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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한 오후 Oct 19. 2023

딩크족의 최후

<하나무라(花むら)> 1921년 창업한 아카사카의 덴푸라 식당

그녀는 우리에게 과분했다

거래처 사람들과 신바시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던 길이었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C였다.


신입사원으로 최종 합격해 총무 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였다. 처음에는 뽑고 싶지 않았다. 나름 도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립 대학 출신인데다가 그녀의 능수능란하고 막힘 없는 답변에 본능적으로 오버스팩임을 느꼈다.


나이도 꽤 있었고 대학 졸업하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몇 년 살다가 다시 신입사원으로 들어오겠다는 거였다. 총무부 막내로 가장 밑바닥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다.  


비교적 고연령, 고학력의 그녀가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본능적으로 생겼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급여로는 이런 인재를 영입하기에 버거운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 회사가 답답하지 않을까요?”     


“뽑아주십시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강력한 의지 하나만 보고 최종 합격

그래서 몇 번을 되물었다. 강력한 의지가 느껴져 고심 끝에 선발했다. 특히나 실망시키지 않을게요라는 말 한마디의 울림은 상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C는 총무 파트의 막내로 들어오게 됐다. 가끔 지나면서 그녀를 볼 때마다 땅콩이 잔뜩 들어간 초코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코볼을 입에 넣으면 얼마지나지 않아 초콜렛은 다 녹아 없어지고 땅콩만 남게 된다. 그때의 까칠한 느낌이랄까.


무언가 늘 눈길이 가는 그녀였다. 그녀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더 걱정되는 건 따로 있었다. 회사 창립 이래 자리를 지켜온 총무 부서장이 1명 있었는데 늘 총무 부서원들이랑 갈등을 일으켰다. 어떨 때는 직장내괴롭힘에 가까울 정도의 언사나 행동을 해서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나간 경우가 허다했다.


꽤 오래 버텼던 친구들은 열악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결국은 떠나버렸다. 이래저래 신입사원 1명 뽑기가 만만치 않은 자리였다.      


예상(?)외로 잘 버티는 그녀

C는 용케 많은 우려와 관심 속에서 무탈하게 1년을 잘도 버텼다. 그런 그녀를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간만에 마주쳤다.     


“어때요, 회사 생활은?”    

 

“좋아요, 정말 좋아요.”     


환하고 밝은 대답이 돌아와서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보통 내공은 아니다 싶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상관인 총무부서장하고도 꽤나 잘 지낸단다. 이 정도면 오히려 회사가 미안할 정도다.


1년을 머무를 수 있다는 건 더 오래오래 회사를 다닐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니까. 그녀의 남다른 적응이 대견해서 뭔가 특별한 것을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총무 부서장과 셋이서 덴푸라를 먹기로 했다.     


꽃처럼 예쁘게 튀김을 튀겨주는 100년 덴푸라집 <하나무라>

100년 튀김 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복잡한 아카사카 골목을 찾고 찾아서 도착한 곳이 <하나무라(花村>다. ‘꽃동네’라는 의미를 지녔고 다이쇼(大正) 2년, 그러니까 1921년 아카사카 지금의 장소에서 창업을 해서 4대째 이어오고 있다.


'꽃동네'라는 이미지에 어울리게 입구에서부터 단풍나무가 우리를 반기고 있다.


아카사카의 주택들 속에 섞여 있고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찾아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어렵게 찾아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기척이 없다. 확인 해 보니 낮 12시부터 저녁 9시까지 브레이크 타임 없이 영업하는 집이었다. 뜻 모를 적막감에 우리 일행은 순간 머쓱해졌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5분쯤 지났을까. 대기업 부장이나 임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근엄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우리를 맞았다. 오래된 일본 전통 가옥 형태를 띈 식당은 1층에는 다다미 방 같은게 이어져 있었고 문은 전부 닫혀 있었다.


 

1층은 모두 다다미로 돼 있다.

2층에는 독특한 구조의 방이 손님을 맞이한다    

남자는 우리를 2층으로 안내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가니 아주 큰 방이 나타났다. 칸막이 같은 건 없고 방 중앙에는 3평 정도의 오픈된 정사각형 주방이 선큰가든 모양의 푹 파여진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주방 안에는 일본 전통 가옥 한 가운데의 화덕처럼 중국집 웍만한 크기의 기름 솥이 걸려 있다. 주방은 파놉티콘처럼 사방을 향해 열려 있었고 360도를 돌면서 갓 튀겨낸 튀김을 바로 바로 제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손님들은 주방의 4면에 각각 앉아 서빙을 받는 구조다. 독특한 구조도 구조거니와 식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메뉴판 같은 것도 일절 보이지 않았다. 많은 식당을 다녀봤지만 처음 보는 형태였다.   


