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울장애를 인지하지 못하고 마음껏 우울 해했을 때, 남편도 마음껏 방황했다.
누군가는 칼퇴 후 집으로 날아갈 생각뿐이라면 남편의 퇴근길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퇴근 후 회식이라도 있다면 반가웠다.
저녁 먹자는 친구의 제안이 희소식이었고, 오늘은 시간이 안된다는 친구의 카톡은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비교적 퇴근 후 바로바로 집으로 들어왔지만 공허하게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면 집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싶었단다.
술 마시는 횟수가 늘어나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진다.
나는 타박하지 않았다.
일부로 타박하지 않은 건 아니고... 내 상황을 표현하지 못할 만큼 우울장애가 심했기 때문에 남편에 대한 분노를 느낄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반복되던 도돌이표 일상
서로 눈치 보면서 심기 건들지 않을 정도로만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역할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우리의 관계는 어떤 리듬으로 마침표를 찍게 될까?
나 중증 우울증이래, 약도 먹어야 한대
'그걸 이제야 알았냐...'
내가 말했을 때 남편은 이렇게 생각했단다.
동시에 중증도 우울증에 약까지 먹어야 할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앞으로 와이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되기도 했다.
가족에게 우울증이 생겼을 때 행동 방법
가족의 우울증 치료 돕는 방법
우울증 가족의 마음가짐
우울증 치료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것들
다양한 키워드로 인터넷에 검색하여 글을 정독하고 동영상을 봤단다.
남편이 정리해 본 우울장애인의 가족으로 살 때 주의 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았다.
1. 우울장애인이 호소하는 문제에 해결책 제시하지 않기
2. 우울감을 정신력과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기
(비난하지 않기, 강요하지 않기, 자신의 논리 내세우지 않기)
3. 우울장애 극복은 약물치료가 필요하니 약 거르지 않도록 하기
4. 항상 곁에 있을 거란 신뢰감 키우기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 표현하기, 인내심 가지기, 감정 들어주기)
5. 숙면, 식사, 일상적인 운동이 가능한 상황 지원하기
하나 의문점이 들었는데 우울장애인의 가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우울장애인의 가족들이 겪는 심적 고통이나 인내심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깊은 우울감, 무기력함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이 터질듯하게 답답한데.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우울감에 빠져있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싶은 분노가 일 끓었는데 그러한 고통이나 인내심에 대해 나와있지 않았다.
다른 우울장애인 가족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마냥 우울감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매일 너는 할 수 있다고 파이팅 해주면서?
나의 일상을 영위하는 대신에 우울장애인 옆에 머물면서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 건가?
약을 계속하여 먹으라고 해야 하는지, 약을 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우울장애인의 가족으로써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면 알수록 비슷비슷한 내용들만 쏟아졌고 우울장애가 치료될 수 있는지, 가족들이 조심하게 되면 우울감이나 자살충동이 치료될 수 있는지 나와있지 않아서 확신이 들지 않았단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
당시 남편도 나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만 있던 게 아닌지라...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님과의 인연을 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나를 책망하거나 정신과약을 먹는 것에 거부감을 버리기로 했다.
(그전에는 약까지 먹어야 하나-하고 생각했었다)
남편에게는 말하기 어려웠던 그날그날의 증상들을 의사에게는 말할 수 있다고 하니깐 의사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듣기로 했다.
두통이 있거나 흉통, 과호흡이 스트레스뿐 아니라 우울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오랫동안 육체적으로도 아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동정심도 들었단다.
주기적으로 우울감에 빠져있고 또 혼자만의 시간에 과하게 집착하던 와이프는 치료가 필요한 병을 앓고 있고 그 병을 치료하기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간의 답답함과 서운함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대신 와이프를 이런 상황에 노출시킨 와이프의 가족들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내가 친정가족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거나 죽어버리겠다고 자해했을 때 남편이 앞장서서 제발 연락하지 말라며 중간역할을 해주고 나를 달래주기도 했다.
이전 같았으면 어차피 얼굴 보고 살아야 될 가족들 사이에서 후회할 행동 한다며 나를 꾸지람했을 수도 있던 사람이다.
약을 먹으면서 나는 서서히 변해갔고 남편 역시 변해갔다.
이전처럼 점차 활기차지고 있다.
내가 평범한 사람으로 바로 설 때마다 그는 평범한 남편, 가장으로 바로 서고 있었다.
아직도 가끔 이전의 서운함과 이해 못 할 분노들이 떠오르기도 한다지만 평범하고 이성적인 남편은 과거의 기분에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제안하기도 하고, 나의 옆에 누워보기도 하고, 우리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한다.
욱하던 어투와 분노 어리던 눈빛이 많이 누그러졌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술자리를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다.
우울장애인의 가족으로 살면서 다양하게 나타는 우울장애에 대한 증상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우울장애 치료에 집착하지 않도록 마음을 내려놓았다.
와이프가 다시금 우울한 모습을 보일 때면 이유를 추궁하거나 의지의 문제로 타박하지 않았다.
대신에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날씨가 좋다 나쁘다, 오늘은 도로에 차가 많이 있다 없다며 소소한 이야기로 안부를 물었다.
우울장애인 가족을 당장 고쳐놓아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인정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일상들이 쌓이니 남편이 받는 스트레스와 나에 대한 분노도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이전에 그는 "제발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말했다면, 요즘은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자"라고 말한다.
우울장애인 가족이 겪어야 하는 마음고생이나 인내심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은 모양이다.
변해가는 나를 보며 남편이 변해가고, 변해가는 남편을 보며 나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느낀다.
물론 약물치료와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을 제거한 점이 우울장애 치료의 핵심이었지만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어 준다는 든든함은 치료의 가속을 밟아준다.
우울장애가 점차 나아지면서 우울장애로 인해 잃었던 인간관계나 평범한 날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히고 또다시 우울함으로 뒤덮으려고 할 때 내 곁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가족들을 보고 있자면 우울함이 머쓱해하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느낌이랄까?
가족이 우울장애를 앓고 있어서 답답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대신하여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당신의 사랑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당신들이 있기에 내가 과거를 딛고 일어서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