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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Dec 15. 2023

책방, 기억과 기록 사이에 머물다

대전 ‘머물다가게’

“제가 기록한 대전의 모습이 먼 훗날 유물로 발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대전역에서 책방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가 걸린다. 무거운 짐을 든 탓에 버스를 탈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책방지기님과의 약속까지 시간이 꽤 남아 천천히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휴대폰으로 길을 찾느라 한참을 발아래만 보며 걷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전과는 달리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오래된 오토바이의 그림자 아래에는 고양이가 잠들어 있었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에서는 나 자신의 발자국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골목을 지나 머물다가게에 도착했다. 



1. 책방과 책방지기

안녕하세요, 책방지기님!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대전의 대동하늘공원과 대동벽화마을 아래에 자리 잡은 동네 책방이자 로컬 굿즈 숍 ‘머물다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임다은입니다. 머물다가게가 있는 대전 대동에서 학교를 다니고 옆의 자양동에서 계속 살았어요. 익숙한 이 동네에 이렇게 자리 잡게 되었네요. 



‘머물다가게’는 무슨 뜻인가요?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지를 떠올렸어요. 사람들이 여행하러 왔다가 잠깐 쉬거나 머물다 가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었던 이름이에요. 책뿐만 아니라 대전 여행객들을 위한 기념품들도 판매하고 있어서 ‘책방’보다는 ‘가게’라는 명칭이 적절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익숙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한글 이름을 고민하다 ‘머물다가게’라고 짓게 되었네요. 가끔 사람들이 ‘쉬었다가게’라고 해주시기도 하는데요, 의미는 통하니까요. (웃음)


걸어오면서 봤던 풍경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머물다가게를 운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이제는 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과 모이고 작업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이 책이다 보니 지역 작가들의 책을 판매하게 되었고 조금씩 범위가 넓어져서 자연스럽게 책방이 되었어요. 이곳은 하늘공원에서 바로 내려오는 길에 위치해 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들릴 수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대전을 기념하는 상품도 판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로컬 여행사를 운영하는 동료와 협력해서 여행 기념품과 같은 다양한 굿즈들도 함께 판매하게 되었어요. 



머물다가게만의 북 큐레이션 방법이 있나요?

‘삶’이라는 키워드를 정하고, 지역과 로컬에 관련된 책은 ‘어딘가의 삶’, 여행과 관련된 책은 ‘떠나는 삶’, 사진집이나 잡지는 ‘예술적인 삶’, 에세이나 시집은 ‘나다운 삶’, 소설과 인터뷰집은 ‘누군가의 삶’, 기록에 관련된 책은 ‘기억하는 삶’, 철학과 심리 도서는 ‘사유하는 삶’, 기획과 관련된 책은 ‘기획하는 삶’으로 분류해서 정리해 두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연해 작가님의 <그대가 내게 오던 날>이요. 대전을 너무 좋아하시고 머물다가게의 프로그램에도 종종 함께해 주시는 연해 작가님께서, 대전에서 직접 찍으신 사진과 글로 만든 책이에요!




2. 대동을 위하여


머물다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 <대동에 머물다> 출간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준비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셨다면 공유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웃음) <대동에 머물다>는 제가 대동에서 4년여 동안 머물며 찍은 사진을 모아 만든 사진집이에요. 초반에는 머물다가게로 걸어서 출퇴근을 했었는데 골목을 올 때마다 이 길로, 저 길로, 또 다른 길로 걸어가 보면서 저도 모르게 동네를 여행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차를 타고 갈 때는 볼 수 없는 바닥에 있는 돌, 나뭇잎, 꽃도 보게 되고 자동차 소음, 바닥 밟는 소리, 바람 소리도 다 듣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필름이 꽤나 쌓인 거죠. 이것들을 엮어서 대동의 아름다운 풍경과 짧은 글을 곁들인 사진집을 만들게 되었네요. 그런데 필름 사진은 제가 어떻게 찍었는지 눈앞에서 바로 확인할 수가 없잖아요. 실제 사진은 한 6개월 후에 받기도 하는데, 여러 번 카메라를 고쳐 쥐고 많이 고민하면서 찍어서 그런지 그 순간이 고스란히 기억나요. 책의 표지는 근처에 있는 대동하늘공원 부근에서 바라본 풍경인데요. 퇴근길에 이 노을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찍어야 된다는 생각에 급하게 찍었던 기억이 나네요. 

머물다가게의 산책 소모임인 <풍경에 머물다>가 흥미로운데요. 아직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기대하고 있는 점을 여쭤봐도 될까요?
10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진행될 <풍경에 머물다>에서는 손미 시인님과 함께 시를 읽으며 대동의 골목을 걷고, 시와 함께 거닌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해요. 시집 <삼화맨션>에는 어릴 적 시인님이 살았던 대전에서의 추억과 동네의 오래된 풍경이 담겨있어요. 이 동네의 선선한 가을밤 풍경을 즐기면서, 시인과 같이 동네와 풍경에 어울리는 시를 읽으며 걸으면 너무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시와 함께 하는 산책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에요. 책방지기님이 좋아하는 대동 골목의 풍경이나 산책 코스를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굉장히 많은데, 대부분 간판을 보고 가셔서 다 똑같은 길로 올라가세요. 그런데, 예전 동부탕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주차장이 생긴 골목을 지나가면 ‘제로사이’라는 건물이 있어요. 그 사이에 벽화들을 오밀조밀 그려놓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부터는 계속 오르막을 향해서 가시면 돼요. 중턱쯤의 집에 가면 할머님들이 쪼르르 앉아 계신 구간이 있어요. 그러면 보시다가 “어디 가?” 이렇게 물어보시고는 길을 알려주시거든요. 그러면 이제 그 방향을 따라서 원하는 골목으로 가다 보면, 길을 헤매도 결국은 하늘공원에 올라가는 길로 닿아요. 도착해서는 풍차를 바라보고 가장 왼쪽 끝으로 난 길이 있어요. 그 숲길 따라서 쭉 가시다 보면 ‘연애바위’라고 옛날에 여기 동네분들이 연애할 장소가 없어서 산꼭대기에 숨어가지고 연애를 했다던 전설을 가진 바위가 있거든요. 그 바위에서 쌍둥이 빌딩 사이로 노을이 떨어지는 풍경이 정말 예뻐요.



