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 김경열 회장님과 깡깡이 예술마을 해설사님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떠올리면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부산의 바다는 아름답다.
내가 생각한 부산 바다만의 아름다운 점은 바로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있다는 것이다. 지리적 특성상 산에 촘촘히 지어진 주택들, 그것을 둘러싼 산복도로와 바다가 맞닿은 모습은 부산에서 밖에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습이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많은 부산 관광지들은 바다 근처에 있는 주택의 모습을 내세우고 있다. 감천문화마을, 깡깡이 예술 마을이 그 예시이다. 감천문화마을은 사하구 감천2동에 위치해 있으며, 알록달록한 주택과 감천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깡깡이 예술마을은 영도구에 있고, 감천문화마을에 비해 늦게 개발되어 알려지기 시작했다.
두 마을은 모두 부산의 특색을 담은 관광지로서, 도시재생 사업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마을이 성장해가며 그저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사람들이 원하는 보편적인 유행을 따라가게 되지는 않았는지, 원주민들에게 관광지의 개발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산의 관광지들은 과연, 부산의 공간과 사람을 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선 감천문화마을을 보자. 감천문화마을은 동부산에 집중 되어있는 일반적인 부산의 관광지와 다르게 서부산에 위치해 있어 도시 재생, 균형 개발 등 그 의미가 매우 컸으며 성공적인 재개발 관광 산업 중 하나로 불린다.
감천문화마을이 관광의 불모지인 지역에서 관광지로서의 공간의 의미를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그 속에 담긴 더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 김경열 회장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어떤 요소가 감천문화마을이 이렇게 성공하는데에 긍정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여기 와서 보면 알겠지만 다른 지역하고 차별화된 점이 분명히 있어요. 지형적으로 가파른 지역에 계단식으로 집들이 지어져 있다보니 앞집이 우리집을 안 가리게 되고, 집들의 색깔도 아기자기하게 되어있다보니 그런 풍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감천문화마을을 찾아올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도시재생 사업을 싫어하시는 원주민분들도 계실텐데, 그러한 갈등을 어떻게 조율하려고 하시나요?
아미동, 영도, 감천동 이렇게 3곳이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감천동의 경우 사하구에서도 변방에 위치하다보니 지자체에서도 이 지역에 대해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하다 보니 발전이 안되었어요. 화장실도 재래식 화장실이 70-80군데 정도 되고, 도로도 정비가 많이 안되어있었는데, 문화마을에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지자체에서도 예산을 투입해서 골목환경도 정비하고 주민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런 점을 주민들에게 잘 이해를 시키려고 해요. 그리고 여기서 자체적으로 주민협의회를 만들고, 지자체 예산으로 환원 사업을 하고 있어요. 주민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매장이 여기 감천문화마을에 10군데 정도 있는데, 지도 판매하는 수익금 같은 것으로 주민들 집수리도 해주고, 도로 정비 같은 것도 많이 하다 보니 주민들도 그러한 이점이 눈에 보이다 보니 협조를 해주게 된 것 같아요.
환원사업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여기서 매장을 운영하거나 지도를 팔아서 나온 수익금의 30%가 주민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종량제 봉투를 나눠준다던가, 명절 때 선물을 나눠준다던가해요. 감천 2동이 3200세대 정도 되니까 한 집에 만원씩만 줘도 3200만원이나 지출되는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만원 밖에 안돼요. 그래서 2만원 내로 형광등이나 수도꼭지등을 교체해준다던가 그런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확실히 이렇게 관광화가 되면서 부산시에서도 예산을 더 많이 주고 이런 것이 있나요?
초창기에는 메스컴을 통해 홍보가 많이 되다보니 지자체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줬는데, 지금은 예산을 지원해주거나 하지는 않아요. 주민협의회에서 자발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대신에 국가에서 하는 공모 사업에 지원을 해서 채택이 되면 예산을 받기도 하지만, 부산시에서 따로 문화마을에 대해 지원해주고 하는 것은 없어요.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식당이나 가게 같은 것을 외지인 분들이 와서 여는 건지, 아니면 마을 분들 중에 관광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운영하시는것인지 궁금해요.
여기서 좀 내려가면 감천 1동이 있어요. 거기는 사거리에 버스도 다니고 하니 여기보다 훨씬 잘 산다고 해야하나요, 살기 편하죠.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돈을 모으면 감천 1동으로 가요. 그러다 보니 여기는 계속 못사는 사람들만 있고, 실제로 여기 사는 사람들 중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몇 안되어요. 나머지는 다 외부에서 여유있는 사람들이 와서 장사해요. 여기 사람들은 그 정도 돈이 있으면 다 밑(감천1동)으로 내려갔을 거에요. 그러다 보니 원주민들이 장사하는 곳이 별로 없어요. 감천 1동만 내려가도 편해요. 감천 2동 여기는 마을버스 밖에 없고 시내버스가 없어요. 대중버스들은 환승이 되다보니 교통이 편리한데, 여기는 한번 내려가려면 쉽지가 않아요.
