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취를 따라 이어진 도로, 산복도로

산복도로 전시관 김은숙 해설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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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내의 빽빽한 빌딩 숲 너머로 우뚝 솟은 산이 보인다. 번잡한 도시를 감싸 안아주듯 바다와 도심을 품고 있는 산들의 모습에 압도되는 듯하다. 잠시 고개를 들어 산등성이에 멈춘 시선을 이어보자. 산허리를 빙 둘러 형성된, 삐죽빼죽 튀어나온 주거지 사이로 정겨운 삶의 정취가 묻어나온다. 부산의 서민사(庶民史)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산복도로 달동네이다.


산복도로는 사전적으로 '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평지가 좁은 부산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석된다. ‘가마솥이 엎어진 모양의 산’이라는 의미의 지명을 지닌 부산은, 도심 속에 바다만큼이나 드넓은 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개항기 때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외지인부터 한국 전쟁 시절 피란민들, 이후 산업화 진행으로 농촌을 떠나 부산에 정착한 사람들은 정착할 땅이 부족하여 도시 중심에서 밀려났고, 경사진 산비탈에 모여 판자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 산동네를 연결하는 길이 바로 부산의 산복도로다.


부산의 산복도로는 망양로, 영주로, 재반로, 엄광로, 대티로 등 부산 전역을 걸쳐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부산 동구 초량동을 중심으로 하는 망양로 산복도로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도로, 층층이 쌓아올린 계단식 주택,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은 산복도로를 나타내는 재미있는 특징들이다.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인 만큼 산복도로 달동네에서는 독특한 생활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망양로 산복도로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168계단을 마주해야 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뻗어 있는 계단이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인 산복도로 달동네에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계단을 무사히 오르면 탁 트인 전망대와 함께 드넓은 부산항의 풍경이 펼쳐진다.


KakaoTalk_20230605_170341802.jpg 산복도로 168계단
KakaoTalk_20230605_170341802_01.jpg 산복도로 주택가에서 바라본 전경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면, 하늘과 맞닿은 아파트와 주택가들 사이에 자리한 망양로 산복도로 전시관을 찾아볼 수 있다. 산복도로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이 곳에서 망양로 산복도로 전시관 김은숙 해설사님에게 부산의 산복도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Interview

KakaoTalk_20230605_170341802_02.jpg 산복도로 전시관 김은숙 해설사님 (왼쪽)

산복도로가 형성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어요.

그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시려면 부산 지리를 좀 아셔야 돼요. 부산에서 동래나 서면 쪽은 거의 평지거든요. 반대로 여기 동구, 부산진구, 중구, 서구, 사하구, 다대포 있는 쪽으로 쭉 보시면은 거의 바다, 산이에요. 산길 속에 이렇게 길게 뻗어서 거의 바다하고 가깝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평지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부산이 일본하고 가깝잖아요. 일본인들이 무역을 하려고 했겠죠. 1800년도에 이제 무역항을 만들고 구두를 만들면서 매립을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점차 이 매립한 지역이 넓어지고 평평한 땅이 좀 생겨났어요.


근데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인들이 부산을 많이 착취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우리가 살 곳이 더 없어진 거지. 광복 이후에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피난민들과 이주민들이 많아졌겠죠. 귀환 동포들, 그 사람들이 지낼 곳이 없으니 부산에 와서 산으로 올라간 거예요. 산으로 올라가서 (집을) 짓고 또 뒤에 들어온 사람이 또 산에 올라가서 집을 짓고 살다 보니 산 중턱쯤에 자연스럽게 길이 생겨난 거예요.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들이 이렇게 생겨나면서, 거기 있었던 생활사 이야기들이 여기 산복도로 이야기예요.


산복도로에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7.jpg 옛 산복도로의 판자촌 모습, 출처: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산복도로 도로가 개통하고 본격적으로 도로를 닦고 한 거는 1964년도부터예요. 산복도로를 닦으면서 그때 마이크로 버스라는 게 다니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도 개통을 했다 하더라도 폭도 좁고 많은 인구들 때문에 사고나 이런 게 빈번했었어요.


그 이후 이제 산업화가 되면서 부산 바다로 나무들이 수입돼서 많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저기 좌천동 가구거리가 형성이 되었죠. 또 바다에서 쉽게 가져올 수 있는 거, 조개 껍데기라든지 전복이라든지 그런 걸 활용한 자개도 있고. 그리고 고무를 많이 수입해서 그 당시 고무신 공장, 신발공장이 우리 산업화 시대 때 크게 부흥했었어요. 이렇게 산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죠.


그때 여기 산에서 이렇게 내려다보면 까만 머리가 정말 파도처럼 출렁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꽉 찼었대요. 여기 동구에 학교가 되게 많아요. 그만큼 아이들이 많았다는 거죠. 인구가 많았고, 집도 그 당시에는 이렇게 계획적으로 지어진 집들이 아니라 집과 집 사이 틈만 있으면, 내가 누울 자리에 하나만 있어도 그 자리에 집을 지었다고 할 정도로 (집이) 많았대요. 산업화를 거치면서 공장 다니는 공순이 공돌이, 그 당시 때 집집마다 공순이 공돌이가 정말 다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죠.


