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Jan 05. 2024

초등학교 1학년 엄마의 배웅과 마중


오늘은 아이의 종업식이다.


1학년이 마무리되고 겨울방학 기간에 들어갔다. 

나도 이제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다며, 해본 적 없는 역할에 대한 설렘과 걱정으로 아이 학용품을 하나 둘 사던 게 엊그제 같는데 아이는 그 학용품을 다시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티끌 하나 없던 학용품은 이제 깨끗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꼬질꼬질해졌다.

우리 아이만큼 1학년 생활에 열심히 적응했나 보다.



경기파 있는 아이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학교 근처로 이사 온 지도 일 년

등교하는 아이를 배웅한 지도 일 년

하교하는 아이를 마중 나간 지도 일 년

1년 간 배웅 와 마중을 나가며 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고 꾸준히 가야 하는 곳, 자기 발전을 위한 곳임을 알려주었고 언제든지 네가 돌아올 집이 근처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처음 한 달은 나처럼 배웅하고 마중 나가는 학부모들이 많았는데 3개월, 6개월이 지날수록 절반씩 줄어들더니 이제는 나만 덩그러니 학교 앞에서 아이의 그림자를 기다린다. 



이모는 왜 맨날 얘 데리러와요?
궁금해?
네!
내 맘이지
네?
내 마음이야. 히히히.
나는 딸을 기다리는 게 좋거든.
이모는 집에서 일해서 시간도 많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좋아해
아~그렇구나!



딸아이 친구들이 꽤 많이 물어봤던 질문이다.

왜 맨날 데려다주냐고.

데려다주는 이유는 아이의 건강 상 안전의 이유도 있지만 나의 안도감, 나의 만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니 내 마음이다.






내가 8살이 되던 해


엄마는 분명 집 근처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거라 해서 두어 번 정도 초등학교 등굣길을 알려주었다.

혼자 학교에 다니려면 미리미리 길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배정받은 초등학교는 집 근처 학교가 아니었다.

1km 정도 떨어져 있던 초등학교는 내가 가본 적 없는 동네였고 6차선 도로 신호등을 2번 건너야 했다. 

등교 첫날

엄마는 길을 쭈욱 따라서 똑바로 만 가라고 했다.

옆으로 새지 말고 그냥 앞으로만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나온다고, 아이들을 따라가라 말해주며 등교시켰다.

가본 적 없는 동네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다.

무서웠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절대 옆으로 새지 않고 학교를 향하는 아이들을 따라서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 1학년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이 심심치 않게 보여서 그들을 따라 등교했다.

하교할 때는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내가 왔던 곳에 있었던 신호등까지 왔는데 '이 신호등을 건너서 어떡해야 하지? 집이 어디에 있지?'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사방팔방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곧바로 눈물이 흘렀다.

무서웠다.



지금도 기억난다.

얄상한 얼굴에 파마머리를 하고 안경을 낀 아주머니와 그녀를 닮은 안경을 낀 딸이.


왜 울고 있니?
집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안 오셨니?
집 주변에 뭐가 있는데? 집주소 아니?
하이츠빌라고...
집 앞에 카센터가 있고 집 바로 옆에는 피아노학원이랑 미술학원 있어요
아, 아줌마 거기 어딘지 알 것 같아. 너도 주변에 가면 기억날 것 같니?


아주머니는 한 손에 자기 딸을 잡고 한 손에 나를 잡고 우리 집 주변으로 데려다주었다.

집 앞에 카센터가 보이니깐 이제야 이곳이 나의 동네로 다가온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고 말했더니 조심히 가라며, 아주머니는 손을 놓아주셨다.

고마웠다.

오죽하면 손을 놓아줄 때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모녀는 주택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집으로 부리나케 들어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공간에 들어오니 안도감과 동시에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쿵 뛴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집 자체가 나를 반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나의 첫 등교날이었다.






딸아이가 학교에 등교할 때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만 한 게 아니라 무섭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그것은 곧, 내 안에 있는 8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는 길은 매우 친숙한 나의 동네이고 학교가 끝나면 돌아올 집과 반겨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동시에 8살 어린 나에게 바치고 싶었다.

1년 동안 학교로 떠나는 아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 나가며 8살이었던 미미를 많이 생각했다. 

미미는 이제 학교로 가는 길이 긴장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늑하지 않다.

8살 미미는 배웅과 마중을 통해 이제야 나를 떠났다.






아이도 더 이상 엄마가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단다.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되고.

종업식 며칠 전에는 학교가 일찍 끝났다고 스스로 씩. 씩. 하. 게 집으로 걸어오더라



엄마 없었는데 놀라지 않았어?
응! 어차피 엄마가 곧 나올 거니깐.
그리고 엄마가 나 기다리고 있을 거니깐!




그래

그래, 맞아.

이 정도면 됐다.

이 정도면 8살 신입생으로서, 엄마로서 나는 할 만큼 했다.

1년 동안 나와 함께 학교에 적응하며 생활한 나의 딸에게 부끄럽거나 아쉽지 않도록 이만하면 됐다.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보면 매번 반갑게 뛰어와주던 딸아이에게도 고맙다.

딸아이 덕분에 배웅의 아쉬움과 마중의 설렘도 느낄 수 있었으니 아이의 입학과 종업으로 내가 얻은 게 참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에 빛나는 15개월 나가요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