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불안감을 갖고 살아간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끊임없이 경쟁에 경쟁을 반복해서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하는 신자유주의시대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어느정도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퀴어라면, 조금 더 많은 것들이 따라 붙는다. 조금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반반이다. 내 불안과 우울은 퀴어-특히, 에이엄에-친화적이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에 심해진 부분도 있지만, 그것만 된다고 해서 해소될 것은 아니다.
나는 상당히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유전적인 영향도 있을테고 어릴 적의 경험이나 환경도 영향이 있을것이다. 정확히 특정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보다도 나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어도 보통의 사람보다 불안도가 높은 사람으로 자랐을것이다. 어린시절 특별한 폭력에 노출된 적 없음에도 이정도의 불안증을 갖고있으니, 아마 누군가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증명해야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던간에 불안가득하게 삶을 살았을거라 생각한다.
나의 이런 불안이 본격적으로 삶에서 드러나고 일상에 자리잡게 된 것은 수험시절 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보통보다 쉽게불안한 사람이긴 했을것이다. 아무튼,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기는고등학교 3학년이다. 정체화를 한 시기이기도 헀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즈음부터 지난한 디나이얼 시기를 거쳐서 무성애자로 정체화했다. 그런 와중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리 없으니 정시파였음에도 수능은 대차게 말아먹었다.(심지어 와중에 마킹 실수까지해서 정말 깜찍한 성적표를 받게되었다.)
다시한번 말하자면, 나는 내 평생에 걸쳐있었을 우울과 불안을 그때를 시작으로 해서 기억한다. 자습시간에 들었던 무성애자 팟캐스트, 몇 번씩 뒤적거렸던 온갖 퀴어 관련한 위키항목들. 면접 연습을 하러간 반친구들 때문에 조금 비어있던 교실, 자습을 시키고 떠난 선생님의 자리, 교탁 근처에 놓인 출석부, 주변에서 수학문제를 풀고 유명강사의 과학탐구 인강을 듣고있는 친구들까지. 공부를 안하는 스스로가 한심하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정하지못해 우왕좌왕하고 순환되는 생각들. 그런 스스로가 불쌍하기도 했던 것 같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 정말 다를까. 사실 다들 잘 사는데 그냥 지금 내가 공부하기싫어서 이러는거 아닐까. 지금 내가 퀴어인게 중요한가. 퀴어든 아니든 당장 두어달뒤가 수능인데, 당장 저녁까지 풀어가야하는 수학문제는 손도 못대고 이러고 있네. 차라리 잠이라도 자두는게 나을텐데. 아, 우울하다. 내가, 스스로가, 너무, 애처롭다.
가끔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같은 세상이 아니라 덜 유성애중심적인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덜 불안해해도 괜찮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