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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elle Jun 14. 2023

낙서가 아닌 생각을 적었다는걸 알았습니다

작은 어려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내사촌 동동이

동동이가 좀 특이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다. 동동이는 사투리가 강렬한 지방에 산다. 우리 친정엄마의 고향이자 친정식구들이 모두 있는 울산. 서울에서 가기엔 너무 멀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이런저런 이유들로 안 가신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 가족은 명절에도 자주 내려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의 시어머니, 즉 나의 친할머니가 서울과 가까운 안양에 계신 데다 아버지의 여섯 형제들이 우르르 모이니 추석이든 설이든 엄마가 쉽게 친정집에 가고 싶다 소리를 못하셨던 것 같다. 아- 세월이 흘러 내가 며느리가 되어 듣는 엄마의 친정과 시댁 사이 혼자 감내하셨던 내적 갈등 스토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에 불을 지핀다.  (할머니, 우리 엄마한테 왜 그러셨어요...?)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해외지사 발령으로 더 만날 기회가 적어진  다섯 살 어린 외사촌동생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말과 행동을 한다는 건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중학교 3학년 때 알게 되었다. 외삼촌에겐 아들하나, 딸 하나 있는데 아들이 바로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외사촌 동동이다. 여동생은 장애를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지적장애를 가진 오빠의 반복적으로 말하는 어눌한 말투와 손가락을 계속 까딱거리거나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듯한 행동을 어렸을 때부터 고스란히 따라 하면서 마치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때 당시 외숙모 외삼촌 두 분이 어렵고 힘들었던 경제적 상황에서도 정말 최선을 다해 가정을 붙들고 계셨다는 걸 알면서도 참 속상했다. 어렸을 때 분리교육으로 조금만 더 신경 써주셨더라면.. 그런 부분을 닮지 않았을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봐주셨더라면..

그런 여러 가지 사정 속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간절하고 뜨겁게 기도하시고 애쓰셨던 외숙모의 기도다.


중3 때 알아차리기 전까진, 그전에는 나도 어렸어서, 그리고 너무 어릴 적에 몇 마디 나눠본 게 전부였을 테니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정말 어린아이를 왜 순수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사촌동생의 '다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뿐더러 그 어떤 벽이나 어색함 없이 잘 놀았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짓지 말고 함께 어울려 생활하고 이야기하고 서로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게 사실 막상 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아닌데,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나와 다른 낯선 모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더 관계를 멀게 하고 어렵게 한다.


어른이 되어서 눈으로 보고 머리로 대하려니 힘들다.

아이였으면 마음으로 보고 영혼으로 대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슬프게도 중3이 되어서, 외삼촌네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날 아주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아..? 이게 뭐지?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내 책상 위에 있던 필기종이 뒷면에 동생이 써놓은 글씨가 빼곡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종이에도 빼곡하게 쓰여있는 글씨. 두세 장의 종이에 그렇게 글씨가 잔뜩 쓰여있었었다. 서울지하철역명들을 순서 없이 적어놓은 것이다. 왜? 왜 지하철역명을 이렇게 써놨지? 뭐지?

내 필기에 써놓은 걸 보고는 순간 짜증이 확 몰려왔는데 다른 종이에도 그렇게 해놓은 걸 보고는 순간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동동이가 좀 특이한 건 알고는 있었는데.. 뭐지..?

근데 뭔가 외삼촌 외숙모가 다 계신 앞에서 야- 동동! 너 왜 누나 거에 낙서해?!!라고 버럭하면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을 민망하게 할 것 같았다. 저녁 먹고 헤어진 후에 엄마한테 살짝 물어봤다.

"엄마- 동동이가 내 종이에 이런 낙서해 놨어. 이거 뭐야?"

"아이고.. 아까 방에서 뭐 하나 했더니 그러고 있었구나. 동동이가 어렸을 때 아팠잖아. 애기 때 열이 엄청났었어. 근데 외숙모가 애를 데리고 바로 병원을 못 가는 상황이었어서.. 그때 얼른 애 들쳐 엎고 갔어야 하는데... 그때 뇌에 손상이 갔나 그랬을 거야..."


아.. 열이 나면 뇌에 손상이 가는구나.

뇌가 문제가 생기면 저런 언어표현과 행동을 하는구나.

사회적 관계가 어려워지는구나. 자기 의지대로 하는 게 아니구나.

그렇구나-


'지적장애'에 대한 작은 이해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도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불쑥 전화해서 "누나야~ 나 동동인데~" 하며 구수한 사투리로 엄마가 뭐 하셨고 아빠가 뭐 하셨고 동생이 뭐 했다~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속사포처럼 말해놓고 뚝- 끊고는 했다. 전화가 오면 여유가 있는 날은 맞장구도 쳐주면서 받아줬다가도 종종 귀찮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무음버튼을 눌러놓기도 했다.  그럼 또 긴 장문의 문자가 온다. 쌍방향의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원웨이 토크인 데다 난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아- 그냥 무시할까 싶다가도 '그래 동동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라~ 나중에 고모랑 울산에 놀로 갈게~' 하나 보내준다. 답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그냥 혼자 생각한다.

뭐 문자 하나 보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니까.


마스크 완전 해제선언 이후 그동안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아흔다섯의 우리 할아버지를 뵈러 친정부모님과 우리 가족 모두 울산에 내려갔는데 만나자마자 동동이가 우리 딸들 이름을 다 외워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부르던지. 하지만 이름만 부른 거지 같이 놀아주기엔 어색한 '삼촌' 노릇이다.

마지막 날, 외가식구들 모두 출석하는 교회에서 다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식사하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려고 인사드리는데 동동이가 나한테 오더니 '누나야 이거 애기들 꼭 줘라. 누나 먹지 마라~' 하면서 애플쿠키와 주스를 눈도 안 마주치고 주고 간다. 알고 보니 교회 유년부 간식인데 우리 애들 준다고 그걸 또 달라그래서 받아왔단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가져왔을까. 차 안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보며 눈물을 꾹 삼켰다.


두 아이의 음악적 재능을 발굴해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부단히 애쓰셨던 우리 외숙모..  30년 넘게 피아노를 가르치시는 외숙모의 사랑 아래에서 동생들이 자랄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큰 축복이 아닐까 싶었다.

동동이는 웬만한 전화번호를 다 외운다. 우리 엄마 아빠 내 동생들 번호 거기다 내 남편번호까지 외워서 종종 전화를 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안 하네. 바쁜가 보네)


자연스러운 상호 작용과 일반적인 대화가 원활히 되지 않는 동동이의 마음속을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외숙모의 사랑을 보며 이해하려고 하고 동동이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이해하려고 한다. 이해가 필요하다. 동동이의 신발이 나한테 부자연스러운 건 잘 알지만 그래도 해본다.


자주 얼굴을 보지 못했어도 가-끔 만날 때마다 그렇게 해봤기에

난 그날 음료수와 쿠키를 받았던 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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