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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정 Jul 30. 2023

UX 디자이너의 미대 석사 로드맵

나의 삶을 디자인하다

저번주에 사랑니 발치를 하느라 글쓰기를 일주일 쉬게 되었다. 아직도 간간히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티는 중이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소소한 행복이다.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내가 그동안 잊고 있던 나의 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돈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던 대학생 시절이 지나고 이제 나 혼자서도 삶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미술 석사 학위에 도전해 볼까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미술 석사는 졸업 후 재정적인 이득이나 개런티가 전혀 없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성공의 큰 요인은 인적자산과 운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해보기 전에는 내가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인지 보통인 사람인지 알 방법이 없다. 그리고 운이 더럽게 나쁜 사람이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커리어가 있다. Worst case scenario를 생각해 봐도 그렇게 나쁜 결과가 아닌 것이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쪼개고 작품을 할 것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누구에게 내보일 만한 작품을 마지막에 만든 건 2년 전이고, 내가 원하는 학교는 지난 3년 이내에 만든 작품만 포트폴리오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처음부터 모든 포트폴리오 작품을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그리는 것이다. 퇴근 후 돌아와 침대에 누워버리고 싶을 때, 스케치북에 끄적거리는 것이라도 10분씩 매일 하는 것. 붓을 잡기 싫으면, 색연필이라도 집어 들고, 그것도 싫으면 연필 한 자루를 가지고 스케치를 하거나, 그조차도 싫으면 펜을 가지고 종이에 낙서하듯이 끄적거린다. 그렇게 10분씩 그리기를 도전한 지 이제 3주 정도 되어가는데,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특히 10분 그림 그리기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수요일 목요일에는 대부분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 퇴근하고 그냥 녹초가 되어 저녁을 먹고 강아지와 간단한 산책을 하고 나면 하루가 끝이 난다.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는 주중, 출근 전 새벽 시간을 이용해 30분씩 그림을 그리거나, 토요일에 친구들과 약속을 모두 최소하고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던가 하는 날은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이 있다.


친구들에게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얘기했다. 응원해 주는 친구도 있고, 얼굴을 자주 못 본다고 서운해하는 친구도 있었다. 당분간 그림을 집중해서 그리고 싶어서 얼굴 보기는 좀 힘들 거 같아, 이해해 줘,라고 말했지만, 알겠다며 “다다음주 토요일은 어때?”라고 되묻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나니, 그 모든 시간을 전부 긁어 모아도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뿐이다.


작업하는 공간은 언제든지 의자에 앉으면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세팅을 해두었다. 유화 작업을 위한 캔버스와 물감들은 방 한쪽에 몰려있고, 책상 위에는 색연필과 연필깎이, 스케치북, 색깔별로 정리된 종이들이 올려져 있다. 일과 그림을 병행하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매일매일 10분씩 그리기를 좀 더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10분 그리기를 위한 장벽을 최대한 없애버리는 것이다. 매일 10분 그리기의 최대 장점은 심적인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기 싫은 날도 “딱 10분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케치북에 끄적거리는 것이라도 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30분 혹은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날은 “10분”으로 시작했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날들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1-2년간 매일 10분을 목표로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면, 2년 후 석사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게 그다지 비현실 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열심히 저금도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식으로 재정 관리를 할 것인지, 어떤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게 나에게 맞는 것인지 등에 대한 생각도 많이 정리할 수 있다.


UX 디자이너로서 일 하는 것과 테크놀로지 회사들에서 일하는 경험 다 너무 소중하고 즐거운 경험이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을 마주했을 때 그때 그림을 더 열심히 그려볼걸 하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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