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리필이 필요합니다

4장. 가장 가까운 보호자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

by 이향인 조엘
STORY

엄마는 지쳐 있었습니다. 황혼 이혼의 문턱까지 갔다가 치매 걸린 남편을 돌보는 일까지 떠안게 됐으니, 그 감정은 얼마나 복잡했을까요. 화를 내거나 포기할 수도 없는 그 위치에서 엄마는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약을 드신 후 아버지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예전보다 엄마를 더 자주 찾았습니다.


“벚꽃 보러 가면 엄마랑 같이 가야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엄마도 불러.”


그러나 엄마에겐 그런 말조차 버겁고 부담스러워 보였습니다. 어렵게 찾아온 화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가 처음엔 서운했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보호자가 가장 먼저 지친다는 것을.


보호자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감정들

엄마는 아버지의 제1 보호자입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크고 작은 돌봄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죠. 엄마는 잔소리를 하게 되고, 아버지는 그에 반응하며 더 삐딱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감정보다 현실이 먼저였습니다. 돌보고, 살아가는 일의 반복. 그런 현실 속에 엄마는 죄책감까지 품고 있었습니다.


'나 편하자고 약을 먹이는 건 아닐까?'

'너무 힘들어...'

‘그렇다고 손을 놓는 건 가족에 대한 도리가 아니야.'


이런 마음은 돌봄에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결국 현실적인 부딪힘과 짜증만 남고, 어느 순간 돌봄은 서로를 피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때 새삼 깨달았습니다. 가족 돌봄은 결코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아빠만이 아니라 엄마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엄마의 마음을 잠시나마 가볍게 비워줍니다. 그 작은 무게 차이가 다시 돌아갈 용기를 만듭니다. 우울과 피로에 잠식되기 전에 감정이 숨 쉴 틈을 주는 것. 돌봄을 준비하는 첫걸음은 스스로를 돌볼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고마워’, ‘사랑해’ 같은 말은 어색해서 좀처럼 하지 않았죠. 하지만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서툴지만 작은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엄마: “너희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자녀: “엄마도 고생했어요. 힘드시죠?”


아버지도 자녀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하지만 부모님 두 분 사이에는 여전히 그런 말이 오가지 않습니다. 감정을 말로 전하는 것이 어색한, 그 세대 특유의 거리감 때문이겠죠. 감정 교류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엄마의 지친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겨봅니다.


“좀 쉬세요.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도 필요해."

“엄마 없었으면 진짜 많이 힘들었을 거야."

“요즘 많이 힘들지? 고마워."

“사랑해. 말로 잘 못했지만, 항상 그랬어."


INSIGHT

오늘이 가장 쉬운 돌봄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아버지의 증상이 심하지 않기에 이렇듯 감정을 주고받을 여유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가장 힘들지만 동시에 가장 쉬운 돌봄입니다. 증상이 더 깊어지면 이런 고민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겠죠.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순간의 돌봄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조용히 다짐합니다. 지금이 감정 돌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완벽한 돌봄을 내려놓자.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해. 주변 가족이나 이웃의 기대를 맞추려고 하면 금방 무너져. 정원을 가꾸고 친구를 만나고 내 삶의 리듬의 잃지 말아야 해. 돌보는 사람도,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걸 언제나 기억해!“


나중에 나는 어떤 돌봄을 받게 될까?


그 답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작은 표현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남편과 딸에게 자주 말합니다. “고마워.” “사랑해.” “덕분에 힘이 나.” 언젠가 돌봄을 받게 되었을 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런 말들뿐일 테니까요.


TOOLKIT

제1 보호자의 관점에서 본 감정 돌봄 실천 가이드

돌봄의 시작을 ‘신호’로 감지하기
실천 가능성: ★★★★☆

변화의 신호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하지만 마음이 닫히기 쉽습니다.

가족회의나 상담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세요.


감정이 오갈 수 있는 골든타임 확보하기
실천 가능성: ★★☆☆☆

보호자는 감정보다 '관리'가 급하다고 느낍니다.

신체적, 정신적 피로로 골든타임을 인식하거나 활용하기 어려워요.

매일 10~30분 짧은 정서 휴식을 의도적으로 마련하세요.


자유 의지 존중하기
실천 가능성: ★★★☆☆

안전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작은 자유부터 연습하세요.

낙상 방지 매트, GPS 기기를 활용해 불안을 줄입니다.


작은 표현부터 시작하기
실천 가능성: ★★★★★

충분히 실천할 수 있고, 관계 회복에는 가장 효과적입니다.

가벼운 말 한마디, 짧은 메모, 작은 선물부터 시도해 보세요.


미래의 나를 위한 준비
실천 가능성: ★★★☆☆

언젠가 내가 받을 돌봄이 누군가의 부담과 의무가 아니길 바란다면 지금 당장 스스로를 돌보세요.

거창하지 않게 오늘 한 줄 기록 어떨까요. 소소한 취미도 좋고, 멍 때리기도 좋습니다.


완벽을 내려놓고 작은 걸음으로 시작하는 것. 그것이 감정 돌봄의 지속성을 지키는 힘입니다.




[마인드 가드너]라는 이름으로

돌봄과 죽음을 감정의 언어로 가꾸고 있어요.

가족 돌봄의 여정은 영상으로도 기록합니다


유튜브 ‘조엘의 정원’에서 함께 해요!

http://www.youtube.com/@joelles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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