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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한 오후 Oct 19. 2023

우리 구역의 대장

<토토야우오신(ととや魚新)> 1890년 창업 아카사카 와쇼쿠(和食) 식당

차갑디 차가운 일본 지사의 터줏대감


“어차피 떠날 분이시잖아요.”    

 

K가 나에게 한 첫마디였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발령받고 첫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잘 안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런 공식을 깨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있다.


K가 그랬다. 본사인 한국에서 일본 지사로 발령 난 나에게 K는 아주 쌀쌀 맞게 대했다. 나름 내가 직속 상관인데 그런 태도가 마뜩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인성 자체가 차갑고 모난 친구인줄 알았다.


조금씩 그녀를 알아 가면서 상당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선입관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전공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HR 관련 업무를 오래 해왔던 터라 그 누구보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했던 터였다.

   

싹싹했던 그녀의 라이벌과 늘 비교 대상

일본 지사의 창립 멤버였던 K는 누가 봐도 회사 기여도라는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인력이었다.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임금 조건과 근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하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 하나로 버텨 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높게 평가해야 할 인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다른 부서 O와 늘 비교를 당했다. 그녀들은 각각 부서의 장이었다. 똑부러지게 일 처리하고 담당 업무의 전문성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축적해온 점은 둘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캐릭터가 달랐다. O는 싹싹했고 K는 투덜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도 그랬다.     

 

입바른 소리를 달고 사는 K

특히 본사에서 파견돼서 일본으로 온 임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O를 좋아하게 됐다. 반대로 K는 업무 능력은 있으나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만이 있으면 참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잘했던 게 바로 K였다.


시간이 지나서 근본적인 불만에 관한 이해가 생기긴 했다. 본사에서 발령받고 일본으로 온 임원 대부분은 자신의 실적과 대외 이미지에 치중한 나머지 열악한 직원 처우나 근로 환경에 관해서는 비교적 덜 신경을 썼다.


그렇게 십수년이 지나갔고 터대감이었던 K는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 O는 어느 조직에나 있는 순응형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잠시 왔다 가는 임원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이 급여든 승진이든 어떤 형식으로라도 돌아왔다. 늘 거기에서 소외돼 있었던 사람이 바로 K였다.


K와 갈등이 계속 되다

당연히 초반에 K와 갈등이 많았다. 말이 꽤나 직설적이었던 나의 작은 말 한 마디에 K가 상처 받기도 했고 친절하지 못한 그녀의 태도에 나또한 불만이 쌓여 갔다.


그런 악순환이 꽤나 지속되고 있었다. 까칠하고 모난 그녀와 대화를 하는 것조차 불편한 상황이 돼 갔다. 다른 직무를 부여해서 조금은 괴롭히고 싶은 본능도 발동했다.


이내 그건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에 큰 마음 먹고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근사한 곳에서 점심을 한 번 사기로 했다.     


"이게 바로 일본의 단정함이지". 와쇼쿠의 정석, <토토야우오신>

아카사카의 수많은 음식점 숲에 들어서면 길을 잃기가 십상이다. 그 골목이 그 골목 같다. 몇 번을 돌고 돌아도 제 자리다.


구글맵을 작동하지 않으면 찾기가 이만저만 어렵지 않은 곳에 <토토야 우오신(とゝや魚新))>이 있다. 1890년에 문을 연 와쇼쿠(和食) 식당이다.  와쇼쿠는 우리가 흔 얘기하는 '일식' 을 얘기한다. 여기서 '和'는 '日'과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된다.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는 약간의 엄숙함이 느껴졌다.


130년 된 집인데 입구는 소박하고 담백하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몸가짐과 태도도 단정하기만 하다. 실내도 아담하다. 이런 집이 넓으면 더 안 어울리지 싶다.


아주 작은 뜰이 있고 딱 1팀만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아늑한 방도 하나 있다. 이런 방은 예약이 필수다. 그 방으로 예약을 해 놓았다.


평소 다투던 두 사람이 조용한 방에서 점심을 나눈다?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말을 걸어야 한다.그게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이라고 성질을 죽이면서.  

   

“어떻게 일본에 오게 된 거예요?”     


그런 질문은 수백 번도 더 들어봤다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국이 싫어서요.”     


예쁜 꽃붕어 3마리가 우리를 반겨줬다.


이런 식의 답변이라면 대화를 더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참고 참아야 한다. 다른 대화 주제를 찾아봤다. 본능적으로 K가 가장 좋아할 만한 대화 주제를 찾았다.


옆 부서 부서장이자 라이벌인 O에 관한 얘기를 했다. 칭찬이 아니라 험담이었다. 소위 말하는 뒷담화. K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음처럼 차가웠던 가슴이 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화가 술술 풀였다.


솔직하고 진솔한 얘기를 많이도 했다.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 속에서도 회사에 조기 복귀해 일 했던 기억들과 일본 지사 창립 이후 굳건히 자존심 하나로 버텨 왔던 얘기, 열심히 일하는 부서원들을 챙겨주지 못하는 슬픔 등등 꽤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산해진미의 대표 선수가 하나씩 담겨져 있는 벤토, 완벽하다

기다리던 벤토가 나왔다. 다양한 색깔 맛있는 재료로 바구니에 빈틈없이 담겨져 나온 모습만 봐도 눈이 즐겁다.