저희도 아까 밑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왔는데 배차간격도 길고 불편하더라고요. 특히 여기 분들께서 이용해야하는데 관광객들이랑 버스를 같이 이용하다보니 꽉찬 버스를 불편해하지는 않으신가요?
2019년도에는 300만명 정도가 감천문화마을을 찾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었어요. 부산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교통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는데 사람만 자꾸 많아지고 버스타면 나이 드신 분들이 서서 가야해요. 건의를 해도 불편한 점이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네요. 해운대처럼 다른 동네 사시는 사람들이 정년 끝나고 빈집을 사서 산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슈퍼마켓도 없고, 음료수를 하나 사먹으려 해도 한참을 나가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다들 1년을 못 버텨요. 특히 겨울 같은 경우에는 버스 하나 기다리려고 20분씩 밖에 있으면 감기 걸려요. 그런 어려움을 안 겪어보니까 모르는거에요. 단체 관광객들이 오면 관광버스가 30대씩 이 도로에서 얽히고 설키면 난리도 아니에요. 자가용 타고 오는 사람들은 또 민원을 넣고… 예산 한번 주면 주차장도 만들텐데 그게 제일 아쉽지요.
감천문화마을이 부산의 관광산업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잖아요. 앞으로 부산의 관광산업이 어떠한 식으로 발전해 나가는게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글쎄요, 꼭 관광객을 많이 유입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은 안해요. 서로 같이 살아야 하는데, 이 마을 같은 경우에는 관광객이 아무리 많이 오고 10년이 흘러도 주민들한테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주민들도 소득이 생기고 혜택이 생기면 좋게 생각하겠지만, 10년이 지나도 원래 살던 사람들한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관광객만 많이 온다고 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주어야지 주민 측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감천문화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부산에는 바다가 있는데, 감천에는 특히나 송도 바닷가가 가까워서 좋아요. 또 양쪽으로 산이 있어서 공기도 좋지요. 그러한 부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마냥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의 도시재생 개발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감천문화마을의 개발은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감천2동에 살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열악한 교통환경이나 주차문제로 인해 삶에 불편함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감천문화마을에서 가게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외지인이라는 사실은 감천 문화마을 사람들만의 삶과 문화가 전달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산업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움을 주어야 한다. 정말 감천에 도움을 주는 사업이 되려면 감천2동 사람들이 돈을 벌면 감천1동으로 내려가서 사는 것이 아닌, 감천2동에서 더 안정적인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 주민들의 삶 그 자체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관광산업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관광마을의 개발이 실제로 부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떠한 방식을 통해 부산만의 매력을 담아 지킬 수 있는 관광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깡깡이 예술마을은 영도에 위치해 있는 또 다른 도시재생 관광산업으로 개발된 마을이다. ‘깡깡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예부터 배를 고치던 곳에서 배를 내리치면 나는 ‘깡깡’ 소리 때문에 붙여진 별명에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지금까지 깡깡이 마을 물양장에는 하루에 엄청난 수의 배들이 머물다 가며, 부산의 조선 산업에서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깡깡이 마을에서 보이는 바다 건너편에는 자갈치 시장이 있고, 근처에서 남항대교와 영도대교도 볼 수 있다. 부산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에 참 좋은 문화적 배경과 지리적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깡깡이마을박물관에 들어가 그곳에 계신 해설사 분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깡깡이문화마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영도 배들이 나가면 1년에 한 번 들어와요. 그러면 이제 다음 작업하러 나갈 때 배를 깨끗이 해서 나가야해요. 그러려면 이걸 다 긁어내야하는데 그게 깡깡이에요. 배를 수리할 때 "깡깡" 하고 두들기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영도가 옛날에 선박을 수리하는 허브였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선박수리업체들이 사라졌지만, 이와 같은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고자 문화마을을 조성했다고 보면 돼요.
그러면 깡깡이문화마을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될까요?
이 창고가 일제 시대때 그대로의 모습이에요. 1930년도 쯤에 지어진 창고인데, 그때가 한참 전시잖아요. 공장은 흥남에 있었어요. 전시상황이니까 여기다가 비료나 화학제품 말고도 전시 제품도 있지 않았나, 우리는 그렇게 추측을 해요. 옆에 있는 이 조선소는 1887년도에 생긴겁니다.
그러니까 개화기때부터 깡깡이 마을은 존재했다고 봐도 되겠죠. 역사가 참 깊죠.
박물관에 있는 저 그림이 흥미로워 보여요! 어떤 의미일까요?
깡깡이 아줌마를 모델로 해서 그려진 작품입니다. 예전에 영도에서 선박 수리업이 활발할 때, 선박을 수리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깡깡이 아줌마라고 부르곤 했죠. 저 작품의 제목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데, 독일 작가분이 그리신거에요.
엄마들이 깡깡이 일을 하면 그날그날 표를 줬다고 해요. 그 표를 가지고 반장님한테 가면 10%인가 5%를 깎고 돈을 주는 거예요. 그 돈을 주면 다음날 아침에 책가방 들고 나가는 아들 학비도 줘야 하구요. 쌀도 사고 밥도 먹이고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정말 ‘아,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 너무 고생했구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그게 우리 마을이에요.
