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남해를 즐길 수 있는 곳, 여수공항으로 지금 이륙합니다”
- 한국공항공사 여수공항 홍보영상 中 -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어느 날의 오후. 전남 여수공항 내부 도로에는 차들이 다니지 않는다. 버스와 택시가 줄을 지어야 할 정류장도 텅 비어 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일부 시간 외에는 공항 청사 안에서도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땅, 바다, 하늘, 그리고 도시
도시(都市)
일정한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
<표준국어대사전>
도시 형성과 발전의 핵심은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다. 도시에서 교통이 중요한 이유다. 육상, 해상, 공중을 넘나드는 다양한 형태의 교통망이 갖춰져 있을수록 그 도시의 발전 가능성은 크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들은 다양한 교통 기반이 잘 구축되어 있다. 상하이는 물동량 1위의 항만과 화물 운송량 3위의 공항을 가지고 있다. 홍콩에도 화물 운송량 1위 공항과 세계 10위권의 물동량을 자랑하는 항만이 있다. 인천 역시 화물 운송량 2위의 공항과 인천항이 어우러져 있으며, 2025년 KTX까지 들어설 예정이라 육해공 거점 도시를 꿈꾸고 있다.
전남 동부권도 땅과 바다의 교통이 만나는 곳이라 잠재력이 크다. 호남고속도로, 순천완주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광주, 대전, 부산 등 주요 도시로 쉽게 오갈 수 있다. 또 전라선과 경전선 철도가 이곳에서 영남과 호남,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을 연결한다. 광양항은 정부 주도 개발 사업을 통해 국내 항만 물동량 2위의 해상 교통의 거점으로 자랐다.
공중 교통의 자리를 채울 유력한 후보가 있다. 바로 여수공항이다. 여수, 순천, 광양 모두를 영향권으로 포함하고 있어 전남 동부권의 거점화를 이끌 마지막 한 수로 여겨진다.
여수공항은 지난 1972년 5월에 운항을 시작했다. 김해국제공항, 사천공항 등과는 다르게 군병력이 없는 순수 민간 공항이라는 장점도 있다. 전남 동부권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여수국가산업단지 등 국가 기간 산업 시설이 모여 있어 항공 물류와 여객 운송 수요가 높다. 업무를 위해 인천으로 들어와 김포를 거쳐 여수공항으로 오는 여객이 실제 많은 편이다. 여수공항은 항공 교통의 ‘블루오션’으로서의 가치가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곳은 ‘돈 먹는 하마’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2017년부터 5년 동안 703억4900만원의 적자를 냈다. 한국공항공사가 관리하는 공항 가운데 무안국제공항, 양양국제공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액수다. 국제선이 없는 국내선 전용 공항 중에서는 최대다. 2011년 전라선 KTX 개통 후 장거리 여객 수요 일부를 KTX에 내주며 상황은 더 나빠졌다. 돈이 줄줄 새어 나가는 구멍을 막는 데에는 국민의 혈세가 쓰인다. 여수공항 비활성화 문제가 먼 산 너머의 일이 아닌 셈이다.
여순광 육해공 교통 거점화의 마지막 퍼즐, 여수공항이 가진 숙제는 무엇일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여기 못 살 데야.”
공항 흡연장에서 담배를 태우던 60대 A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주에서 사는 A씨는 순천을 방문할 일이 있어 비행기를 타고 여수공항에 처음 왔다가 제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착륙 후 을씨년스러운 공항 풍경을 마주하고서 당황했다고 한다. 그는 “공항이면 이용객을 위해서 버스들이 줄 서 있어야 하는데 눈을 씻고 봐도 버스가 안 다닌다”며 “여기서 순천 가는 데만 택시비로 2만7000원이 나왔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수 시내에서 여수공항으로 이동해 보았다. 공항버스가 없어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배차 간격(2~3시간)과 소요 시간(1시간 10분)이 너무 길었다. 결국 택시나 카셰어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까지 차로는 약 30분 정도 걸렸다.
여수와 순천 간 도로로는 옛 도로인 ‘여순로’와 새로 뚫린 자동차전용도로 ‘엑스포대로’가 있다. 여순로는 엑스포대로에 비해 선형이 곧지 못해서 도로 통행량이 적다. 여수공항은 엑스포대로에서 빠져나와 여순로를 한참 따라가야 찾을 수 있다. 공항이 주요 간선축에서 벗어나 있으니 시외버스, 시내버스 모두 공항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여수공항의 대중교통 접근성이 나빠진 이유다.
