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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Jun 28. 2023

캘리포니아 드림 커피

@Breakaway Cafe

얼마 전 학교 친구와 브런치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었으나 대학원 졸업 후 처음 가진 만남이라 기분이 참 묘했다. 혼자 집에서 쉬고 있을 땐 아직까지 여느 여름방학이나 다름없는 느낌이었는데, 새삼 이 친구를 다시는 학교라는 환경에서는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부모님은 이미 나를 낳고 가정을 꾸렸을 나이에 겨우 학생 신분 탈출이라는 게 참 그렇지만, 그래도 평생 공부만 하던 나에게 대학원졸업이라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 이 해방감과 성취감에 대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잠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막막한 미래에 나와 내 친구의 대화 주제는 고용 시장 불안정, 공황과 우울증 극복을 위한 노하우, 학교 보험이 없어진 현재 비싸지 않은 상담사 추천 등으로 흘러갔다.


"캘리포니아 드림 두 개, 아보카도 타르틴, 브렉퍼스트 샌드위치 나왔습니다." 마치 우리의 대화가 너무 우울해지기 전 눈치를 채고 타이밍을 맞춰 나온 듯한 음식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받자마자 한 모금 마신 캘리포니아 드림 커피는 눈이 번쩍 뜨이게 맛있었다. 카페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제스트가 잔뜩 들어간 오렌지 시럽에 바닐라와 시나몬 향이 기분 좋게 어우러져 조금 전까지 하던 모든 걱정이 싹 잊히는 기분이었다. 친구 역시 같은 음료를 시켰는데, 그를 슬쩍 쳐다보자 역시나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모습이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달달하고 상큼하고 향긋하고, 꿈의 맛이란 이런 것인가?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 OST로 나와 큰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던 밴드 멤버들이 뉴욕의 추운 날씨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따듯한 엘에이를 그리워하며 쓴 노래라고 한다. 뭔가 신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울적한 멜로디가 나의 취향에 꼭인데, 희망차면서도 불안한 나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잘 표현해 준 것 같달까? 누가 들으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중경삼림>도 플롯만 놓고 봤을 땐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영화다. 파인애플 통조림은 왜 사재기를 하며 남의 집에는 왜 몰래 들어가 춤추면서 청소를 하고 있는지...


캘리포니아 드림 커피 + 버섯 브렉퍼스트 샌드위치

10년 전 나는 캘리포니아 드림을 갖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곳으로 유학을 왔다. "골든 스테이트"라고 불리는 이곳은 1849년 골드러시 때부터 엄청난 부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땅으로 여겨져 왔다. 당시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약 25만여 명의 사람들이 부푼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모여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황금을 발견하지 못하고 좌절을 맞이했다. 하지만 forty-niners(샌프란시스코 미식축구 팀 명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라 불리는 정착민들을 기반으로  이때부터 꾸준히 성장을 한 캘리포니아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주 중 하나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캘리포니아는 다른 주들에 견주어 봤을 때 부족함이 없다. 뉴욕처럼 춥지도 플로리다처럼 습하지도 않은 완벽한 날씨를 자랑하며, 다양한 문화시설과 놀거리들이 즐비한 대도시들은 물론, 숲, 사막, 바다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미국 대다수 IT 기업들의 고향 실리콘밸리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산실 할리우드에는 수많은 직업의 기회가 있고, 미국 50개 주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최저임금은 무려 시간당 $15.50이다. 하지만 그만큼 세금도 굉장히 높고 주택 가격은 물론 월세도 전국에서 제일 높은 편에 속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대표적인 블루스테이트로 이민자 및 유색인종에게 옹호적인 사회적 정책과 분위기를 띄고 있다. 사실 한국인 부모님들 중 자녀 유학을 보낼 때 막연히 백인들이 많은 동네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은데, 미국 11년 차 주민으로서 나는 동양인이 많은 동네를 적극 추천한다. 물론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 어학연수를 위해 방문하는 거라면 좀 더 집중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미국에 아예 정착해서 살 것이라면 고려해야 할 게 훨씬 많아진다. 동양인을 향한 혐오 범죄는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는 두려움이다. 알게 모르게 깔보고 무시하는 인종차별적인 태도, 혹은 대놓고 인종차별이 아니더라도 나와는 다른 존재를 보는 호기심 어린 눈들. 악의 없이 묻는 어린아이들의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야?"라는 질문은 더욱더 괴롭다. 나도 엄연히 이 사회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은 사람을 너무나도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김새에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나와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크나큰 위안이 된다.


