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에서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녔다. “조금 쉬려고요.”, “아이와 함께 있으려고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며 밝게 웃어 보였다.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인관계를 피하게 됐다. 환하게 웃는 얼굴 뒤로 속내를 숨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조직 내 관계 트라우마를 겪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배신감으로 좌절했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도 받으며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서서히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깊은 상처는 온전히 치료되지 않고 적당히 봉합해서 덮어버렸다. 점점 굳어가는 줄도 모르고.
치료를 하려면 상처를 열어 보여야 하는데, 피딱지와 반찬코가 단단히 엉겨 붙어 있었다.
‘상처를 보여주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오히려 덧나지 않을까?’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럴수록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더 밝게, 더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누군가 내 진짜 마음을 알아챌까 봐!
2024년,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다.집단상담 참여다.
집단상담은 1:1 개인상담이 아니라 10명 남짓한 참여자와 집단지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자기 탐색 과정이다. 마음숨결심리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 “Dear Me” 집단상담이었다. 8년 만이다.
그러나 집단상담에서조차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며 ‘너는 나, 나는 나’로 관망하며 있었다. 이해받지 못하고 내 마음이 가벼이 여겨질까 봐 두려웠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 같았다. 또다시 버림받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집단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조금씩 꺼낼수록 내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배에 힘을 주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내 얼굴표정이 ‘억지로 웃는 듯한’ 미소였다고 나중에 집단원들이 피드백해 주었다.어찌나 긴장했던지 배에 가스가 차서 빵빵해지고 있었다. ‘어! 이러다 배가 뒤틀릴 텐데...’
지난 5년 동안 나는 단단한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예전의 상처들이 희미해지면서 치유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튼튼한 갑옷을 입고 그 누가 찔러도 아프지 않게 무장했다. 실제로 집단원들이 무슨 말을 해도 꿈쩍하지 않아서 함께 했던 분들이 많이 안타까워했다.
나도 돌덩이처럼 굳어진 내 심장이 안쓰러웠다. 누구의 말에도 상처받지 않는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나도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보통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집단이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집단 리더의 도움으로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변하고 싶은 모습을 보세요.”
“그렇게 변하고 싶나요?”
“그럼 가보세요.”
집단 리더는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변하고 싶은 모습 쪽으로 가려고 했다. 꿈쩍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힘을 주고, 붙잡은 손을 때리고 버둥거렸다. 울고 싶었다. 정말 간절히 변하고 싶었다!
집단 리더의 초대와 집단원들이 함께 해서 나는 마음을 조금 열 수 있었다. 그리고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모험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출렁거린다. 항해를 하다가 안전한 항구로 돌아와야지. 그리고 더 멀리 여행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