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퍼센트’
로컬이라는 단어에 끌리는 사람의 비율이다.
‘3퍼센트’
실제로 지역으로 이주해 로컬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의 비율이다.
그 사이 17퍼센트에는 누가 있을까. 지금 서울의 한 구석에서 이 글을 쓰는 나도 있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읽는 당신이 있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로컬에서의 삶을 망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익숙한 장소를 떠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고, 흔히들 생각하는 보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다. 내 삶의 터전을 떠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다시 쌓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고. 어쩐지, 로컬에서의 삶은 용기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금 막연한 두려움에 현재를 떠나지 못하는 17퍼센트의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여기 강릉에 20대의 패기와 강릉을 향한 애정을 가득 안고, 강릉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우리의 또래가 살아가고 있다.
그의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이고, 20대의 패기가 당차 보이지만 어딘가 피곤해 보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로컬을 향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마음에도 이정표가 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매일 새벽 4시, 해가 뜨기도 전에 강릉 월화거리의 하루를 여는 그는 이르게 시작한 하루 때문인지 조금은 피곤해 보였지만, 자기가 그려가는 삶에 대한 열정으로 눈동자만큼은 반짝거렸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버니버니 베이커리 대표 박설하입니다.
창업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사실 창업을 생각하기 전에 가게를 처음 봤어요. 지나가는 길에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것을 보고 ‘여기 자리 좋은데 여기서 뭐라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던 도중 임대가 나오게 된 거죠. 그때 마침 베이커리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 때여서 빵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베이커리 관련 기술은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하셨나요?
작년쯤 베이커리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가 케이크가 많이 나가는 시즌이라 빠르게 실력이 늘었죠.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배우러 다니거나, 다른 스타일의 케이크를 배우러 다니면서 (케이크를 만드는 시야를) 넓혔어요.
대표님의 하루 루틴이 궁금해지는데요?
저녁부터 말씀드리자면 무조건 9시에는 잠에 들어요. 눕자마자 바로 잠들고, 3시 50분에서 4시 정도에 기상을 한 다음 바로 출근하면 4시 20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출근해서 예약 홀 케이크들을 미리 다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조각 케이크를 만들어요. 그다음에는 제빵 파트로 들어가서 반죽 성형 등을 합니다. 그러면 시간이 7시에서 8시 정도가 돼요. 다음으로 매장 홀 청소를 하고, 구운 과자, 빵 등을 포장합니다. 매장관리와 (빵)전처리가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미리 반죽을 쳐놓거나, 구워야 할 것들을 미리 구워요. 그리고 영업을 시작합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구워놓은 케이크 시트에 크림치즈나 젤리를 부어놓고 퇴근해요. 6시나 7시쯤 퇴근해서 요가를 가거나 집에 가서 밥을 먹거나 집안일을 하고, 다음날 할 일들을 정리하면 다시 잘 시간이 되죠.
보통의 20대는 대학을 목표로 살고, 취업하는 것을 정도(正道)로 생각하는데, 대학이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강릉에 살면서 강릉에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사실 대학이 필요 없죠. ‘공무직을 하겠다’, ‘시청에서 일을 하겠다’라고 한다면 대학이 필요했겠지만 저는 그런 관념적인 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쌓아온 것들로 충분히 돈 벌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두 번째로 저는 캠퍼스 생활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보다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른 것들을 하는 게 더 좋았어요. 그리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창업을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저는 창업을 위해 제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걸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해요. 저는 네일아트, 화장 등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해요. 가게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제 작업에만 몰두해야 했을 때 창업을 후회했어요. 또 친구들은 갑자기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저는 (가게가) 제 삶이 되었다 보니까 여행을 하면 하루 매출을 포기하게 되는 거잖아요. 여행과 돈을 버는 행위, 그 중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 이런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반대로‘창업을 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한 적은 있나요?
저는 창업을 하길 잘했다고 느끼기보다는 제 작업이 마음에 들게 나왔을 때, 예를 들면 케이크가 흠 없이 완벽하게 나왔을 때. 그게 제 절대적인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창업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이라고 합니다. 그런 부분이 걱정됐던 적은 없으신가요?
