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른한 오후 Oct 19. 2023

N여고 나오셨다구요?

<가와마츠(川松)> 1873년 개업한 우나기 식당

일본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 동갑 여자 사람 친구

일본에 부임서 회사 직원 외에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B였다. 인사도 할 겸 아사쿠사 식당에서 마케팅부서장이랑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일본에 오래 산 그녀가 아사쿠사에 가 볼만한 집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아사쿠사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감색 레인 코트 차림의 40대 반으로 보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여인이 약속한 출구에서 서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녀임을 알아챘다.


살짝 늦은 것에 관해 가벼운 변명을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녀 또한 웃으며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통성명을 하고 가벼운 눈인사를 한 번 더 하는 사이 어제 본 사이처럼 그녀는 쉴 새 없이 애기를 하고 있다.


참 말이 적지는 않은 사람이다.


친숙한 말투,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해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가 어쩐지 친숙했다.  

    

“고향이 대구나 경북 쪽 아닌가요?”  

   

서울 사람들이야 이해할 수 없고 판단할 수도 없겠지만 대구나 부산 사람들은 서로의 사투리가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내 귀에는 같은 경상도 사투리인데도 우리(?) 쪽으로 들렸던 것이다.

    

“어떻게 아셨어요? 사람들이 저 다 서울 사람인 줄 알아요.”

  

우리만 아는 부산과 대구 사투리의 차이  

빵 터졌다. 누구나 그녀의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적어도 서울 사람이 아님은 확신했을 터이다. 나의 귀가 매우 섬세하다며 엄지 척 하면서 수줍게 웃는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 나는 고백했다.

     

“저도 고향이 대구라서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촌스럽게 어느 고등학교 나왔냐고 물으니까 N여고를 나왔다고 했다. 아, N여고라….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친구가 다녔다는 그 학교였다.


자주 생각나는 건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동창회나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이 있으면 무조건 그녀가 그 모임에 나왔는지를 묻고는 했다.


한 번도 그런 모임에 나온 적이 없다는 얘기만 듣고 실망하기만 했다. 아주 가끔 나랑 동갑인 동향 여성을 만나고 그녀가 진학한 N여고를 나왔다고 하면 본능처럼 내 짝사랑 그녀를 아냐고 물었다. 오늘도 그랬다.  

 

N여고 나온 그녀를 아세요?  

“EJ라고 아세요? 같은 해에 졸업한”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꼭 졸업 앨범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게 인연이 됐는지 급속도로 B와 친해졌다. 정말 일본에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B는 말이 참 많았다. 말 많은 게 단점이 아닌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열정이 넘쳤지만 막 눈치 없이 이 말 저 말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제공하는 정보의 질도 우수해서 꽤나 귀 기울일만한 얘기가 많았다. 오랫동안 관련 학계에 있으면서 우리 회사를 컨설팅해주는 역할을 했다. 실력도 있는 맹렬 여성이라니. 인간적인 매력이 없을 수 없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그녀가 일본에 정착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녀의 분위기와 아우라 때문인지 대단한 서사가 있을 것만 같았다.      


“집에서 시집가라는 잔소리를 피해서 일본으로 왔어요.”     


시오노나나미처럼 시집 가라는 잔소리가 싫어서 온 일본

예상보다는 시시했지만 그마저도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오노나나미가 연상되기도 했다. 일본 명문 대학을 졸업할 때쯤 남들처럼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피해 무작정 이탈리아로 갔단다.


그 작은 계기가 지금까지 이탈리아에 그녀를 머무르게 했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대작가가 됐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힘든 타국 생활이 시작됐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강한 의지로 도쿄를 넘어 일본 전역을 누비면서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떤 곳이든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100년 식당은 명함도 못 내미는 곳이 바로 아사쿠사다.


100년 노포는 오래된 축에도 못 끼는 아사쿠사

아사쿠사(淺草)는 누구나 다 아는 도쿄의 관광지다. 서울의 인사동에 비교하면 섭섭할 정도로 규모도 크고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 아사쿠사다. 100년 정도 된 노포는 속된 말로 발에 차인다.


도쿄에서 가장 많은 노포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100년 이상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존속해왔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식당 문을 노크해도 문제가 없다.     


가와마츠 별관. 본관은 길가에 있지만 별관은 뒷골목에 있다. 별관이 훨씬 운치가 있다.


가와마츠(川松)도 불과 150년 정도(?)밖에 안된 노포다. 땅값 비싼 아사쿠사에서 꽤나 넓게 식당을 하고 있다. 아사쿠사 메인 거리에 본점이 있고 센소지(淺草寺) 건너 편 골목에 별관이 있다.


편안하게 다양한 일본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본점으로 가면 되고 느긋하게 우나기(민물장어)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길 건너 별관으로 가는 게 낫다.  별관으로 가면 5대째 가와마츠를 이끌고 있는 여주인을 만날 수 있다.      


아사쿠사에는 이렇게 운치 있고 멋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별관을 찾아가면 환한 미소의 5대 여주인을 만날 수 있어

별관을 찾아가는 골목이 꽤나 운치가 있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메인 거리를 벗어나 오래된 일본 가옥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틈입하면 바로 별관을 만날 수 있다.


딱봐도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오래된 2층짜리 건물이 흐릿하지만 뚝심 좋게 조명을 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도 지금의 2020년대가 아니고 공간도 도쿄라는 첨단 도시와는 전혀 딴판인 곳처럼 느껴진다.      


5대째 가와마츠를 이끌고 있는 여주인. 인상이 매우 선하다.


아사쿠사 맛있는 식당 모임 포스터. 대부분 100년 넘은 식당이다. 오른쪽 맨 아래에 5대 여사장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눈에 봐도 아주 선한 인상의 주인이 환한 미소를 반긴다. 왜 이렇게 낯이 익나 싶어 봤더니 ‘아사쿠사 노포 모임’ 포스터에 등장하는 바로 그 얼굴이다.


연예인을 직접 본 것 같은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 봤다. 어떻게 한 자리에서 이렇게 오래까지 일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철저하게 한국인의 시각으로.


그녀는 대답했다.


“그냥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150년이 뭐 그리 오래 된 거냐고 반문했다. 한국에는 100년 넘는 식당이 전국에도 손가락에 꼽힌다고 했더니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옛날 그 맛을 잃으면 이 집도 문을 닫는다

다른 노포에서도 느껴지는 철저한 소명의식, 책임감을 가와마츠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집이 더 기억에 남는 건 음식 맛 때문이다.


솔직히 아주 느리게 음식이 나온다. 150년 노포에서 빨리 밥 달라고 하는 건 오히려 촌스러운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물었다. 옛날에도 이런 맛이었냐고. 사람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그 맛을 잃으면 이 집도 문을 닫아야합니다.”


 B 덕분에 맛있는 우나기도 먹고 짧았지만 황홀했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식사하는 동안 웃고 떠들며 많이 도 친해졌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가 돼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가끔 밥을 먹었고 커피도 마셨다.

  

지금 그녀는 마흔 언저리에 만난 일본인 남편과 도쿄만이 보이는 미나토구(港區) 고급 맨션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떠나던 해에는 열정이 바탕이 돼서 공공기관의 책임자로 스카우트 되기도 했다. 열정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니까.

 

파이팅! 맹렬 여성 B!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