지금 이 산길을 따라 달동네들이 많이 있잖아요. 거기 사시던 분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계시는지, 아니면 떠나서 빈집이 많이 생겼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젊은 층들은 많이 떠났죠. 빈집도 군데 군데 있고. 근데 또 이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쉽게 못 떠나시죠. 8, 90세 이상 되는 노인분들이 계속 살던 곳에 살고 계시고…


올라오면서 보니까 168계단도 있고, 여러 가지 카페도 있고 전시관도 있고 도시재생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게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이라고 해서 한 10년 전부터 했던 것 같아요. 산복도로에 모노레일이 생긴지 지금 10년 됐거든요. (어르신분들이) 젊었을 때는 그 가파른 계단을 직접 오르내리고 하셨겠죠. 근데 그때 이렇게 오르내리고 했던 그 젊은 층들이 지금 노인분들이시잖아요. 그래서 모노레일 설치를 했고, 그 덕분에 관광객들도 불러올 수 있는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죠.


여기 전시된 '문화주택 프로젝트'는 무엇을 하는 프로젝트인가요?

KakaoTalk_20230605_170341802_03.jpg 산복도로 전시관의 '문화주택 프로젝트'

아무래도 도시 같은 경우에는 아파트잖아요. 여기 산복도로는 아파트보다 아무래도 수평적이고 이웃과 이웃이 더불어 사는 형태가 좋죠. 아파트는 문 닫으면 모르잖아요. 밖에서 봐도 안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전시되어 있는 수평적인 집은 산복도로에 어울릴뿐더러 이웃에게 많이 오픈되어 있잖아요. 심지어 이 집에 빨래가 어떤 옷인지 다 보이잖아요. 그리고 또 내 마당이 밑에 집에서는 옥상이 되고. 그런 개념으로 이게 산복도로에 어울리지 않을까 하면서 만든 게 이 작품이에요. 이거는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일반인들이 동참을 해서 집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저렇게 계단처럼 쌓아 올린 거예요. 어울리죠, 유람선 같죠. 멀리서 보니까.


그러면 지금 여기 일대를 작품과 같이 보존을 하자는 취지일까요?

일종의 제안을 한 것이죠. 현실적으로는 사실 좀 어려움들이 많죠. 빈집도 많고. 빈집을 정부에서 사들이려면 개인의 동의도 있어야 되고. 또 빈집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듬성듬성 있다 보니 기존에 거주하시는 분들한테도 여건이 맞아야 하고요. 그리고 고도 제한이 풀린다고는 하지만 또 그게 언제 실현될지도 불확실하죠. 일단 지금으로서는 외지에서 많이 오는 관광객들을 많이 유치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빈집들을 활용해서 다른 공간으로 쓰거나 하는 사례가 있을까요?

지금 저기 좌천동에 가면 좌천초등학교가 있거든요. 그 좌천초등학교가 지금 폐교예요. 그 폐교된 학교를 이제 주민들에게 개방을 해서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고 있어요. 또 일반 주민들한테 그리고 또 같이 동참할 수 있는, 그리고 거기 공간도 같이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방안으로.


이렇게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발전을 해 나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여기 사시는 어르신 분들이랑 직접적으로 함께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게 좀 활성화되어 있을까요?

‘마실’이라고 해서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공간인데 여기 밑에 장기려 기념관도 있거든요. 그 옆에 가시면은 구청에서 이제 신청을 받는 거죠, 주민들 대상으로. 그러면 이제 쿠키 굽는 것도 하고 또 저기 밑에 가면 유자청을 만든다든지, 이렇게 주민들 참여를 하게끔 해서 유도하는 게 있고요. 저희 동구 수정동에 가면 수경재배 하는 곳이 있거든요. 흙에다가 상추나 이런 걸 심는 것이 아니라 물로 재배하는 게 있어요. 그것도 아마 주민들이 동참해서 하는 프로그램일 거예요. 그리고 모노레일 주변에 가면 625 막걸리라고 있어요. 그것도 우리 동구 어르신들께 일자리를 제공해서 시니어 분들이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가면 짐 보관하는 곳이 있거든요. 이제 관광 왔을 때 다들 캐리어든 짐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거를 보관하고 올라가서 구경하고 다시 내려오면 짐 찾아가고 하는 것도 있어요.


동구청 홈페이지 들어가 보시면 더 많을 거예요. 그리고 이 바로 위에 가면 이바구 공작소라고 있거든요. 거기에도 이런 옛날 이야기, 625 사변 때 있었던 이야기들도 전시돼 있어요. 그거 참고하셔도 되어요.


이바구 공작소는 청년 단체에서 운영하는 건가요?

지금은 구에서 다 관리를 하고 있어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하면서 여기가 많이 일어났죠. 우리 전시관은 이제 한 2년 반 정도 되거든요. 사람들이 산복도로 공작소는 되게 많이 찾아와요. 공작소랑 모노레일을 많이 찾는데 여기(산복도로 전시관)는 아직 잘 몰라요. 그런데 한 번 오신 분들은 되게 좋다고, 아기들부터 해서 어르신들까지 다 좋아하시는 구성이 되어 있어서 한 번 왔다 가신 분들은 되게 좋아해요.


