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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사 Mar 12. 2024

마음에게도 마음이 있다

이미 열일하는 마음에게 다그치지 말자 - 마음도 지친다



감기처럼 우울을 타던 나는 곧잘 마음을 다그쳤다.



조금 더 버텨봐. 조금 더 잘해봐. 조금 더 굳건해져 봐.

다른 사람들 다 아무렇지 않게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고 슬퍼하는 거야. 좀 더 강해져 봐.

그렇게 혼내고 가르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지 마음은 더 약해지고 쉽게 부스러졌다. 남들 시선에 잘 다치고 남들 말에 엉엉 울었다. 사사로운 일에 설움이 울컥울컥 치밀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내 마음은 물에 적신 종이처럼 잘 찢어졌다.


그게 싫어 아픈 마음을 다그치고 또 가끔은 외면하길 몇 년째였다. 어느 날 문득 깨닫기를 마음을 다그치는 내 모습이 공부하라 잔소리하는 부모님 같았다. 그렇게 쪼아대면 듣는 이가 어떤 생각을 할지 뻔했다. 공부하면 좋은 거 누가 모르나? 열심히 하려는데 왜 찬물을 끼얹는 거지? 먼저 공부할 계획이 있었어도 그런 잔소리를 들으면 단박 공부하기가 싫어지기 망정이었다. 분명 좀 이따 책 피려 했는데 갑자기 신물이 날 수밖에 없는 거다. 내 의지는 몰라주면서 잘해보라 강요만 하는 것에 공부할 맛이 딱 떨어지는 경험을 많은 누구나 했을 거다.



그처럼 마음에게 좀 더 강해져라, 좀 잘해봐라, 하면 마음도 그러기 싫어진다. 이미 아프고 다친 마음에게 더 잘해보라고 재촉해 봐야 소용없다. 당신의 마음은 1. 그럴 기력이 없을 만큼 너무 지쳤거나 2. 당신이 눈치채지 못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둘 중 어느 상태이든 간에 독촉하는 것은 마음의 기를 죽인다. 첫 번째라면 힘없는 마음을 독촉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위로와 지지가 먼저인 마음에게 채찍질해 봐야 마음은 더 진이 빠진다. 두 번째라면 이미 애쓰는 마음에게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그러니 다그치지 말자. 마음이 힘들어하면 힘들구나 하고 위로해 주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북돋워주자. 마음에게도 마음이 있다. 지친 마음에게 채찍질하는 것보다 그 속을 알아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이십 대에 다녔던 회사엔 나를 무던히 싫어하던 상사가 있었다. 살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못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적개심을 내비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신입사원인 입장이라 감히 말대답도 못하고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다. 그날도 말도 안 되는 괴롭힘을 받고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철 타고 가는 길에 허탈함만 몰아쳤다. 눈에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런 나를 다그쳤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그 상사가 나를 미워하는 것뿐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슬퍼해야 해? 울지 마. 그거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마음이 이렇게 약해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정신 차리고 눈물 그치자.


그러자 눈물은 그치지 않고 괜히 더 서럽기만 했다. 내 마음이 이미 슬퍼 내가 한 말조차 아플 때였다. 이럴 땐 내 마음을 잘 보듬어줘야 한다. 그래, 속상하지. 네 잘못 아닌 거 내가 알아. 이런 순간이 괴로운 것도 알아. 그렇지만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만나기 마련인 거야.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이야.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 사람이야. 그러니 이겨내 보자.

그렇게 나라도 내 마음을 달래고 어여뻐해 주니 심상이 좀 나아졌다. 나만은 나를 위해준다는 사실에 위로가 됐다.


그런 순간이 쌓이면서 나는 내 마음을 위로하는 법을 알아냈다. 이렇게 하면 일주일 괴로워할 일을 이틀 괴로워하고 만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누가 뭐라 하든 나만큼은 나를 언제나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준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내 편 인 것만큼, 내 마음의 편인 것만큼 든든한 일이 없다. 그러니 세상이 내게 못되게 굴어도 나 만큼은 내 마음을 아끼고 사랑해 주자. 이미 힘든 마음에게 다그치지 말자. 우리 마음은 이미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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