공항 가는 버스가 마땅치 않아 이용객은 자가용을 타고 올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공항에 주차난이 생겼다. 청사 1층 토스트 매장 근무자 B씨도 드문드문 다니는 시내버스 탓에 자가용 출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B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해서 한창 제주 가는 사람이 많을 때는 주차장이 부족해서 새로 지었다”며 “그때는 길가에 마구잡이로 주차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회상했다. 아직도 여수공항은 사람은 없는데 주차장에 차가 가득한 이상한 광경을 보여준다.
관광안내소에서도 택시를 권장했다. 관광안내소 직원 C씨는 “한가하시다면 시내버스를 이용하시고, 급하시다면 택시를 이용하시라고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공항과 다르게 공항버스가 없어서 이용객이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않는 시간이면 여수공항에서는 공항 직원 외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자에 빈 자리가 많아 적막이 감도는 여수공항 2층 출발층.
코로나19에서 엿본 희망, 신기루였을까
주차장에 대해 이야기하던 B씨는 “그때는 주차장이 정말 부족했는데, 지금은 텅텅 비었다”며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사람이 정말 많이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말 그랬다.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코로나19 유행 시기, 여수공항은 국내로 여행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서울(김포)과 양양, 제주 등 주요 공항으로 향하는 항공편이 여럿 있었다.
여수공항 연간 운항편수 변화(2014년~2023년). 팬데믹이 끝을 보이며 줄기 시작한 운항편은 2023년 최저치를 찍었다. 출처: 한국공항공사
팬데믹이 끝나고 상황은 오히려 전보다 더 나빠졌다. 양양-여수 노선을 운항하던 플라이강원은 경영 악화로 비행기를 멈췄고 제주항공도 여수에서 빠졌다.
여수공항을 찾는 여객은 팬데믹 시기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곳의 하루 항공편도 7편으로 줄었다. 여수-김포 3편, 여수-제주 4편이다. 여수공항은 비행기가 없는 시간대에는 사람 찾기 힘든 장소가 된 것이다. B씨는 “여기는 비행기가 있을 시간만 손님이 확 몰렸다가, 비행기가 가면 매우 한가하다”고 공항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10년 넘게 이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원래 3월에는 공항이 바빠야 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이리 없으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역을 하늘로 띄우기 위해
공항에 갈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이용객 성장은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다 보니 항공사도 취항을 꺼리는 곳이 된 여수공항. 지역사회에서는 공항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전라남도, 여수시, 순천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조례를 지정해 여수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사의 운항 손실액에 대해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그 액수도 상당히 크다. 전라남도는 여수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사에 대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25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또한 기초지자체와 각 도시 상공회의소가 공항 활성화를 위해 부단히 머리를 맞대고 있다. 특히 여수상공회의소는 주기적으로 ‘광양만권 공항 활성화 협의회’를 열어 지자체, 공항, 항공사와 전남 동부권 항공교통 활성화를 논의한다.
입체적인 교통, 날아오를 여순광
“이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이곳은 발전 동력이 남아 있고 그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해요. 특히 관광의 차원에서 개발할 요소가 많이 보여요. 이미 산업 기반은 잘 갖춰져 있으니, 관광업 활성화를 통해 청년 일자리도 확보할 수 있어요. 또한 고령 사회인 만큼, 여유와 인프라가 조화를 이뤄 노년층에게도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공항 관광안내소 직원 C씨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산업 인프라와 관광 요소의 조화라는 전남 동부권이 가진 강점이 청년과 노년에게 모두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핵심 산업지역인 여순광은 여행지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실제 여수는 매년 약 1000만명 대의 여행객을 유치해 관광업에서 준수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금은 다가오는 2026년 여수국제섬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성장의 발걸음을 완성할 열쇠, 입체적인 교통망이다.
여수공항의 잠재력은 호남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곳에 있는 여수공항에서 남부지방 전역이 의존할 만한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 자녀들과 여수공항을 찾은 40대 D씨는 경남 서부 지역에 산다. 집에서 가까운 사천공항은 군용 공항으로 쓰여 항공편이 많지 않아 여수까지 찾아와야 했다. 그는 “이곳이 차량 접근성이 가장 좋고 항공편도 많진 않지만 사천보다는 나아서 제주로 갈 때 때때로 찾는다”며 “너무 변두리에 있어 식사 등 편의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 외에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남 동부권은 산업을 넘어 관광이라는 ‘두 번째 토끼’를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손님을 맞기 위해서는 좋은 길이 많이 필요하다. 먼길을 오갈 손님과 땅과 바다를 넘어 하늘로 뻗어가려 하는 지역 기업은 여수공항의 부흥과 성장을 기대한다. 남부지방의 핵심 거점 도시로서의 미래를 향해, 여순광은 날아오를 수 있을까.
글·사진: <local.kit in 전남> 사회팀 정회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