깡깡이마을의 역사는 영도의 역사와 뗄레야 떼놓을 수 없는 거 같아요. 영도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1935년에 이 조그마한 섬에 전차가 들어왔어요. (중략) 우리나라에서 봐도 요충지지만 외국인들이 봤을 때도 요충지였어요. 일본인들만 여기를 탐을 냈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처음에 프랑스배도 들어오고 많이 들어왔잖아요. 옛날에는 태종대 가는 쪽으로 석유 비축질을 하고 있었어요. 거기도 러시아도 그 땅을 탐을 내서 자기네들이 하려고 했는데 일본이 먼저 자리를 잡은 거에요. (중략) 우리가 1886년도에 개항이 되었잖아요. (중략) 그러고 조선소가 확 생겼어요. 그때는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남자분들은 배도 타고 나가고 했는데 여자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으니까 주로 아줌마들이 많이 했겠죠.
그리고 6.25가 터졌죠. 6.25때 이북서 피난 내려오면서 1.4후퇴때 배로 다 많이 내려왔어요. 부산으로 피난올 때 온 가족이 다같이 모여서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다가 보면 흩어지기도 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혹시나 잃어버리면 ‘부산 가면 다리 드는데가 있다다더라, 우리 거기서 만나자’하고 왔는데, 거기가 영도 다리죠.
만났으면 다행이지만 못 만나면 가족 생사 확인도 해야하구요. 언제 만날지 그것도 알아봐야 하니까 저기가 점집 골목이에요. 점집이 스무군데가 넘었다고 하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고, 살아계시다 하더라도 점을 볼수 없어요. 집도 많이 낡았고.. 그래서 저기가 최초의 이산가족 찾기 장소에요. 지금은 전화도 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팻말을 써서 쭉 붙였어요. ‘00아 우리 어디 사니까 그쪽으로 오면 우리 만날 수 있다’ 이렇게요.
그래서 저 다리가 한이 많은 다리에요. 물론 일본인이 만들었긴 하지만 그래도 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못 만났던 사람도 만나고요. 그래서 원래 저 다리가 너무 오래되어서 철거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못난 역사도 역사인데 저런걸 안 남겨 놓으면 지금 학생들이 그냥 다 잘 되어 있는 줄로만 알아요.
마지막으로 깡깡이문화마을을 구경오시는 분들께 한마디 남긴다면?
"아 예쁘더라"도 좋지만 우리 대평동, 깡깡이 마을이라는 동네를 가보니까 "정말 오래된 동네고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았다" 그렇게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기 가면 바닷가가 또 있어요. 자갈치가 보여요. 자갈치도 보이고 다시 돌아서 이렇게 오다보면 아까 그 자리로 갈 수 있어요. 흰여울 문화마을을 가려고 하면 그쪽에서 박물관에서 그림있는 벽화 있는 반대 쪽으로 가다보면 옛날 수산 진흥원 자리가 있어요.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그런게 알고 있다고 가시고, 거기 방파제 쪽으로 쳐다보는 흰여울 문화마을이 더 예뻐요. 오후에 해질 무렵에 보고 가세요.
깡깡이 예술 마을은 부산의 산업, 그리고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장소였다.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들을 통해 깡깡이 예술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방식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깡깡이 예술마을만의 풍경,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와 삶의 방식이 공간속에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아주 거대한 박물관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적은 사람들이 찾아오더라도, 그리고 조금 천천히 알려지게 되더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의 깡깡이 마을의 모습을 유지하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것이 없더라도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삶의 모습과 터전이 그대로 녹아있고, 그것을 보존하려는 사람들,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장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자연스러움’이 깡깡이 마을의 아이덴티티이자 마을만이 가진 멋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물관도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찾아주어야 운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유물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봐주고,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거친 모습 그대로의 유물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깡깡이 마을의 아쉬운 점은 홍보가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멋과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을이 조금 더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훨씬 더 멋진 박물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을의 거친 아이덴티티를 지키되,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봐줄 수 있도록 예쁘게 다듬고 보수하는 작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부산다움’이란 무엇일까. 답사를 통해 부산의 아이덴티티는 단순히 바다로만 정의될 수 있는 도시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리적 특성상 바다라는 특별한 것이 있지만, 결국 그 특별함 속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공간은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문화가 녹아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방송에 소개되고, 많은 이윤을 얻는 것만이 관광산업의 성공이 아니라 원래 살던 사람들이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조금 더 아껴주며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 또한 성공적인 관광산업의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금전적인 이윤과 삶의 보존, 그 둘 사이의 적절한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부산의 관광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지자체에서 섣불리 관광자원으로 개발을 도모하기보다는, 먼저 현재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 보존해야할 역사와 문화가 있다면 그것을 보존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지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자체의 금전적, 행정적 지원 없이 지역의 문제들을 주민들의 힘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원은 일시적이지 않아야 한다.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통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고 있는 지에 대해 신경을 써주고, 마을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지속적인 관광 산업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글·사진: <local.kit in 부산> 산업팀 박시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