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아파트. 나는 빈집에 혼자 남았고, 각자 다른 날짜에 집을 나간 반려인간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살림이 하나씩 줄더니 급기야 아주 작은 소리에도 집안 전체가 왕! 하고 울린다. 한 달 전까지 시끄러운 고함소리와 서글픈 울음으로 가득했던 집에는 이제 영문을 모른 채 이 방 저 방을 다니는 개 한 마리만 남았다. 이러다가 진짜 두 인간이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혼? 그거 당신들은 서로(한 명)만 잃지만 내 입장에서는 둘을 잃는 거라고.'
서쪽 베란다에 드리웠던 노을이 1층으로 가라앉고 하늘에 반달이 오를 때, 띠띠띠... 삐리릭!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반려인간 중에 한 명이 벽과 천장만 허옇게 드러난 벌거벗은 집으로 들어섰다. 현관의 안전등 불빛 아래에서 우왕좌왕하던 나는 고개를 들고 인간의 정체를 확인하는데.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나에게 일 번인 인간(남자)을 다시는 보지 못할 예감에 확 서글퍼진다. 하지만 물에 사료만 말아먹다가 고독사할 뻔한 독거노견의 생은 피했으니 지금은 혼신을 다해서 여자를 반겨야 할 때이다.
타_닥, 타_닥,
내 발톱이 장판을 치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걸을 때마다 기이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나를 번쩍 들어올리고 숨이 막히도록 목을 조인다.
'뭐지, 남자와 헤어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 인간이 드디어 미쳐서 내 숨을 먼저 끊고 이 집에서 자신도 죽겠다는 건가. 그럼 우리의 시신은 누가 발견하고 장례는 누가 치르나. 나 홀로 죽음은 생각해 봤어도 함께하는 죽음은 상상도 못 했는데.'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여자가 더 세게 안는다.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에 내 앞발과 뒷발을 차례대로 놓고 하나씩 주무르는데.
"네 발소리 때문에 네가 놀랐겠어? 하하."
입은 날 보고 웃는데 여자의 눈에는 슬픔과 화가 잔뜩 서렸다. 혼자 밤을 맞이했을 내가 안쓰러웠던 여자는 타닥타닥, 빈 집에 울리는 발소리를 멈추게 하려고 나를 공중으로 떠올린 것이다.
"개새ㄲ, 아니 (개)자식을 버린 천하의 시방새키!"
우리집 반려인간의 욕에는 내 종족에 대한 배려가 있다.
두 인간이 동거를 시작한 시절, 동거인(여자)의 상의 없이 남자가 생후 4개월 된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왔고 그 개가 바로 나다. 나는 지금 남자가 보고 싶은데 여자는 집을 나간 남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남자는 6년 동안 셋이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여자가 마지막 밤을 보낼 작은 방에 이불 한 채를 놓았을 것이다. 필요 없는 짐이 생길지도 모르니 싱크대에 종량제 봉투도 한 장 올려두고, 졸졸 따라다니는 개에게 오늘 밤에는 여자가 올 것이니 안심하라며 토닥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을 훑다가 개와 눈을 맞추고. 개의 시선을 피하고. 개에게 등을 지고. 집을 나갔을 것이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이 메시지는 집밖에서 보냈을까. 한때 열렬히 아끼고 절망을 나누었던 사람이 '개를 외면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여자는 소름이 올랐다.
지금 나보다 더 떨고 있는 이 인간을 위해서 나는 어떡해야 하는가. 일단 여자의 품속에서 발버둥을 쳐본다. 발버둥이라고는 하나 여자의 정신을 깨우려는 발길질이다.
"결혼? 망했고, 남은 건 살아있는 목숨 둘뿐이라고!"
인간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눈동자에 느낌표를 띄우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당장 알아들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나의 소리가 인간에게 닿을 거라는 믿음으로.
다음 날 새벽, 여자가 마지막 짐을 캐리어에 구겨 넣고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나도, 당신도 이번 생의 첫 반려인간과 헤어졌네요. 이렇게 아픈 것을, 인간들은 왜 산 채로 이별을 하는 거죠. 그나저나 좁은 가방에 갇힌 지 2시간째. 나는 버글거리는 인파에 숨이 차는데 케이지 밖의 당신은 울고 있네요. 나를 꺼내 주세요, 말똥 만한 눈물을 맞을래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