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약을 먹는 동안에도 수시로 동굴을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컨트롤 방법이자 휴식이다.
동굴 안에서 실컷 자기비하하며 슬퍼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효율적인 동굴 탈출 방법이었다.
약을 먹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동굴에 들어가던 발걸음이 동굴 앞에서 멈춰졌다.
이전에는 눈 뜨면 이미 동굴 안이었는데 이제는 내 앞에는 동굴이 있다.
망가졌던 뇌신경전달물질에서 조금이나마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내가 인식할 새도 없이 깊은 우울감에 빠졌던 이전과 다르게 내가 점차 우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약을 먹은 지 4년째 들어서는 해였다.
나는 동굴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갈 수도 있고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동굴에 들어가 있으면 적어도 나를 공격하는 외부의 무언가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고 다시금 생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나를 괴롭히고 있는 스트레스나 외부의 문제는 전혀 해결될 수 없다.
그것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고 인간관계에서 오해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전까지는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동굴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다면 지금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물론 동굴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도 그러한 다짐처럼 되지 않을 때가 무수히 많다.
같은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더라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동굴에서 머무는 시간은 비교적 짧아졌다.
동굴 가장 깊은 곳 구석에서 벌벌 떨기도 했지만, 동굴에서 일어나 이곳저곳을 탐색할 수 있도록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나의 동굴은 과거에 대한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세세한 사건들이 생각나지 않아도 그때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종유석처럼 그대로 굳어있었다.
두려움, 연민, 질투, 분노, 억울함, 슬픔, 그리움, 간절함, 불안함, 불편함, 좌절감, 열등감
생각나지 않은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아져 동굴이 된 것이고 나는 일상에서 문득 비슷했던 일이나 감정을 느끼면 동굴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내 아이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어주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막연한 억울함과 슬픔을 느꼈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언니에게 머리 빗겨달라고 깨웠다가 머리가 죄다 뽑히는 줄 알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손이 가지 않아도 되는 단발머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고 단 한 번도 가족들 손을 잡고 학교에 등교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교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을 보았을 때 간절함과 질투는 느꼈다.
비 오는 날 우산 없다면 항상 비를 홀딱 맞고 집으로 돌아왔고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개학식날, 가족들과 다녀온 여행지니 문화체험 따위를 말하는 친구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나는 문화체험 따위 해본 적 없어. 엄마아빠랑 여행 가본 적도 없어. 그런 게 당연하다는 듯이 떠들지 마'
어린 날 나의 열등감이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연세 많은 엄마가 나를 두고 죽지 않을까 불안했고 아버지가 나를 버려서 거지가 되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언니가 나를 친동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슬펐고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사람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웠다.
사람들이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나의 우울함을 들킬까 봐 초조했다.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데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자기혐오가 점차 심해졌다.
남들의 행복과 성취에 열등감을 느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의 동굴은 견고하고 빠르게 만들어졌다.
과거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빠르게 덮어온 화산쇄설류로 사람들이 화석으로 굳어버린 것처럼 부정적인 기억들은 나를 빠르게 덮어왔고 차곡차곡 굳어져갔다.
대략 20년을 동굴 속에서 살았는데, 그런 동굴 앞에 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되다니!
이건 약물치료의 효과인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 결국 죽지 못하고 살아있음에 깨달음인가.
한 가지 이유로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동굴에 딸려 들어가는 것이 죽도록 싫었지만 이곳 말고 다른 도피처가 없었다.
동굴은 나에게 가장 안락한 지옥.
지옥 같은 동굴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다.
내 것이다.
이 동굴 안에서 견디며 성장했다.
내가 분노를 터뜨리지 않도록, 이성을 잃지 않도록, 자해하지 않도록, 죽지 않도록 동굴을 만들어서 나를 숨겼다.
죽지 않고 성장한 나는 이제 동굴 앞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고 서서히 동굴을 바라볼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울의 동굴이나 저마다의 동굴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
가장 미성숙한 문제 해결 방법이 동굴로 들어가 숨는 거라지?
이 동굴을 밖에서 바라보는 이는 단단한 철벽처럼 느껴질 수 있고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동굴에 들어가는 입장이 아니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하니, 그동안 내가 동굴 속 어둠이 되어 있을 때마다 나를 기다려주었던 가족이나 친구에게 무한히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우울장애인의 반복된 잠수 때문에 그들의 사과나 고마움이 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분명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굴 속으로 잠수를 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직 그곳이 익숙하기 때문에.
분노와 긴장감, 지침, 열등감, 이제 그만 죽고 싶은 마음을 어둠 속으로 감출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동굴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혼재된 지옥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
미성숙하고 어리숙한 내가 만든 안락한 지옥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상처들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어서 만든 곳이니깐.
이 동굴이 언젠가 무너질 날이 올까 모르겠다.
우울장애가 언젠가 완벽-히 치료될 수 있을까 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지금으로서는 동굴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됨에 무척 놀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