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것들

by 미누

새해 들어 계획한 건 좀 나가보자는 것이었다.

나가서 사람도 좀 만나고, 내 이야기 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좀 듣고!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도 부족한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어주기란, 나이가 들수록 왜 쉽지가 않을까.

그래서 언젠가부터인가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편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를 위로하는 건 언제나 사람보다는 커피였다. 커피를 만드는 동안의 그 움직임이 좋고, 그리고 향이 좋고, 그리고 그 목 넘김이 좋다. 쓰기만 한 건 싫고, 달기만 한 것도 싫다. 단짠이 아니라 쓰단. 혼자만의 시간은 쓰지만, 그만큼 같이 있는 시간은 달디달다. 달기만 한 건 매력이 없고, 쓰기만 해도 의미가 없다. 여하튼 커피는 늘 내게 위로다.


벌써 3월이 온다. 멍울 멍울 꽃망울이 피어나고, 햇살은 따뜻해지고. 옷차림은 가볍고만 싶다. 하지만 아직은 차가운 바람도 불어온다. 한동안 계절이 가고 오는 길목에 머무르겠지. 가는 겨울은 섭섭하고, 오는 봄은 설레겠지. 1월 내 생일에 공교롭게 시작한 글쓰기 모임, 그리고 다음 주부터 시작한 영어 회화모임은 좀 나가자는 내 생각의 실현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목적을 가지고 하는 모임은 처음 하는지라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 하였다. 글쓰기 모임은 내 글을 보여주는 거라 너무나 민망했고, 영어 회화 모임은 오랜만에 성인들 만나서 영어로 떠드니 횡설수설했다. 돌아와서 이불킥을 좀 했었더란다.


최근 이나영 배우가 인터뷰 한 내용 중에 공감 가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그녀에 대한 신비주의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사실 자신은 신비주의를 고수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이불 킥하는 횟수가 더 많아서 외부 활동을 하기에 더 생각이 많아 그런 거라고. 어쩌면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 이불 킥하기 싫어서 안으로만 파고들다 보니, 이제 지하수가 나올 지경이다. 그렇다고 아직 나온 건 아니지만.


햇살이 따스한 시각에 맞춰 세상에 나가본다. 하원하는 아이들.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는 커플들.

한국이 낯설고 좋은 외국인들. 웅얼웅얼 웅성웅성 세상의 소란에 나도 소란스러워지다, 언제나처럼 또 내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이 나좀 보라고 계절을 바꾸나 싶게. 여기 저기서 봄이 오는 척을 하고 있다.

길을 걷다 문득 계절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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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내밀면 사람들의 기대로, 바람의 달콤함으로, 햇살밥으로, 달디단 빗물로 세상에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다.

너란 꽃도 아직은 불완전 하다.

아름다운 꽃도 처음에는 이렇게 조그많고 앙상했구나.

그래도 넌 불굴의 의지로 나왔지.

왜냐하면 너는 꽃이니까!


뭐든 다 준비해서 나가지 못하더라도. 부족함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이불킥이 아니라 지붕킥을 하더라도, 자꾸만 부딪혀야 나를 보는 너그러운 눈이 생기지 않을까.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또는 내가 좀 너그럽지 못하지. 뭐 그래도 괜찮아.

나에게 좀 너그러워지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


2년 전부터 구상된 몽글몽글 카페의 글을 연재하다가 막혀서 관두었는데, 지난해 찔끔찔끔 쓰다가. 다시 속도를 내어 고치고 고치고,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이제 그 길이 좀 뚫려서 어찌 됐건 끝까지 완주를 하였다.


아직 손을 보아야 할 부분은 많기도 하지만.


문득 많은 시간 취미인지 일인지 꿈인지 모를, 이제는 그냥 나의 일부가 된 읽기와 쓰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 좀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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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거실에 앉아 엉덩이 아프도록 쓰는 동안 주인공 이현이 더 행복해져서 좋았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에서 교차하는 지점이 푸르른 바다여서 좋았다. 그 핑계로 여행도 가고, 바다 산책도 더 자주 하고. 글을 쓰는 동안 윤슬이 내 마음에 퍼지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내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뭘까. 돈일까. 마음의 위안일까. 또는 창조한다는 그 기쁨 자체일까.

나도 모르겠다. 글에서 헤매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글을 쓰면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달래고, 더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을 그려내면서 나도 나아질 거라는 희망.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결국 내 삶과 맞닿아있어서, 긴 인생은 결국 다 짧은 드라마라는 것.



때로는 삶이 싫어서 글로 도피했고, 또 글이 싫어서 삶으로 도피하다가. 지금은 어디쯤 왔는지 중간점검이 필요한 구간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그 구간에 나도 멈추어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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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좋아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가 않다.

팔릴 글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가 마치 세상에 팔려야 하는 것처럼 낯이 뜨겁다.



그러나 좀 솔직해도 좋겠다. 글도 자꾸 내보내고. 나도 자꾸 내보내고.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좀 나눠 마시고. 저 사람 이야기도 듣고, 이 사람 이야기도 들으며.


꽃이 피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너도 나도 다 활짝 피고 있다.

나도 이제 글을 좀 보내줄 때가 온 것 같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