저는 제가 창업을 하면 잘할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20대니까 또래 친구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알거든요. 그리고 ‘망하면 2년만 열심히 일해서 이 빚을 갚아야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두려웠던 적은 딱히 없었어요. 빨리 창업을 했기 때문에 망하더라도 (빚을) 갚을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베이커리에서 어떤 것을 만드시는지, 그리고 대표 메뉴가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강릉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프랑스식 디저트 빵, 일본식 빵들을 만들고 있어요.
대표 메뉴는 당근을 이용한 메뉴에요. 저는 설탕 단맛처럼 인공적인 단맛을 싫어해요. 그래서 자연적인 단맛을 내는 당근을 선택했어요. 또 여기 상권 내에서 당근이 들어간 메뉴를 주력으로 내놓는 곳이 거의 없어요. 다 냉동을 가져오거나, (당근)원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그래서 더 당근을 주재료로 애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시즌별로 다른 메뉴를 내놓고 있어요. 이번 봄 시즌에는 벚꽃 레어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고 벚꽃 시즌이 끝나면 새로운 케이크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저는 언젠가 디저트 특화 매장을 만들고 싶어요.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메뉴는 작고 레이어가 많이 쌓인, 다양한 맛을 내는 디저트였는데 노력 대비 수요가 많지 않을 것 같았고, 만드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선은 현재 잘 팔리는 케이크에 집중하고 있어요.
듣다 보니 대표님은 빵을 굽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웃음)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성실하게 채워가는 매일이 빛나!’
강릉이 말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에서 봤을 때 특별한 강릉사람, 20대 초반의 박설하 대표가 보는 강릉은 어떨까.
강릉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일까?
막연함만 가득 품고 있는 17퍼센트의 우리를 받아주기에 강릉의 품은 넓을까?
대표님이 강릉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강릉이 되게 낭만적인 도시라고 생각하시잖아요. 맞아요. 정말 낭만적인 도시거든요.
저희 집 앞 바다로 조개를 캐러 가고, 그 조개를 집에 들고 와서 조개탕을 해먹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터뜨리는 폭죽을 보는 그런 낭만. 이런 소소한 낭만이 넘치는 도시에요. 제가 산과 바다가 많은 자연적인 곳에서 자라서 서울을 포함한 다른 도시는 여행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외지에서 온 사람이 강릉에서 창업한다면 좋을 것 같으신가요?
저는 좋을 것 같은데요? 강릉 안에서만 있는 우물안 개구리보다 더 많은 걸 봤으니까,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강릉이 20대 창업가가 살아가기에 좋은 조건의 도시라고 생각하시나요?
돈이 있다면 목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겠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보장은 될 것 같아요. 하지만 20대들이 월세를 비싸게 내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월세가 싼 외진 곳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 가게만을 보고 주말이나 휴일을 써서 그 작은 곳을 찾아갈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인테리어가 예뻐서 꼭 가야겠다던가, 가게만의 스토리가 있다던가. 정리하자면, 여기 강릉은 20대가 창업을 한다면 자기만의 강점이 있으면 정말 좋은 도시에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강릉의 좋은 점은 어떤 점인가요?
강릉은 조급하지 않고 삶에 치일 일이 없습니다. 내가 원하면 치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여유로워요.
그러면 대표님이 좋아하시는 강릉의 장소가 있을까요?
저는 바다를 좋아해요. 특히 저는 주문진 쪽에 살았기 때문에 그쪽에 있는 바다를 좋아해요. 경포호수도 좋아요.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풀잎이 피고.
그러면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에게 강릉이란 어떤 의미의 도시인가요?
제 학창 시절이 다 담긴 고향이죠. 저는 여기서 바쁘게 살아야 할 때도 많지만 바다에 가면 또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지고. 내가 딴 곳에 가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이에요.
강릉에서의 삶이 빛나는 이유를 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에게서 찾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의 눈은 정면에 놓인 것 뿐만 아니라, 360도를 모두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다. 나의 삶은 내 주변을 이루는 모든 곳에 펼쳐져 있음을 느낀다.
푸르게 일렁이는 바다와 드넓게 펼쳐진 숲이 그 어떠한 실패도 감싸안아 줄 것만 같은 곳.
느리게도, 빠르게도 달려보며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
강릉은 그런 곳이다.
‘당연히’라는 단어의 압박 아래에서 레일처럼 흘러가는 매일에 지쳤다면, 관대한 강릉의 품에 안겨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나 나의 360도에 놓여있던 강릉은,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줄 테니.
글: <local.kit in 강릉> 황수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