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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Oct 21. 2023

토요일 아침. 여기는 거문마을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1



 아침햇살에 눈꺼풀이 덮인 두 눈마저 부셨다. 

 

 ‘뭐야, 어제 또 커튼을 안치고 잤나?' 

 

 눈을 떠보니 안방이 아닌 거실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창문으로 겨울의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이럴 줄 알았지. 어젯밤 재이가 잠든 후에 나는 거실로 나왔지. 거실에서 나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시면서 창 밖에 뜬 달을 보았던가. 아, 그러다 부엌에 놓인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켰지. 크리샤가 전생에서 자신을 죽였던 아나스를 이승에서 찾아냈다. 그다음부터가 흥미진진할 텐데...' 


 결국 이현은 가장 기다렸던 대목을 목전에 두고 잠들어버렸다. 10년도 전에 동네 안경점에서 구입한 동그란 테의 안경이 아직 이현의 얼굴에 비스듬히 걸쳐 있었다. 


 “재이야. 재이야. 일어나. 늦었어.” 

 “몇 시야?”

 “8시”

 “앙? 나 아침 못 먹고 가?”

 “아니야. 아니야. 먹고 갈 수 있어.” 


 벌써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현은 재이 옷을 꺼내놓고, 부엌에서 그제 만들어놓은 빵을 오븐에 넣었다. 안경을 쓰고 잔 건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안경을 찾느라 또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손목에 시계를 차려고 하는 순간 전자시계에서 날짜와 요일이 깜빡였다. 선명하게 깜빡이는 글자, SAT. 오늘은 토요일이다. 


 “아. 재이야...”

 “왜. 엄마?”

 “오늘 토요일이야.”


 그제야 지푸라기처럼 뻗친 머리에 눈곱이 붙어 있는 얼굴이 하얗고 동그란 재이 얼굴에 눈이 갔다. 말간 눈에 웃음이 가득 차올랐다. 


 “우하하하하.. 미안해...”

 “큭큭큭, 엄마가 그렇지. 못 말린다니까.”


 이현과 재이는 서로를 안고서 창 밖에서 거문마을을 비추는 겨울 햇살을 바라보았다. 간밤의 추위에 꽁꽁 얼었던 검정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가 햇살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뭐가?”

 “오늘이 토요일인 거 마음에 들어. 엄마는 오늘 아침에 커피 한잔을 여유 있게 마실 수 있으니까.” 

 “나도 학교 안 갈 수 있고.”


 이현은 두터운 겨울 외투 속에 깊숙이 넣은 팔을 빼려고 콩콩거리며 제자리를 뛰고 있는 재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맞아. 엄마는 커피 마시고 너는 학교 안 가고. 대신 너는 친구를 못 만나잖아.”

 “괜찮아. 엄마랑 있는 것도 좋아.”


 재이가 쌍꺼풀이 없는 동그란 눈을 반달처럼 만들며 말했다. 쌍꺼풀이 있는 이현의 눈도 덩달아 반달모양이 되었다. 


 “재이가 커피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어른되서 말이야. 엄마랑 카페에 앉아서 엄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너는 따뜻한 라테를 시켜서 서로 홀짝홀짝거리면서 엄마는 책을 읽고 너는....”

 “커피는 마셔줄게, 그런데 내 책은 만화책이야.”


 만화라는 말에 귀가 쫑긋 섰다. 


 “응? 언제 만화를 봤는데?”

 “학교에서 서준이가 매일 가지고 와.” 

 “응... 그으래?”


 나는 무심한 척 높낮이가 거의 없는 말로 대꾸를 하며 재연이를 흘긋 쳐다보았다. 나의 눈길을 느꼈는지 재이는 아까보다 더 높은음으로 대답했다.


 “별로 부럽지는 않았어. 그런데 재미있었어.”






 이현과 재이가 사는 거문마을은 만화방은커녕 흔하디 흔한 마을도서관도 없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도 아이도 보기가 드문 곳이기 때문이었다. 도심에서 거문마을까지 오는 대중교통이라곤 두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 한 대 밖에 없다. 거문마을에는 식당도, 마트도, 문구점, 학교도 유치원도 없다. 그래서 재이는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자전거를 타고 마을버스와 시대버스를 타야 했다. 모든 세상의 것들로부터 단절될 수 있는 곳. 이 특별한 점이 이현의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아름다웠다. 잠들기 전 커튼을 치는 것을 잊는 이우도 바다가 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티 없는 푸른 하늘을 담아내느라 빛이 났다. 수만 개의 작은 빛들이 반짝였다. 해가 지는 거문바다의 저녁은 또 어떤가. 수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사그라들며 밤이 낮을 잡아먹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이현은 이 아름다운 풍경에 반했었다. 모든 것에서 단절될 수 있다면. 하지만 단절됨으로써 불편한 것은 감수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삶의 모든 것에 공짜는 없다. 멀리 옴으로써 단절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아주 당연하고 사소했던 것들은 삶에서 사라졌다.


 “휴, 오늘이 토요일이었길 망정이지. 정말 지각할 뻔했어.”


 겨울에 도로는 미끄러워서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이런 날에 이현은 재이의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느지막이 재이를 데려다주곤 했다. 


 “재이야, 너는 코코아 한잔 먹고, 엄마는 커피를... 이런... 망했어..."

"왜, 엄마?"

" 커피가 떨어졌어.”

"하여간 못 말려..."


 재이는 학교에 가기 위해 위대해져야 했고 이현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특별해져야 했다. 떨어진 원두를 사러 가려면 한 시간가량을 운전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이 이처럼 절실해지는 곳.  그렇게 평범하기 위해 위대해져야 하는 곳, 

 

 거문바다가 보이는 울창한 숲 그 한가운데에 이현과 재이, 두 모자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p.s. 거문바다에서 펼쳐지는 두 모자의 게스트 하우스와 손님들, 그리고 미스터리 카페 청년의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  infp인 제가 주 2회 꼭 연재를 마칠 것을 공식적으로 약속합니다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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