엘에이의 코리아타운은 대한민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한국인이 살고 있는 곳이다.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지만, 섣불리 벗어나기도 힘든 애증의 코리아타운. 이곳에는 <HMart>, <시온마켓>, <한남체인>, <가주마켓>, <HK마트>, <갤러리아> 등 한인마트 브랜드만 여섯 가지가 넘고, 한국 외식 브랜드는 대부분 입점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공차> 등 디저트부터 <엽기떡볶이>, <김밥천국>, <본죽> 등의 분식, <교촌>, <BBQ>, <페리카나> 등의 치킨집들과 <교동짬뽕>, <홍콩반점>, <피슈마라홍탕> 등의 중국집에 이어 <마포갈매기>, <강호동 백정>, <대도식당> 등 고깃집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급하게 한국 은행 업무를 봐야 한다면 <신한은행>, <우리은행>을 찾으면 되고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가 보고 싶다면 <CGV>에 가면 된다. <CGV>에 간 김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려 한국 책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꿈을 안고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는 반증이겠지.


누군가 "그래서 너는 너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이루었냐"라고 묻는다면 간단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오래전 캘리포니아행을 선택할 때 내가 유일하게 고려했던 조건은 내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대학 네임 벨류니 뭐니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우울의 역사는 학창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삶은 너무나도 치열했다. 엄마는 학구열이 굉장했는데, 나는 엄마가 바라는 모든 것을 시키는 대로 족족해내는 최상위권 학생이었다. 주말까지도 항상 반복되는 집,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의 루틴에 나는 이렇다 할 어린 시절 즐거운 추억이 딱히 없다. 뭐 시험에서 100점을 맞고, 무슨 경시대회에서 상을 타고, 특목고에 진학하고 한 마일스톤 달성이 추억이라면 추억이랄까?


처음에는 단순히 미국에 도착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대학은 전국에서 밥이 가장 맛있고 파티가 가장 재밌는 학교들 중 하나라고 했다. 쨍한 남가주의 햇살 아래 분수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으며 웃고 있는 브로셔 속 학생들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며 행복해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 몇 달은 참 즐거웠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모든 것에서 느끼는 설렘과 두근거림. 하지만 점차 그 모든 것들이 일상이 되자 다른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드는 미국 문화가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방인이라는 느낌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졌다. 또한 여전히 적성에 안 맞는 공부에 괴로워했다. 왜 나는 도대체 주변 친구들이 다 한다는 의사, 변호사, 증권사 애널리스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관심이 안 생기는 것일까 자책하며 울며 잠이 들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글을 쓰고 손으로 뭔가 만들고 하는 예술적인 것들을 좋아했다. 돌잡이 때도 크레파스를 집었다고 했다. 하지만 평생 해온 공부를 내려놓고 정해진 탄탄대로를 벗어난다는 건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라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했다.


지난 10년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학 원서 자기소개서에 비슷한 내용을 썼었다. "나는 아직 내가 누군지 잘 모르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대학 4년 동안 인문학 위주의 공부를 하며 진정한 내 모습을 알아가고 싶다." 현재 나는 처음 대학에 지원할 때 선택했던 전공인 국제관계학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나 자신을 찾는 일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내가 즐기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일을 할 수 있을 용기를 얻었다. 단순히 성공지향적이기만 했던 삶의 태도를 버리고 조금 더 여유롭고 동정과 공감을 할 줄 아는 가치관들을 새로이 배웠다. 고등학교 진학 상담실의 브로셔를 보며 처음 가졌던 캘리포니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현실에 회색빛으로 바랬지만, 그럼에도 나는 현재 행복하다. 만약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지금과 동일한 길을 걷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나름 또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나는 나고, 나는 그런 나의 성장을 믿으니까. 치어스 투 캘리포니아 드림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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