 아빠가 "오늘 수고했다"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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