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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행 Sep 12. 2023

나는 왜 <연인> 폐인이 되었나

<연인>을 기다리며

전직 영화기자의 가끔 오는 영화 리뷰...인데 드라마도 해보는 리뷰. <콘크리트 유토피아, 그럼에도 박보영이어야 했던 이유>에 이어.


(이 글에는 <연인> 파트 1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지금 바로 '뒤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요 근래 나를 웃기고 울게 만든 유일한 작품인 것 같아 글을 써보려 한다. 아마도 울고 웃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듯하여 그 이유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여 글을 써보려고도 한다. 

주인공은 MBC 드라마 <연인>이다. 아직 9월이지만 벌써 올해 MBC 연기대상의 주인공은 남궁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파트 1을 마무리했다. 잠시 숨 고르기의 시간을 가진 뒤 10월, 파트 2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연인>이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 작품에 관심이 1도 없었다. 사극을 좋아하지만 정통 사극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인지라 왠지 나에겐 한없이 가벼운 퓨전 사극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는 것도 알았지만 병자호란은 곁들임 반찬일 뿐, 두 남녀의 멜로가 주된 이야기일 거라는 추측도 한몫했다. 퓨전에 멜로라, 나에겐 당기지 않는 장르였다.


하지만 파트 1이 마무리된 지금, 나는 <연인> 파트 2가 시작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마치 길채가 꿈속에 나온 낭군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파트 2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일단 <연인>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다룬
휴먼역사멜로드라마
<연인> 공식 홈페이지

휴먼역사멜로드라마라고 해서 시작하기 어려웠던 내가 '연며들었던' 시기는 3화, 병자호란이 시작되고 난 이후부터였다. '어떤지 한 번 보자' 가볍게 시작했다가 그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연인>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울고 웃으며 소위 말하는 '연인 폐인'이 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인>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건, 나뿐만이 아닌 수많은 '연인 폐인'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극 중 장현과 길채가 보여준 사랑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당당히 비혼주의를 외치며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이장현은 우연히 꼬리 아흔아홉 개 달린 능군리의 여우, 길채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능군리 사내라면 한 번쯤 마음에 길채 낭자는 품어봤을 정도로 그 미모가 뛰어나니 장현이 반할 만도 하지. 


이에 장현은 길채 낭자에게 직진하지만 이미 길채의 마음속엔 다른 사내가 있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으니, 바로 절친한 친구 은애의 정혼자 연준 도령이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준 도령 바라기인 길채에게 장현은 질투를, 놀림을 툭툭 던지며 길채를 헷갈리게 한다.


<연인>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시청자는 안다. 장현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길채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장현은 늘 길채를 위해 제 목숨까지 바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길채가 우는 모습은 차마 보고 싶지 않아 '미운' 연준 도령을 전쟁에서 지켜낸 장현이고. 전염병인 마마(천연두)는 무섭지 않지만 자신의 말을 믿고 강화도에 간 길채 낭자의 생사 여부에 대해선 두려워한 장현이기도하고. 길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17:1의 싸움을 한 장현이기도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 한 사내의 진심이 전쟁이라는 비극적 소재를 만나 더욱 짙어지니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은 어떤 세상인가. '인스턴트 사랑'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사랑이라는 단어에 그리 깊은 의미를 두지 않는 시대이다. 하룻밤 짧은 만남도 많고, 그저 그런 사랑을 하다가 그저 그런 이별을 하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장현의 진심은 꽤나 묵직한 감동을 준다. '그래, 저게 진짜 사랑이지'. 


<연인> 공식 홈페이지

아마도 <연인> 파트 1의 엔딩이 그토록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던 건 그 사랑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다. 마치 영영 헤어지는 것처럼 그려진 장현과 길채,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의문의 여인. 사랑이 깊을수록 그 배신감도 큰 법이다. 그만큼 <연인>은 사랑을 잘 그려냈다. 


연애 안 한 지 꽤 오래, 문득 <연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

장현과 길채를 보며 모두가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이 마음 속으로 바라는 사랑을 드라마로 풀어냈으니, <연인>은 폐인을 양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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