‘사람을 닮은 나무, 나무를 닮은 사람’. 이 표어가 인상적인데요, 산복도로랑 나무가 어떤 연관이 있나요? 여기 전시된 나무 종류는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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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전에는 산에 올라가서 많이들 살았잖아요. 산에 있는 나무 사이에 들어가서 집도 짓고 나무 잘라서 뗄감 쓰고 하다 보니까 어느 날 산이 민둥산이 된 거예요. 그래서 토사가 밀려 내려오고 피해를 많이 보다가, 그때 박정희 대통령 때 산에 나무 심는 운동이 일어났어요. 그 당시 어르신들 얘기로는 밀가루를 얼마만큼 줄 테니까 산에 올라가서 나무 심으라는 운동이 있었대요. 그래서 지금은 나무가 아주 울창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때 나무로 인해서 생활을 했고 지금은 이제 살기가 좋아졌으니까 다시 (나무를 위해) 우리가 내어주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을 닮은 나무, 나무를 닮은 사람 이렇게 붙여진 것 같아요. (웃음)


감사합니다. 부산 산복도로 관련해서 더 추천해주실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아까 이바구 공작소 있었고 아까 좌천초등학교랑 사상초등학교는 검색을 해보시면 될 것 같고. 또 저희 부산을 일단 오셨으니까 감천문화마을도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눌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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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는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간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귀환동포들과 한국전쟁 시기에 부산에 발을 딛은 피란민들은 부산항과 원도심 산지를 중심으로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하였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도 모자라, 항구 옆 군부대 땅, 철도 궤도 옆, 영도다리 너머 해안 절벽이나 심지어 공동묘지에도 집을 지었고, 일명 ‘루핑집’, ‘하꼬방’, ‘슬레또집’이 등장하였다. 수정아파트, 좌천아파트, 경희아파트는 내 집 마련이 어려웠던 서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초기 아파트의 전신이다.


전쟁 이후에도 도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 산동네는 점점 자리를 넓혀, 동구 초량동 망양로를 시작으로 엄광로, 까치고개길, 감천로, 보수로 등 다양한 산복도로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KakaoTalk_20230605_170341802_06.jpg 벚꽃이 날리는 산복도로
KakaoTalk_20230605_170341802_07.jpg 산복도로를 오가는 508번 버스

산복도로 산동네 주민들은 산 아래 시장, 부두, 고무공장을 매일같이 오가며 생계를 꾸렸다. 범일동, 좌천동, 수정동, 초량동 일대를 돌던 마이크로버스는 꼭두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고단한 하루를 보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부두와 가까운 망양로 산복도로에는 항구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높은 산복도로 길에서 멀리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일거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168계단을 단박에 뛰어 내려가곤 했다. 산복도로의 이름 없는 계단들은 산동네와 도심을 잇는 지름길이자 고단한 삶의 무게가 오르내리는 길이다.


‘과거의 현재의 조화’라는 말은 산복도로를 잘 설명한다. 이는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부산에 살았고 살고 있는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이자 과거로부터 이어온 부산의 정체성이다. 오늘날 산복도로는 주거지로서의 공간과 역사의 보존터로서의 공간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산복도로는 오늘날에도 그 주거단지와 길의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때 그 시절의 정겨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산복도로의 높고 비탈진 경사도로를 롤러코스터마냥 올라가는 부산의 버스를 두고 ‘산복도로 드리프트’라는 말을 붙인 것이 최근 미디어에서 조명된 것처럼, 여전히 부산의 마을버스는 꼬불꼬불한 산복도로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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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라는 말보다 산복도로를 더 잘 설명하는 표현이 있을까?

망양로 산복도로 달동네는 이곳의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도시재생사업이 산복도로 달동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으며, 그 노력들은 자연스럽게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의 기억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를 담아내는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복도로 전시관에서 조금 내려가면 ‘이바구 공작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인 ‘이바구’에서 유래한 ‘이바구길’은, 산복도로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옛날 이야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어울리는 길 이름이다. 이바구 공작소는 생동감 넘치는 이바구길의 역사와 산복도로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여 이곳에 서린 기억을 보관하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더불어 교복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마치 7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산복도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168계단을 오르내리던 젊은 사내와 아낙네들은 시간이 흘러 백발 노인이 되었다. 여전히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계단 옆 모노레일이 설치되었다. 오늘날 이 모노레일은 ‘부산 감성 여행’의 한 코스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초량동을 찾게끔 만들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어 산복도로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려내는 것이다.


수십 년 전 사람들의 땀방울이 모여 이루어진 산복도로 달동네는 오늘날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옛 자취속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이고, 나아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시간들을 거닐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주는 공간이다.


부산의 산복도로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를 그린다. 이 곳이 그저 허물어야 하는 구식 동네가 아니라, 생생한 역사를 품고 있는 부산의 정체성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사진: <local.kit in 부산> 공간팀 강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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