   

2층은 이렇게 생겼다. 중간에 셰프가 들어가서 신선한 재료로 즉석에서 튀겨준다.


팔순에 가까운 창업 3대 주인 어르신이 직접 튀겨 주신다. 지금은 4대가 잇고 있다.


주방장은 별 다른 인사 없이 오늘 튀겨낼 재료를 소개했다. <하나무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 제철에 맞는 재료를 가장 신선하게 튀겨낸단다.


우리는 뭔가 성스러운 의식의 참가자들이 돼 노주방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더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캠퍼스 커 출신의 그녀는 DINK족

침묵이 너무 오래 가는 것 같아서 C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는 안 가질 생각이에요?”   

  

매우 사적인 질문을 했다. 침묵을 깨는 질문이 다시 침묵으로 인도할 수 있는 질문이라니. 아뿔싸 싶었다. 그래도 C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아이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녀는 캠퍼스 커플이었고 같은 한국이었다. 일본의 대표적 브랜드이자 글로벌 메이커인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둘 다 엘리트고 이제 C까지 취직했으니 말 그대로 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인 셈이다. 똑부러지고 확고한 대답을 듣고서는 관련된 주제로 얘기를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식당 곳곳에서 '나 100년 된 식당'이야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먼저 아스파라거스를 신선하게 튀긴 것이 나왔다. 특유의 여린 향이 올라왔고 기름을 많이 머금지 않아 일말의 상쾌함도 느껴졌다. 뒤이어 붕장어 덴푸라가 나왔다.


바싹하지 않고 눅진하면서 촉촉했다. 튀김은 바싹해야만 기분 좋고 튀김답다라는 선입견을 가볍게 깨주는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입 안에 깨나 오랫동안 머물렀다.


가지 튀김이 이어졌다. 기름을 알맞게 머금은 가지는 고소함으로 제대로 무장했다. 너무 뜨거워 입천장이 쉬이 벗겨지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어떤 것은 폰즈 소스에, 또 어떤 것은 소금에 찍어 먹었다. 중년의 남자는 기계적인 말투로 식재료에 따라 다르게 찍어 먹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 같았는데 일본어가 짧아서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계절에 맞는 채소와 생선 등을 바로 튀겨 내준다.

호사로운 튀김의 향연, 끝이 없다

다양한 덴푸라와 후라이들이 몇 점 더 이어졌다. 선배와 나는 말없이 튀김의 향연을 구경만 할 뿐이었다. ‘아키아게’라고 불리우는 신선한 야채와 잔새우가 뭉쳐진 튀김이 나오면서 모든 의식은 종료됐다.


주방장 어르신은 엄숙한 의식의 마지막에, 더 필요한 한 점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선배는 전갱이 튀김을 골랐고 빵가루를 가볍게 묻혀 튀겨낸 굴후라이를 주문했다.


취기 때문에 그녀에게 한 실수

아사히 생맥주의 거품 링이 말라갈 즈음, 취기 때문인지 뒤끝 있는 내가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아이가 있으면 좋은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총무부서장도 뭔가 나를 보는 눈빛이 차갑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건배를 제안했다. 그래도 아름다운 아카사카의 밤이었다. 내가 단단히 실수를 한 모양이다.


물론 그 이후에 C랑은 너무 잘 지냈다. 가끔 어려운 일 있으면 차 한 잔 마시면서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조언들을 열심히 해주는 사이가 됐다. 한국에 와서도 계속 연락을 할 정도였다.    



아름다운 딩크족의 최후

한국에 귀임하고 나서 3년이 지났을 때 C로부터 장문의 메신저가 왔다. 그녀의 메신저에 신생아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본부장님! 덕분에 무사히 출산했어요.”

    

너무나 반가운 얘기였다. 축하의 말을 계속해서 보냈는데 다시 답변이 왔다.     


“그런데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아무도 안 알려주셨어요.”     


나도 모르게 크고 웃고 말았다. 어떤 연유로 아이를 가지게 된 건지는 자세히 모르겠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들에게 또 다른 축북이 갔을 테니까.


이렇게 또 하나의 딩크족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주 아름다운 최후’였다고밖에는 얘기할 수밖에는 없겠다.  


        

단정함과 세월의 흔적이 골고루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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