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널널한 미국 항구 vs 빠른 부산 항구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365일 24시간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 항구에 비해 미국 항구는 노동자를 중시했다.
그래서 코로나 때 바이든이 컨테이너 적체 현상을 해결한다며 들고 나온 연설에서 LA항이 24H/7Days로 운영되도록 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어? 컨테이너 항만인데 여태 그렇게 작업을 안 했다고?'
그러다 십몇 년 전인 2008년에 입항했던 때가 떠올랐다.
'아 맞다! 그때도 저녁에 쉬고 휴일날 쉬고 그랬지!'
그때도 그런 점이 부러웠다.
아무래도 육상 작업을 그렇게 쉬면 본선 선원들도 긴장을 풀고 조금 편히 쉴 수 있고 접안 시간도 길어져서 좋았다.
열심히 일하는 게 더 중요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요즘은 그래도 우리나라도 명절 당일엔 쉰다.
미국 항구의 여유로움 덕분에 할리우드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갈 수 있었다.
한인 교회 목사님이 선원 봉사 차원으로 입항할 때마다 배에 올라오셔서 미국 관광이나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주셨기에 정말 편하고 효율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이런 맛에 배를 탄다!
우리나라가 컨테이너 환적항으로 커지기 시작한 게 일본 고베 지진 덕분이라고 한다.
아시아 최대 항구였던 고베항이 지진으로 무너지면서 대체제로 급하게 한국 부산에 기항해 봤는데, 일본 원칙주의와 다르게 적당히 효율적이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게 화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이런 게 바로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대표적인 예시인 것 같다.
고객도 없는데 엄청난 국가 돈을 투입해 일본 따라 컨테이너 항만을 건설하고 적자를 이어가다가 빵 터지는 기회를 잘 잡은 거 아닌가.
우리나라가 그런 걸 진짜 잘하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다.
이번 코로나 때도 운이 좋았던 거긴 하지만 망해가는 해운 및 조선업을 살리고자 정부에서 지원을 엄청 해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조선이 운항을 시작할 무렵! 코로나가 터지며 해상운임이 급증했고 그 수익을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었다.
신기하다.
인생사 새옹지마를 또 느끼는 순간이었다.
부산신항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근무하면서 텅텅 비어있던 부두들이 꽉꽉 차고, 갑판 위가 헐렁하던 컨테이너선들도 컨테이너를 가득 실어서 들어오고 기름값 따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면서 최고 속력으로 입출항을 하는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심지어 영해에 컨테이너선 입항 대기들이 부산에서도 늘어났다.
당시 HMM 주가가 치솟는 걸 반신반의했던 나를 후회한다.
다음에 또 이런 조짐이 보이면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과연?ㅎ)
미주항로를 뛰던 3번째 신조 인수선을 3개월 정도로 짧게 승선하며 이제야 진짜 휴가를 갔다.
인생은 정말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