영양을 골고루 고려했고 산해진미의 일부가 하나씩 담겨 있는 느낌. 젓가락을 들어 무엇부터 먹어야할 지 행복한 고민이 생긴다.


없이 자란 탓인지 맛있는 걸 뒤에 먹는 습관이 몸에 배였다. 흔하디흔한 연어 구이부터 먹어본다. 일본의 연어는 대체로 한국의 연어보다 맛있다.


조리법 때문인지 원재료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값싼 뷔페의 감초처럼 나오는 연어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보다는 높게 대우하는 듯하다.


이가 간지러울 정도로 연하고 부드럽게 부서지는 주황색 연어 살이 식욕을 돋우기 시작한다. 계란말이, 미니 옥수수, 버섯 조림, 소라 조림, 가마보코, 닭고기 경단, 찐 새우, 이쿠라 등을 하나씩 조심 스럽게 입 안으로 가져간다. 즐거운 향연 시작이다.


입 안에 머무르는 시간의 짧음을 통탄할 뿐이다. 맛도 모양도 수준급이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답다. 벤토를 먹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덕담 한 마디를 건넸다.   


소쿠리에 담긴 정식이 너무나 예뻐서 손을 대기가 미안할 정도다.

  

“인상 쓰지 말고 좀 웃으세요. 이렇게 예쁜 사람이.”     


그랬다. 찌푸리지 않으면 정말 좋은 인상이었다. 진심이었다. 누가 그녀를 그렇게 찌푸리게 했을까.


     

<토토야우오신>, 최고의 벤토였다. 2,500엔이 안 아깝다. 탄수화물을 싫어하는데 밥의 양이 적어서 좋고 반찬들이 허투루 하나하나 그냥 넘길 게 없다.


편안하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일본 정통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130년이나 된 정통 요리를. 시간에 밀려 사는 사람들이라면 조용하고 담담하고 편안한 <토토야 우오신>을 찾기를 권한다.


아카사카라는 번잡한 도심 속에서 미식으로의 여행, 130년이라는 시간으로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어렵게 구글맵을 키고서라도 꼭 찾아보기를 바란다. 점심 피크 시간을 지나쳐 가는 게 좋다.     


전형적인 와쇼쿠. 사시미, 절임류, 계란말이, 생선구이, 미소시루 등.


예쁘다 못해 아름답다.


K랑은 그 이후 많이도 친해졌다. 밥 한 끼의 힘은 그만큼 크다. 그날의 벤토 점심 이후로 많이 친해졌다. 그녀의 진정성을 발견했고 아낌 없이 응원해주기로 했다.      


외국인이나 관광객이라고는 찾아 보기 힘들다.


조용히 식사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봄 햇살이 따사롭기만 하다.


의리 있는 우리 구역의 진정한 대장

어느 날 다른 모임 사람들과 1차로 식사를 하고 2차로 맥주 한 잔을 더 하러 가기로 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일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국식 치킨집으로 정했다.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집이었는데 왼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K를 발견했다. 자기 부서원들과 치맥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그들과 인사를 했다. K에게 얘기했다.     


“갈 때 그냥 가. 내가 계산할 거야.”     


K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2차를 마치고 계산하려고 하니 K가 계산하고 갔단다. 다음 날 회사에 와서 그녀를 나무랐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 했다.   

  

“만날 본부장님한테 얻어 먹기만 하는데요. 그리고 그 날은 저희 부서원들이라 제가 꼭 사주고 싶었어요.”     

뒤에 들은 얘기지만 K가 부서원들을 챙기는 세심한 배려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윗사람들하고는 불편할지언정 부서원들하고는 친누나, 친언니처럼 아끼고 신경쓴다는 것이다. 속이 참 깊은 친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 대한 신뢰가 더 쌓여만 갔다.


그 이후에도 업무를 가지고 참 많은 추억과 애환을 서로 나누고 겪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가장 보람찬 순간에도 그녀와 함께 했다.   

   

무뚝뚝한 그녀가 전해준 손수건과 만년필

내가 한국으로 오던 날, 그녀는 나에게 만년필과 손수건을 선물해줬다. 무뚝뚝한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정말 그녀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한국에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기쁜 소식을 들었다. K가 자기를 닮은 예쁜 딸을 출산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낌 없이 축하를 해줬다. 일본인 남편 사이에서 몇 번의 유산을 했고 거의 포기를 했었다.


그런 상황을 아는 터라 시시때때로 절대로 포기하지말라고 했고 만약 아이를 낳으면 가장 먼저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다. 그런 그녀가 마흔이 넘어서 첫 생명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축복이 내려왔다

누군가의 일에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졋다. 그녀는 퉁명스러웠지만 자신의 표현을 에둘러 하지 않았다. 그게 그녀의 힘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산다. 용기와 힘을 주어서 그렇고 현실적으로 급여도 많이 올려줘서 그렇단다. 그저 나는 웃을 뿐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누구에게나 힘이 된다. 가족이든 회사의 동료든, 누구든.       


정통 일본 스타일의 와쇼쿠(和食)을 한 번쯤은 느끼고 싶다면 <토토야우오신>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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