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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행 Nov 05. 2023

나 자신이 쓸모없다 느껴질 땐 이곳으로

쓸모 있는 것들로 가득한 문경에서

한창 난리일 때는 안 봤다가 뒤늦게 본 디즈니 플러스 <무빙>에서 '쓸모'에 대한 이야기가 가끔 나오곤 했다. 번개맨이 자신의 무쓸모를 한탄할 때, 초능력자들을 오직 자기의 욕심에 맞춰 '쓸모 있고 없고' 판단할 때. 각자가 <무빙>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왠지 '쓸모'에 관심이 갔다. 


가끔 살다가 나 자신이 참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런 것 하나 못해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 재취업 준비를 하며 그 생각이 더 커졌던 것 같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온 걸까. 능력이 안 돼 지원하지 못한 곳이 늘어날 때면 참 '쓸모없는 놈' 생각이 들곤 했다. 


끝없는 자책과 우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건 여행이다. 밖에 나가 많이 움직이면 기분 전환도 되고 나 자신을 향한 관심이 외부로 쏠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더 뜻깊었다. 쓸모없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어쩌면 아직은 제대로 쓰이지 않았을 뿐 그 보석 같은 가치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것들로 가득한 문경에서. 



문경은 '문경새재'로 유명하다. 문경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고갯길이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경새재부터가 말해주고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야 할 때 꼭 통과해야 하는 길. 하지만 지금은 서울로 향하는 길이 너무나도 잘 닦여 있고, 누가 걸어서 서울을 가겠는가. 자동차, 버스, 기차 다양한 교통수단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서울까지 도착하는 세상이다. 때문에 문경새재는 더 이상 선비들의 핫플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문경새재를 찾는다. 문경새재를 지키고 있는 성문들의 웅장함과 고갯길에서 느낄 수 있는 선비들의 정취,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함이다. 여기에 선비들의 핫플을 입증하듯 다양한 사극들이 촬영된 곳이 이곳 문경새재이기도 하다. (문경새재 안에 아예 드라마 촬영장이 위치하고 있다. <연인>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길채 보고 싶었는데...)



문경 불정역 폐터널 역시 마찬가지다. 문경은 과거 석탄 산업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실제로 문경에서는 석탄 박물관도 운영 중이니 이곳 역시 들러볼 만하다. 캔 석탄을 옮기기 위해 철도 노선이 깔렸는데 그것이 바로 문경선이다. 당시 수없이 많은 양의 석탄을 싣고 달렸을 기차. 하지만 석탄 산업이 쇠퇴하고 노후화 등의 이유로 문경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때문에 졸지에 폐역으로 남게 된 불정역과 과거 활성화 되었던 석탄 산업의 역사가 남아 있는 기찻길 만이 쓸쓸하게 문경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최근 들어 이 기찻길이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겉에서 보면 으스스한 기찻길과 폐터널. 심지어 찾아가는 길마저 쉽지 않다. 블로거들과 관광객들이 남긴 글을 보며 찾아가다 보면 '이곳이 맞나' 싶을 초록색 문이 나온다. 마치 '출입금지'를 알리는 것만 같은 표지판이 붙어있지만 사실은 '방역을 위해 출입 시 문을 잘 닫아달라'는 안내문이다. 휴우, 졸았던 마음을 뒤로하고 문을 열면 아주 오래된 기찻길과 폐터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핫플레이스가 된 건 사진 명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찻길 위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을 남길 수 있다는 SNS 인생샷 성지. 실제로 찍어보니 잘 나오긴 하더라. (ㅎㅎ) 그저 양 옆이 꽉 막힌 터널이 아닌, 측면에 난 아치형의 모양들이 감성을 더한다. 


불정역이 폐역이 되고, 더 이상 선로 위로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됐을 때. 알았을까? 사진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지 말이다. 


더 이상 쓸모없는 기찻길이 새로운 쓸모를 갖게 된 곳은 또 있다. 바로 진남교반이다. 

진남교반은 '진남교'라는 다리의 근처 지역이라는 뜻이다. 다리의 근처 지역을 '교반'이라고 한단다. 이 진남교반이 유명해진 것은 경북 팔경 중 제1경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1933년, 대구일보사가 주최한 경북 팔경 선정에서 1경으로 꼽힌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쭉 이어진 다리들과 그 다리들 너머로 보이는 깎아지른듯한 절벽,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산성과 산성 밑으로 고요하게 흐르는 강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이 진남교반에는 오미자테마터널이 있다. 이 역시 문경선을 오가던 철도의 선로가 남아있는 폐터널을 재활용한 장소다. 문경의 특산품인 오미자에 대한 설명과 다양한 특산품들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문경선의 하나의 폐터널은 사진 명소고, 또 다른 폐터널은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는 중이다. 


선로가 있는 곳이니 만큼 오미자테마터널 앞에는 이를 이용한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나름 운치 있더라. 알록달록한 나무들과 그 사이로 쭉 뻗은, 세월이 묻어난 선로가 새롭게 만든 하트 모형의 조형물과 어우러지며 색다른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차는 달리지 않아도 그리 서러울 것 같진 않았다. 기차가 떠난 곳을 이렇게 쓸모 있는 곳으로 만들어줬으니 말이다. 


여기에 진남교반에 위치한 고모산성도 함께 둘러보길 추천드린다. 고모산성은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 덕분에 경상북도 북부의 관문으로 불린다고도 한다. 올라가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고, 올라가면 아름다운 진남교반의 경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니 이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어쩌면 세상엔 쓸모없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쓸모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그 쓰임이 있다. 언젠간 내게도 쓰임이 있는 날이 올 것이고,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쓸모없다 자책하지 말자. 저 쓸모없는 거 무엇하나 싶었던 폐터널이, 기찻길이 많은 사랑을 받는 명소로 재탄생되니 말이다. 이젠 누가 저 길을 걷나 싶었던 문경새재가 등산객들이,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길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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