꼭 가봐야겠네요. <풍경에 머물다> 외에도 지역 작가와 함께하는 아트클래스인 <머무는 밤>이 흥미로워요. 다양한 주제로 꾸준히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을까요?

동네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던 마음 덕분인 것 같아요. 사실 머물다가게를 차리고, 거의 바로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중단이 되었어요. 그러다 상황이 조금 괜찮아지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머물다가게에 대전 관련 굿즈들을 입고해 주신 작가님들도 다 대전 분이신데, 멋있고 재밌는 작업들을 하고 계신 작가님들을 대전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모르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전의 지역 작가님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머무는 밤>이라는 이름의 아트클래스를 열심히 운영하게 되었네요.



3. 기록은 기억을 완성한다  


사진으로 남기는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기록에 진심이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도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와 노트, 그리고 펜을 가지고 놀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 물려받은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기록해서 남기는 일을 해온 것 같네요. 여기 동네가 예뻐서 걷다 보면 찍고 싶게 만드는 풍경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그냥 당연하게 카메라를 들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이게 언젠가 사라질 풍경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더 많이 찍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라질 풍경이요?
흔히들 사진은 언제든 또 찍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사실 풍경은 금방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왼쪽은 위태로운 벽에 장미가 활짝 피어 있는 게 예뻐서 찍은 사진이에요. 그런데 2주 뒤에 담장이 갑자기 허물어져있었어요. 그때부터 이 동네에서는 무엇인가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의무적으로라도 이 골목의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제가 기록한 대전의 모습이 먼 훗날 유물로 발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마음으로, 나중에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킬 수 있도록 사라질 풍경들을 기록해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오시면서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다시 새로 지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텐데, 그중 사라져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요?
동부탕이요. 동부탕은 목욕탕을 위해서 만들어졌던 예쁘고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었어요. 과거에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던 흔적들도 남아 있던 재미있는 공간이었는데, 그냥 때려 부수어진다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건물 자체가 너무 노후돼서 도시재생에서도 활용하기가 애매해서 결국 철거된 거였어요. 지금은 이 공간이 공원이 되어서 지역 주민들이 활용하고 있는데, 지금 공원만 이용하시는 분들은 사라진 풍경을 알 수가 없다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그런데, 그때 동부탕 앞 건물에 ‘제로사이’라는 친구들이 들어와서 동부탕의 구조물을 활용해 동부탕의 역사와 추억을 기록하는 전시를 열어보기로 했어요. 저는 사진으로 기록에 참여했었는데요. 동부탕에 다니시던 동네분들이 많이 오셔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아쉬움도 달래셨죠.



4. 대전 대동, 그리고 머물다가게  


책방과 지역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책방은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해요. ‘음식점이나 카페처럼 다양한 가게들도 다 지역을 기반으로 상권을 형성하는데, 왜 굳이 책방만 동네 책방이라고 부르지?’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분들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는 공간에 ‘동네‘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 옆에 있는 미용실도 동네 미용실이라고 불려요. 동네 사람들이 자주 오고 두런두런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모르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들 앞에 ‘동네’를 붙일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머물다가게도 사실 처음에는 인스타나 광고를 보고 먼 동네에서 많이 오셨는데, 이제는 그래도 이 동네에 오래 자리 잡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 주시네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동네 책방’이라는 말을 많이 썼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자주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이렇게 불리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서로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 만나서 관계를 계속 쌓아가게 하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저는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우연한 만남을 되게 좋아해요. 예를 들어, 우연히 옆에 있는 다른 손님의 혼잣말에 대답하다가 생판 모르던 분들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요. 또, 머물다가게에서 하는 모임에 꾸준히 참여해 주시는 분들도 모임 때 계속 마주치시니까 엄청 친해지시는 거예요. 그런데 서로 번호는 모르니까 저한테 카카오톡 방을 만들어달라고 하시기도 하고요. (웃음) 이 모습이 저는 너무 뿌듯해요. 머물다가게가 동네 친구들을 만나는 플랫폼이 되어서 계속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네요. ‘머물다가게’에게 ‘대전’이란?

대전은 머물고 싶은 도시예요. 많은 분들이 대전은 살기 좋은 도시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 말에 너무 공감해요. 이 동네는 건물이 대부분 나지막해서 하늘이 많이 보여요. 콘크리트보다 하늘이 더 많이 보이는 동네거든요. 천변과 산이 가깝고, 3대 하천이 흐르기도 하고, 분지이기도 하고! 이런 자연들이 어우러져서 살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도시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것들이 버겁도록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사라지는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머물다가게’의 책방지기는 대전의 원도심인 대동의 한 골목에 위치해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대동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대동이 간직한 기억을 지켜나가려고 한다. 이 공간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인연을 맺고 소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남기를 바란다.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글·사진: <local.kit in 충청> 문화팀 김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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