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컬키트 localkit Dec 13. 2023

풀꽃의 정신을 담다: 문학이 주는 여유의 미학


[글을 시작하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풀꽃문학관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글귀다.


‘공주’의 문화를 알아보기 위해서 ‘풀꽃문학관’에 방문했다. 이명희(2019)에 따르면, 시 읽기는 독자가 망각하고 있던 본인을 일깨워 거울 앞에 세워주기에 내면을 읽는 정서적 체험의 장이 된다고 한다. 즉, 시를 읽으면 시가 지향하는 메타포적 의미를 추론해 공감을 통한 ‘자기 효능감’ 회복이 가능하다.


충청도는 인구 유입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통계청 자료 분석 결과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지방 인구 증가율이 높은 5곳 중에서 4곳이 충청권이다(이형모, 2023). 물론, 그 이면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평안과 여유를 주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그 생각과 함께, 정겨운 시와 여러 풀꽃을 즐겨볼 수 있는 ‘풀꽃문학관’을 방문하여 나태주 선생님의 문학의 길을 감상해 보았다.


풀꽃문학관은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2014년, 하나의 문화시설을 만들고자 했던 공주 시청과 당대 문화원장 나태주 시인님께서는 이 집을 어떤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꾸며야 할지 고심하셨다. 그리고 시인님의 여러 노력 덕분에 비록 크지 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풀꽃문학관은 전국 각지에서 온 수많은 방문자가 찾는 명소가 되었다.


“풀꽃문학관 안에서 앉았을 때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풀꽃 정원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아 재방문하게 되었습니다.” (50대, 용인)

“시인님께서 유명하신 만큼 멀리 있더라도 한 번쯤 보러 오고 싶었습니다.” (60대, 분당)

“인근 축제를 즐기러 왔다가 근처에 있는 풀꽃문학관이 생각나서 오게 되었습니다.” (30대, 공주)


이처럼 풀꽃문학관은 방문자가 일상에서의 여유를 느끼고 시인님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시인님께 여쭤보니 많은 사람이 찾는 풀꽃문학관은 사실 정식문학관이 아니라고 한다. 직접 나태주 시인님을 찾아뵈어 풀꽃문학관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풀꽃문학관이 추구하는 방향, ‘고달픈 삶 속 옹달샘’


풀꽃문학관이 공주 시문학의 상징적인 공간인 만큼, 시인님께 ‘풀꽃문학관’은 어떤 의미인가요? 방문객들로부터 어떤 장소로 기억되길 원하시나요?

풀꽃문학관에서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고달파서 왔다’고 많이들 이야기해요. 이때, 고달프다는 것은 몸이 고달픈 게 아니라, 마음이 고달파서, 아주 먼 곳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외국에서도 오고요. 그래서 오늘날, 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조그마한 옹달샘 같은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눌러 담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달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가고, 가쁜 숨을 쉬면서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생명의 공간이자, 사랑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 그리고 치유의 공간이 되기를 원해요. 풀꽃도 전에 피었던 꽃이 그 자리에 온전히 똑같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분위기가 변모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앞으로 풀꽃문학관에서 펼쳐보시고 싶으신 활동이 있으신가요?

저는 풀꽃문학관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입니다. 다음에 풀꽃문학관 뒤편에 새로운 공간이 마련된다면, 전국 단위로 공개적인 강좌 신청을 받고 싶어요. 공개강좌와 공개 토론 주제는 여전히, 생명과 사랑 그리고 휴식과 치유가 될 거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제가 기획자는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지치고 목마르고 피곤한 사람들이 와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개 문학관은 박물관이나 기념관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죠. 그 사람의 유품을 잘 보존하거나, 그 사람의 업적을 오랫동안 간직해서 홍보, 보존하는 형태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풀꽃문학관은 그런 기능보다는 와서 사람들이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시인님의 작품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시 시인님께서 개인적으로 청춘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는지 그리고 추천해 주고 싶으신 시 구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지만 그걸 뒷받침해 줄 돈, 자원, 시간, 사람의 인정이 턱없이 부족한 시기가 청춘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불안하고 뭔가 미흡해 보여서 약간은 억울할 수도 있는 시절이라 볼 수 있고요. 그렇지만, 인생은 젊은 그 시절이 있기에 나이를 먹어서의 삶도 있고, 참고 가다 보면 좋은 일도 때론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접근했으면 해요. 물론, 다 참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젊음의 세월이 사막을 건너는 길이라고 본다면, 젊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사막을 날아서 순간적으로 바로 건너가고 싶겠지만, 사막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도 발이 빠지고 숨이 막히고 목이 마르고 넘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막이고요. 인생은 사막처럼 멀고 아득하고 열악하지만, 멀고 먼 사막도 언젠가는 건널 때가 있을 수 있기에,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세고, 스스로 용기를 주면서, 독려하면서 인생을 살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사막을 다 건너온 저 같은 사람도 인생이 아주 적막합니다. 그러나 그 막막함을 이기고, 그 막막함에 지지 않고 한 발짝씩 가보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둘이 가라’라는 말이 있어요. 부디, 힘들 때 좋은 배필이나 친구, 이웃을 만나 손잡고 서로 응원하며 잘 건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보는 나이 먹은 사람들도 다 어떻게 건넜던 그 사막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에서 소개하는 시 구절은, 작품 '멀리서 빈다' 중 한 대목인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입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멀리서 빈다



