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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l 24. 2023

전화 포비아, 그게 대체 뭔데?




 요즘은 전화 포비아가 많다고 들었다. 연예인 중에 유명한 어떤 사람도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할 생각에 너무 두려워 전화를 몇 시간이고 바라본 적도 있다고 했다. 나는 전화, 문자 모두 두려운 경우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누군가에게 맞추는 게 익숙해서였다. 거절하기도, 먼저 그 자리를 나오기도 힘든 사람, 쉬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서 끝까지 남아있었던 사람. 사람들 무리에 있으면 따라 하면 되는데, 일대일로 해야 하는 전화나 문자대화는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점은 부단히 고쳐지고 다듬어져서 이제는 싫어도 바로 문자하고, 받기 싫어도 전화를 받아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심신이 지치기도 했다. 그럴 때 내가 찾은 방편이 핸드폰을 멀리 두거나 무음으로 해 두는 것. 내가 몰입할 무언가를 찾는 것이었다. 긴 산책을 떠나거나,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쓴다고,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핸드폰을 옆에 두지 않았기에 발생한 공백의 시간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제 이런 공백의 시간에 나와 연결되지 않는 사람들의 싫은 소리를 듣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다. 



 다시 산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살다 보면 결심이 잊히지만 왠지 모르게 지칠 때는 그 다짐을 다시 꺼내어 기억해 본다. 

 나를 위해 살아보자. 후회 없이 말이다. 


 누군가가 날 손가락질 할 만큼 잘못한 일도 없고 피해 준 일도 없다. 나를 지키는 일에 어쩌다 이렇게 죄책감까지 얹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젊은 날의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마음이 유리알처럼 산산이 조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나를 손가락질한다고 세상이 흔들리는 일은 없다. 마음은 조금 힘들겠지만 곧 나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갈 수 있다. 그럭저럭 무뎌지고 있고 더 단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는 만큼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어서 일 것이다. 평탄하지 많은 나의 삶에 고마운 순간이다. 나는 시간에 있어서만큼은, 나의 마음에서만큼은 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좀 괜찮아도 보인다.


 생각해 보면 친구나, 가족, 그리운 이들에게 전화가 오면 나도 좋다. 문자가 와도 좋다. 때로는 쓸데없는 전화라도 한 통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외로운 사람들의 속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내가 힘겨운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내가 소질이 없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을 미화하려는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내 마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노력을 얼마간 기울이다 보면, 이 노력을 왜 어릴 때 제대로 못했을까 싶다. 어린이는 먼저 나의 욕구부터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배우는 것 같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면 나부터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라고 비난받는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거나, 혹은 너무 어렸을 때부터 남을 배려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관계가 부담스럽고 힘들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나를 먼저 채워야 한다. 내가 채워져야 다른 누군가도 채워줄 수 있다. 내가 덜 채워졌을 때 누군가를 채우려고 할 때는 탈이 난다. 내가 비어있는데 남이 채워지는 꼴을 누가 배 아프지 않고 볼 수 있으랴? 남을 채움으로써 나의 빈 곳을 메꾸려는 그야말로 꼬인 이기심일 수도 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남을 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전화를 덜 받고, 문자를 회피하는 것이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언제나 나의 마음이다. 누군가를 맞추는 것이 너무 싫고 지겹다면, 이제 그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된다.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다. 나의 결핍을 내 손으로 채워보겠다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친구도 아니다. 가족도 때론 멀리 해도 된다. 

 

 따르릉. 지잉...., 진동과 전화음소리에도 갈팡질팡하면서 나를 자책하지는 말아야겠다. "미안해요."라고 너무 사과를 남발하지 말아야겠다. '미안할' 일을 애초부터 안 하려면 나에게 솔직해져야 했다. 그저 나는 그런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이제는 내가 나를 기다려주겠다. 

 혼자만의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 세상 사람 누구나 나를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배워야 한다. 일에도 언제나 우선순위가 있듯 관계에도 순서가 있다. 자신을 먼저 채우자. 그래야 누군가를 쉽사리 오해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좀 멋있는 사람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기적인 게 아니다. 단지 나에게 그런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도망가는 게 아니다. 정면에서 부딪히는 것이 아직은 낯설 뿐이다. 


 나에게 최적화된 길은 내가 찾아야지. 그러니 시간이 걸려도 어쩔 수 없다. 오해를 사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나를 내가 기다려주고 싶다. 나를 먼저 이해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해해 주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 나만큼 흔들렸던 사람과, 나만큼 외로웠던 사람과, 나만큼 두려웠던 사람과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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