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츠나스시(おつな寿司)> 1875년 롯폰기에 창업한 스시집
같은 반 학부모이자 같은 맨션에 사는 이웃사촌 J
“사투리 쓰시네요.”
아내랑 내가 얘기하고 있는데 일본 사람처럼 생긴 여자가 끼어들었다. 일본 사람이 한국 말을 쓰는 줄 알았다. 얼떨결에 아내로부터 J를 소개받았다. 부산 출신이었던 J는 내 사투리가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내와 J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던 딸아이들의 학부모였고 같은 맨션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비슷한 지역의 대학을 나왔고 나이도 1살 차이라 금세 친구가 됐다.
화려한 경력에다 성격마저 똑부러지는 글로벌 기업 HR 매니저
휴직을 하고 일본에서 전업 주부로서의 삶을 시작한 아내와 일본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워킹맘 J는 서로의 이해 관계도 맞아 떨어져서 도움을 주고 받는 일이 많았다.
회사에서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아내에게 딸 아이의 하교를 부탁하기도 했고 아내는 낯선 일본 생활의 이것저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J는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여자였다. 한국 명문대 출신에다가 글로벌 기업 HR 매니저라니. 거기다 성격도 밝아서 붙임성이 있는 편이었다. 곱상하고 지적인 느낌을 주는 하얀 얼굴과 똑 부러지는 말투는 덤이었다.
겉으로 보아서도 뭐 하나 나무랄 게 없었다. 남편은 인도 사람이었다. 그녀의 딸은 코카서스 인종인 아빠의 장점과 단아한 동양인 엄마의 장점을 골고루 빼닮았다.
롯폰기에서 150년 스시를
아내와 교분이 깊어지던 어느 날, 나까지 해서 셋이서 J가 롯폰기에서 스시를 한 번 먹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방문한 곳이 <오츠나 스시>였다. 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느껴졌다.
일본 특유의 엄숙한 느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불친절한 느낌마저도 살짝 들었다. 익숙한 큰 인사 소리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차분해도 너무 차분했다.
나이가 꽤 지긋해보이는 노신사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이나리즈시’를 곱게 포장해서 사가고 있었다. 이나리즈시는 ‘유부초밥’이다.
이 집은 생선 살을 재료로 하는 것보다는 유부초밥이나 김밥(노리마키海苔巻き) 같은 재료를 쓰는 스시에 더 강점이 있어 보였다.
좀 다른 얘기지만 김밥의 유래와 관련한 다양한 이설이 있다. 가장 뜨거운 논쟁은 원조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하는 것이다.
김밥 원조 논쟁 : 일본일까? 한국일까?
일본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쪽은 김 자체에 관한 기록은 ‘경상도지리지(1425)’나 ‘동국여지승람(1530)’ 등 전라도 특산품으로 나오긴 하지만 김을 싸서 먹는 형태인 김밥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일제 강점기에 확산된 ‘도시락(벤토)’ 문화와 김밥이 맞닿아 있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으로 들기도 한다. 실제로 일제 시대에 ‘김밥’ 이라는 음식이 대중화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긴 하다.
일본이라는 주장 : 일제 강점기에 김밥은 대중화됐다
반면 한국이 기원이라는 쪽은 ‘삼국유사(1281)’에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본초강목(1596)’에도 김을 채취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고유의 ‘쌈’ 문화와 결합해 ‘김밥’이라는 존재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더불어 김을 식용으로 먹은 시기가 한국이 일본보다 더 빨랐다는 점도 한국 원조설을 거들고 있다.
한국이라는 주장 : 삼국유사 등에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쌈' 문화와도 연결
어떤 것이 사실인 지는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건 ‘김밥’은 ‘한국 음식’이고 ‘노리마키’는 ‘일본 음식’이다. 한국의 김밥이 소금과 참기름 위주의 간을 한다면 노리마키에는 일반 스시처럼 식초 베이스의 간을 한다.
들어가는 재료도 사뭇 다르다. 계란 지단, 시금치, 오이, 당근, 단무지 등 색깔 위주의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반면 일본의 노리마키는 주로 오이, 참치살 등 한 가지 재료가 주로 들어간다. 물론 일본에서도 우리 김밥 같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후토마키(太巻き 뚱뚱한 김말이)’가 있긴 하지만.
자장면은 한국 음식, 라멘은 일본 음식 : 원조는 다른 나라지만 결국 어떻게 뿌리 내리냐가 중요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에서 시작된 ‘자장면’이 한국 음식인 것처럼 중국에서 시작된 ‘라멘’ 또한 ‘일본 음식’이다. 시작은 다른 나라에서 시작됐지만 각자 다른 나라에 다양하게 변용돼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150년 노포의 흔적은 거의 없어
우리는 별다른 안내 없이 빈 자리로 가서 앉았다. 먼저 침묵을 깬 건 J였다.
“150년 노포 치고는 너무 옛날 느낌이 안 나네요.”
그랬다. 세월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외관은 롯폰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스시집 같았다. 뒤에 알게 된 것이었는데 몇 년 전에 리모델링해서 신장개업했단다.
스시가 나오자 한치로 추정되는 것을 하나 집어 먹었다. 재료가 정말 신선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150년을 버텨온 것은 아닐 것이다. 김을 풀어 놓은 미소시루(된장국) 또한 일품이었다.
내 말 한 마디로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그녀
참치를 먹으면서 다소 언짢은 기분이 많이 녹아내렸다. 입도 열렸다.
“일본에 정착해서 사는 한국 사람들은 다 사연이 있는 것 같아. 한국에서 안 좋은 이를 겪고 온 사람도 꽤 있는 것 같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소리였다. 재잘재잘 웃고 떠들고 끊임 없이 대화를 하던 J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젓가락을 놓았다. 갑자기 속이 안 좋다고 했다.
그녀는 말 없이 우리가 식사를 하는 모습만 지켜봤다. 그녀는 조용히 먼저 나가서 계산을 하더니 집에 먼저 가봐야겠다고 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아내와 나는 롯폰기의 뒷골목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떠나고 우리는 서로의 얘기들을 되새김질 하며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아내가 얘기를 했다.
“J 아빠가 일본 사람이래. 엄마가 혼자 J를 키웠나봐. 그러니까…”
그 다음 얘기는 안 들어도 될 것 같았다. J한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광장>의 이명준처럼
그녀는 지금 아빠의 나라 일본도 아니고 엄마의 나라 한국도 아닌 싱가폴에서 캐리어를 쌓으면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아내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명준이 떠올랐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