2. 풀꽃문학관을 담은 공주가 추구해야 할 온고지신


시인님께 공주란 어떤 곳인가요?

공주는 크지 않지만, 거칠지도 않고, 없애려야 없앨 수 없는 고장이에요. 공주는 제 인생과 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장소고, 휴식, 안식 그리고 편안함을 주어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도시랍니다. 서울이나 외지에서 지내다가 다시 공주로 갈 때는 더 깊은 곳으로 간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정안을 지나 금강 다리를 건너 구 공주로 들어서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요. 마치, 양파가 있다면 양파 껍질 안으로 계속 들어가는 것 같고, 그 중심, 가장 좋은 곳에 공주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주라고 하면, 본디 역사 유적지와 관련된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풀꽃문학관, 책방 그리고 문화 예술촌까지 다채로운 예술의 메카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님께서 꿈꾸시는 앞으로의 공주는 어떤 모습인가요?

공주에서 일반적인 먹거리, 일거리, 살 거리를 찾아본다면 아직은 어떠한 것과도 손을 잡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중 하나는 문화라 생각합니다. 공주는 거리가 크게 트여 있지 않아 씽씽 달리기는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밀조밀한 골목 미술관, 골목 서점, 골목 식당, 골목 찻집 등에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조용하지만 따스하고 편안하면서도 아늑함이 있거든요. 또 ‘슬로 시티’로서의 요소도 지향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빠른 것을 무조건 다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빠른 것과 천천히 가는 것 둘 다 병합해서, 어딘가에 가서 편히 있기 위해, 천천히 걷기 위해 빨리 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문화원장 시기부터 강조해 왔던 것처럼,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을 추구하길 바라요.


그러니까, 천천히 가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한가롭고 여유 있는 삶을 위해 모순적인 두 가지 개념을 같이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유지하는 것이 동양의 사고방식이자 인생관이기도 하고요.



[글을 마치며]


처음 겪는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라 누구나 이따금 실수와 결함을 발견하곤 한다. 오르고 올라도 끝없는 길이 반복되더라도, 그 길은 어느 순간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거름이 된다. 그러니 견뎌낸 시간과 겪어온 경험을 소소함과 단점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행복을 챙기고, 보살펴 주며 본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기를. 겸손도 미덕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은 더 큰 힘의 원천이 된다. 


어떤 것이든 본연의 아름다움은 스며있기 마련이다. 스칠 땐 모르고 지나칠 수 있지만 사실 모두 그만한 매력과 가치를 담고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가지고 있을 누군가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한 번쯤 주변을 둘러보며 ‘쉼’을 느껴보길 권한다. 풀꽃 한 송이 바라볼 여유가 깃드는 하루를, 풀꽃 한 송이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나날을 보내길 바라며. 



참고문헌

이명희. (2019). 현대시 읽기를 통한 문학적 상상력이 ‘자기 효능감’에 미치는 영향. 통일인문학, 80, pp. 209-237.

이형모. (2023.03.27). 최근 3년 지방 인구 증가 톱 5지역 4속 '충청권'. 충청타임즈. https://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744951


*언급된 두 편의 시 모두 해당 저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나태주. (2015).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사진: <local.kit in 충청> 문화팀 오승은 에디터


매거진의 이전글 ‘타슈’가 지켜낸 사투리, 우리가 지켜낼 지역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