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보다는 지는 게 낫잖아

나의 즐거운 쓰기 생활

by 미누


계절이 지나갈 때 설렘보다는 추억이 떠오른다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벚꽃이 피면 흐드러지게 예쁘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보다는 그렇게 아팠던 사춘기 어느 때로 돌아간다.

꽃 잎이 떨어질 때, 자홍빛의 선명한 액체가 바닥에 흥건하게 퍼지는 아찔하고 안타깝던, 돌아올 수 없던 어느 때로 나는 어느덧 도착해 있다.



오늘 투고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글을 썼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길, 잠시 벚꽃 동굴 속을 드라이브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여기가 꿈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썼다. 썼다기보다는 맞춤법 교정이었다. 교정을 하면서 퇴고도 하다 보니 아직도 끝내질 못했다.

실은 오늘까지 넣어보고 싶은 공모전이 있었기에. 그러나 오후 5시에 아이가 돌아왔고,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어차피 원고를 넣었어야 하는 거였고, 내 글은 아직 손보아야 할 곳이 여전히 많다.



IMG_7483.HEIC 9시에 앉았는데, 3시가 넘었다.



문득 친구가 보내준 내 성격 유형을 찬찬히 다시 보았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평범하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감정으로 사유하는 성향.


하.

얼굴이 약간 달아오르는 건 느낌 탓인지, 그래도 오히려 속은 더 시원했다.

나를 안다는 건, 그래도 답이 있다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벚꽃이 피고 질 때마다 그렇게 간절하고, 그렇게 허무했던지.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갈 때도, 그 안정에 도달하기 위한 남들의 노력까지도 배 아파할 만큼 그리 마음이 콩알만 했던 건지.


저녁 6시, 글을 쓰던 것을 멈추고, 아이의 머리를 자르러 예약한 미용실에 갔다.

"6시가 아니라 5시 반이라 기다렸는데.. 손님이 안 오셔서."

"아이고, 죄송해요. 내일 다시 올게요."


멋쩍게 미용실을 나와 아이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제야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돈을 지불하나 보다. 아이가 어느덧 많이 자랐다. 아직 봄은 오지 않은 거리, 우리는 부른 배를 꺼질 겸 거리를 쏘다녔다.


바람이 불자, 피할 곳을 찾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쿠키를 하나 사서 다시 마주 앉았다. 문득 내가 내 안의 이야기들을 찾아내려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 아닌지. 축구 학원에서 친구가 찬 정강이를 보여주며 파랗게 멍든 자국을 보여줄 때, 아차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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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괜찮아. 걔가 하도 많이 차서, 이제 그냥 걔가 이기게 놔둬.

아픈 것보다 지는 게 낫잖아.



글은 누구를 위한 구원일까.


결국 오늘은 하루 종일 앉아 있었고,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샘이다.

사실 화요일에 일을 쉬기로 한 건 사실 나를 좀 채우고 싶어서였다. 휘말리듯 살기도 싫었고, 채인 듯 먹고 싶지도 않았고, 늘 촉박하게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나는 화요일 마저 다시 나 스스로를 휘말리게 하고, 체하게 하고, 촉박하게 만든다. 바로 글이란 게 그렇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만 둘 수가 없다. 쓰다 보면 웃게 되고, 또 울게도 된다.

이 글은 나를 위한 구원일까.


애초에 글은 답을 몰라서 쓰는 거다. 소설도 결말을 모르기에 끝까지 써 내려가는 것이다. 알지 못하기에 독자들은 읽어나가는 것이고, 심지어 필자도 알 수 없는 결말을 향하여 하루고 이틀이고, 한 달이고 일 년이고 꼬박 소설 속 인물들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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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도 글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픈 것보다는 지는 게 나아서, 세상 속에 칼을 휘두르지 못해 종이 위에 펜을 휘두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약하고, 그리고 약한 이야기들에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이야기가 아픈 건, 나의 아픔이 투영되어서이기도 하겠지.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아픈 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아프도록 살아내 서겠지.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하나씩 골랐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한 나를 위해, 아무도 몰라줘도 내가 주는 선물이었다. 천 원짜리 이브콘을, 아이는 천 육백 원짜리 자갈치를 가지고 들어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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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퇴고해야 할 글자들은 여전히 남았지만, 왠지 홀가분하다.

아프기도 했고, 지기도 했다. 여하튼 그래도, 그래서, 여기까지 왔잖아.


몇 번 차이고 멍들어야 지는 게 미덕인 줄 깨달을 줄 아는 아이처럼,

나도 몇 번은 더 차이고, 또 꺾이겠지만.


벚꽃이 떨어지는 진홍빛 거리, 그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내 즐거운 쓰기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삶은

나의 아픈 세월 끝에 얻은 진주 같은 즐거움이 아닐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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