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장애 일상 - 우울장애인의 가족(1)

by 미미


우울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도 안다.

그리고 나 역시 우울장애인으로 가족들에게 뜻하지 않은 아픔과 피해를 주었다.

가족이라는 명목 아래에 이유 모를 아픔을 겪어야 했던 우울장애인의 가족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나의 가족들은 비관적이었고 감정조절에 서툴렀다.

나는 속으로 참고 견디는 쪽이었다면 엄마나 언니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쪽이었는데 그들이 싸울 때면 쌍욕은 기본, 밥상을 뒤엎거나 칼을 꺼내 들기도 했다.

가족들이 하는 말마따나 죽어야 끝 날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중 작은언니는 남편 손에 이끌려 갔던 정신의학과에서 알코올중독증과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으면 좋으련만 약을 처방해 줘도 먹지 않는단다.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약으로 채워야 할 공간을 술로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췌장암이라고 오해했을 만큼 만성 췌장염을 앓고 있음에도 언니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다.

다른 가족들은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신세를 한탄하고 서로를 비난했다.



화냈고 싸웠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의 체질은 나에게 내려진 축복이다.

술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가족들이 술에 의존하여 기억도 못하는 추태를 부리는 것에 질려버려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

가족들과 마시는 술이라면 더더욱 삼간다.






실제로 우울장애인을 처음 봤다는 남편은 애석하게도 우울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이 실제로 처음 본다는 우울장애인은 그의 와이프인 나

연애 때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는데 남들이 쉽게 말하는 '우울증' 보다는 감정기복이 약간 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이라 생각했단다.

남편은 우리의 연애를 굉장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가족에 대해 자주 물어봤고 나는 헤어질 각오를 하며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나에게 실망할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은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나의 가정사는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으며 평범하지만은 않은 가정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고 유독 가족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안 좋았구나-라고 일차원적인 의문점만 해결되었었다고.



20대 초반은 내가 가장 열정적이고 활발하게 보냈던 시절이었는데 그 시절의 밝은 면만 보았던 남편은 나의 뒷모습을 보면 볼수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우울했고, 우울감에 빠지면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때때로 내 눈은 허공을 향했고 남편의 말은 내 귀를 관통하여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미미야, 도대체 왜 그래? 삐진 거야?
아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화난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는 얼굴이야.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 나 좀 내버려두어!
무슨 일 있는 것 같으니깐 그렇지!



남편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다면 지레 제 발 저리며 나의 우울함을 이해했겠지만 그는 우리 관계를 해칠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우울한지, 불행해 보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기 탓인 것 같았단다.


자기랑 결혼해서 그런 건지,

지금 삶이 불만족스러운 건지,

누구와 비교를 하고 있는 건지,

가족들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연인은 가장 멀리 있는 가족이 되었다.



남편의 성격은 강단 있고 이성적이었다. 화법은 직설적이었다.

그런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던 나를 몰아붙이면 부칠수록 나는 동굴로 들어가 꽁꽁 숨어버렸다.

나는 원래도 우유부단하고 어물어물거렸지만 왜 이렇게 우울한 건지의 이유를 진심으로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울적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평소처럼 회사를 다녀오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데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스쳐 지나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우울장애가 나를 덮치면, 나는 내가 만든 과거 망상 속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

현실에서는 남편이 나를 꺼내려 소리친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 거지같이 오묘한 기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그를 설득시킬 힘도 없었다.






이렇게 한 5년쯤 지났으려나

매일 밤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달라던 남편은 더 이상 안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남편은 회식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당연하고 나는 집에서 마음껏 우울해하는 일이 익숙해져 간다.

그는 우호적인 물음들은 의심 어린 확신들로 변해갔다.

'또 친정 가족들 때문에 기분이 안 좋겠지' 하는 확신이었다.



그맘때,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했고 산후조리원에 가는 대신에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서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친정엄마는 몇 년 만에 무대의 역할을 따낸 단역배우처럼 아주 뿌듯해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준비에는 나와 남편의 호응이 필요하다.

엄마가 만들어준 모든 식사들을 맛있게 먹고 엄마에게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해야 한다.

엄마가 집안일하며 김치를 담그는 동안 나는 신생아를 돌보고 반짝반짝 해진 집안을 둘러보며 박수를 쳐야 한다.

남편이 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 식사를 차리는 엄마를 도와서 현모양처 같은 딸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남편의 옷을 다려야 하고 남편이 쓰는 화장실을 매일 같이 청소했어야 했다.



