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맑은 날이었지만 코끝은 쨍하게 얼어붙었다. 같이 가는 내내 바람은 나보다 더 오돌오돌 떨고, 작은 종소리에 다방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약속한 사람인가 하는 물음의 눈빛. 흙 다방은 상호처럼 지하에 동굴 하나 파 놓은 것 같다. 다방 안에서 가장 밝은 그곳. 커다란 수족관 옆에서 한꺼번에 들려진 손의 숫자가 오늘은 적다. 항상 내가 가장 늦었는데. 날씨 탓인가 보다. 미지근한 방바닥에 등짝 비비다가 눌어붙었는지 가장 할 일 없는 영이형이 없다. 허연 분칠이 갈라놓은 주름이 먼저 보이는 마담 아줌마가 날아온 엽차잔을 문지르며 건너다보니 아직 차 주문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버스럭 거리며 내려놓은 빵 봉투에 시선이 몰리고 커피 네 잔의 주문을 끝으로 빵봉투는 열렸다. 몇 개인지는 몰라도 모카빵 속에 있는 건포도를 찾는 손길을 바라보며 웃었던 그날! 겨울이 이즈음쯤이었을 거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했던, 어쩌면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설익은 청년기. 생각은 많아도 행동할 수 없어서 말 먹음 당하던. 모두 아주 조용하게 글을 썼었지. 조금씩 뜯어 동굴이 되어버린 식빵처럼 우리는 야곰야곰 우리의 젊은 날을 그렇게 먹어 치웠지. 그 겨울 내내.
우리는 흙다방을 잊었어. 누구도 글을 쓰지 않았지.
밤이 멈춰있는 듯한 새벽. 절대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검푸른 색채. 나의 20대를 기억해내는데 오래 걸렸다. 일부러 지우고 싶었었는데. 1983년의 겨울.
2024년의 겨울.
여의도 국회 앞 찬바닥에 누질러 앉아 악을 썼다. 소리를 낼 수 있다. 밝은 표정의 젊은이들이 반짝이고 있다. 고맙다. 젊은이들을 보며 왜 내 어깨가 올라가는 건지. 참 잘 컸다. 그들의 오늘이 새벽처럼 환해지라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