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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Oct 22. 2023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 마을은 중산간이라 아이들이 방과 후에 사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다. 5, 6학년쯤 되면 혼자 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집이 근처가 아니면 누군가 데리러 올 때까지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규모가 작은 학교라서 초등 방과 후 돌봄 교실도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는 집은 어려움이 생긴다.


아이들이 저녁까지 운동장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마을문고를 운영해 온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긴 준비과정을 통해 제주도교육청에서 공모하는 마을키움터 사업에 지원해서 선정되었고, 지난봄부터 돌봄이 필요한 스무 명의 아이들이 방과 후에 2시부터 6시까지 마을문고에 머무르면서 영어, 미술, 그림책 수업을 받고 있다.


학부모들이 돌봄과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친근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편안함을 느낀다. 돌봄 시간에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스스로 하는 학습을 도와주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도 나눈다. 날씨가 좋은 날은 같이 마을길을 걷기도 하고, 문고 앞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 가서 놀기도 한다. 같이 종이접기도 하고, 영화감상도 한다. 여러 학년의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놀면서 작은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배움이 생긴다.


유안이랑 지안이도 키움터에서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다가도 뿌듯해하기도 한다. 오늘 그림수업 준비는 다 했는지 꼼꼼히 확인도 하고, 출근 시간도 챙긴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면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엇, 미술 선생님이다! 선생님!” 하면서 달려오고, 마을길을 가다가도 여기저기서 “미술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 또한 쑥스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이곳 아이들은 포근하고 다정한 마을에서 자란다. 서로에게 배우고, 주변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안에 품은 씨앗이 동백처럼 크고 단단해진다. 분명 교과 학습은 좀 부족할 수 있지만, 세상과 함께 하는 방법을 매일 안정감 있게 한 겹 한 겹 더해가고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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