나는 엄마의 무대를 망쳐버린 나쁜 년이다.

나 때문에 엄마의 출연작 시청률을 바닥을 쳤다.

엄마가 만들어준 식사를 먹으면서 엄마의 인생이야기를 듣기에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엄마가 집안일하지 않고 신생아를 봐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엄마, 제발 집안일하지 말고 아기 좀 봐줘
그럼 빨래는 누가 하라고!!!



쉬고 싶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다음날 집에 왔으니 넉넉히 이틀 정도는 이 생애에 없는 사람처럼 잠자고 휴식하고 싶었다.

남편이 오는 시간이면 있는 반찬 꺼내서 대충 끼니를 때워도 괜찮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도 괜찮다.

남편과 단출한 저녁을 먹으며 회사에서 있었던 일과 아기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상다리가 휘어질듯한 10첩 반상이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바뀌는 한정식 메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김치찌개 하나에 계란프라이를 나눠먹으며 힘들었지? 고생했다며 서로를 토닥거릴 시간이라면 충분했다.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아파트 화단에서 누가 담배를 피웠는지부터 시작해서 "이서방은 몇 시에 일어난 거야? 나갔어? 몇 시에 나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해 주고 엄마가 한컷 차려준 아침을 꾸역꾸역 먹고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지가 덮던 이불도 안 치우던 게 지네 집이라고 그래도 이불은 갠다는 엄마식의 농담을 듣고 나면 동네에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하는 엄마를 위해 지역의 시장이나 식당들을 검색해 본다. 엄마는 짧은 외출을 마치고 들어와서 다시금 집안을 정리한다. 정리를 한다기보다는 새롭게 집안을 가꿔보는 재미랄까. 이 동네도 살만 한다며 집값을 알아보는 엄마에게 집값을 검색해 주고, 어차피 돈이 없는데 그럼 뭐 하냐며 자조 섞인 혼잣말을 묵묵히 듣는다. 엄마는 늦은 오후부터 아름아름 술을 마신다. 아기컵에 담긴 짙은 알코올냄새가 나의 뒤통수를 가격 하는 듯하다.



어차피 나는 한 병 밖에 안 마셔~



'하루라도 안 마실 수는 없는 거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엄마는 점점 기분 좋게 알딸딸한 상태가 되고 엄마의 장기를 십분 발휘하여 사위를 위한 한정식을 마련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저게 엄마의 행복이려니 이해되기도 한다.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게 최고의 행복이자 인생의 성취였던 엄마

어쩌면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일들인데 그것조차 뜻한 대로 되지 않으니 자식들 먹이고 자식들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것에 더욱 집착하고 과장했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엄마의 김치찌개나 고추장찌개 하나로도 바랄 게 없었지만 엄마는 김치찌개 옆에 두어야 할 명란계란말이와 파래무침, 감자볶음, 부추전 등을 만들어야 했기에 우리 곁에 없었다.






엄마의 산후조리를 받고난 후 우울장애가 심해졌다.

거의 매일같이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삶의 의욕이 없었고 일상적으로 환청에 시달렸다.

무기력한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과도하게 카페인을 먹다가 점차 중추신경흥분제 같은 약물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당장 죽을 수 없다면 이유 없이 몰려오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이러다 내가 어떤 일을 할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울감을 해소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신경정신과에 찾아갔다.

죽을 것 같다고 운을 뗀 것이, 치료의 첫 시작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본 남편의 심정을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분노, 억울함, 애처로움, 어이없음



장모님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장모님을 내치지 않은 와이프가 애처로우면서도 어이없었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기에 무언의 벽이 방해가 되니 답답하고 화가 났단다.

열심히 해보려 해도 매일 반복되는 와이프와 장모님의 신경전, 갑자기 시작되는 장모님의 분노, 와이프의 우울감을 보면서 억울했단다.



남편의 생각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공감하기에 내 마음은 몹시 황량했고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이 가뭄 들어 있었다.

남편에게 공감하고 다가가려 했지만 금세 기력이 달려서 다시금 우울해지거나 다양한 충동에 사로 잡혔다.

동시에 이런 나의 모습에 정 떨어져서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까지 몰려오면 그야말로 완벽히 폐쇄적이고 반송장상태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은 죽을힘을 다해 나를 이해하려고 했단다.

본인의 머리를 다 쥐어뜯고 싶을 만큼 답답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쳐 때리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팠다고.

동굴로 숨어버리는 나를 보면서 살면서 이렇게까지 화가 났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화가 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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