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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n 23. 2024

지나간 이야기들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로즈네 


 


이현과 재이가 처음 로즈네에 왔을 때였다. 지금 이현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원래 이름이 바로 로즈네였다. 


 "엄마, 여기 집이야?"


 '여기가 이제 살 집이냐는 말이겠지.'


 이현은 재이가 어떻게 말해도 그 본의를 바로 알아차렸다. 


 "엄마?"


 재이가 대답이 없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작은 꽃집 할머니네에서 지냈던 날들이 마음에 들었던 재이는 이 커다란 집에 관심이 없었다. 

 작은 꽃집 할머니가 이 집을 소개한 건 이현이 할머니 집에 들른 첫날부터였다.  

 작은 종이 조각에 할머니가 적은 글은 바로 '거문리 11번지 로즈네'. 


 "로즈네요?"


 "어어... 거기 안주인 이름이 로즈야. 로즈네... 남편하고 둘이 있지요. 거기 방이 아주 많아. 식사하러 오는 손님에게 방도 내준다고 했어. 한번 가봐요. 우리 집보다는 편할 거야."


 그렇게 쪽지를 건네받고도 사실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이현은 할머니 집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재이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어쨌는지 작은 꽃집 할머니는 더 이상 로즈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쳐 잠든 재이를 할머니가 쓰는 아담한 안방에 두툼한 이부자리에 누였고 이현도 마치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해가 지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며칠을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나자 현실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당장 묵을 곳이 아니라 살 집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현은 단 한 번도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부터 알아봐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런 이현을 보고 작은 꽃집 할머니가 말했다. 


 "여기가 마음에 들겠지. 하지만 또 떠나고 싶을지 몰라. 그냥 며칠 우리 집에서 묵다가 도시로 가는 건 어때요?"


 "아니에요. 이번엔..."


 "뭐 예전에도 시골에서 살아보려고 했었나 보지요?


 "마음만 여러 번 먹었어요. 할머니. 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글쎄, 다른 것이 곧 익숙해지면 또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 질걸? 그때는 도시가 그리울 거야. 게다가 재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이면... 다들 그렇게 도시로 떠나는걸? 왜 굳이 고생스레 들어와 살라고 그래."


 "할머니는 왜 여기 사세요?"


 "나?..... "


 "네... 할머니요. 할머니야 말로 이곳과 어울리지 않아요." 


 이현은 초록색 타일로 벽을 장식한 부엌, 그리고 매우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동색 원목의 원형식탁,  그 맞은편에 서 있는 서재에 눈을 돌렸다. 

 나무 무늬가 그대로 보이는 책장 안에는 온갖 소설과 구하기 힘든 만화책들, 그리고 영어가 새겨진 시간이 지난 잡지들이 있었다. 

 철학책들도 꽂혀 있었는데 이현은 대학교 교양 수업에 들었던 철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이름들을 책들에서 종종 발견하곤 했다.  


 "나야.... 추억을 먹고사는 사람이잖아. 여기에 모든 추억들이 있으니까."


 "어떤 추억인지 여쭤봐도 돼요?"


 "글쎄... 내 젊음. 내 사랑. 그리고 나의 꿈..."


 "에잇, 뭐예요. 너무 추상적이에요. 더 궁금하잖아요."


 "아들이 있어요. 아니, 아들이 있었었지."


 아들이라는 말이 들리지 재이가 자기를 부르는지 알고 휙 돌아봤다. 재이는 마당에서 흙을 파내고 있는 중이었다. 재이의 눈길을 이현이 받아내며 고개를 떨궜다. 왠지 괜한 질문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아들을 위해서 살았어. 아니. 너무 사랑했으니까. 내 꿈이고, 내 사랑이고, 내 젊음이었지."


 할머니는 재이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마당에 심어진 꽃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있었었다는 건 더 없다는 말이겠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아직 있어."

 

할머니는 숨이 찬 듯 잠시 말을 먼 춘 채 숨을 골랐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예전 같은 사이가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여기 사나 봐. 얼마 안 있으면 나는 떠날 테고. 그때까지 추억을 잘 다듬으며 사는 거지. 뭐."


 "죄송해요. 괜한 질문을 했어요."


 "나같이 보내지 말아요. 짧은 인생이니까."


 야리야리한 손, 주름도 없이 깨끗한 얼굴, 맑은 눈망울이 반짝이는 눈, 작고 아담한 콧날, 흰색이 드문 드문 섞인 갈색의 거친 머리칼.

 하얀색에 보라색 작은 문양이 수놓아진 까끌까끌 시원한 천으로 만들어진 셔츠를 걸친 할머니의 목소리가 왠지 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할머니가 소개한 로즈네로 와서 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또 로즈네에서 며칠을 묵었고 그리고 얼마 후 그 집의 주인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할머니의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나같이 보내지 말아요. 짧은 인생이니까."


 그 말은 이현의 엄마가 이현의 결혼식에서 한 말이기도 했다


"자네 둘에게 할 말이 있어. 바로 이거야. 인생이 짧아. 아등바등 살지 말고 즐기면서 살아. 우리처럼 살지 말라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현이 턱시도를 걸친 후영을 바라보았다. 


"어때? 후영 씨. 즐기면서 살자."


 "그럼. 그래야지." 


 둘은 손을 꼭 잡았다. 회사를 퇴사하지 못한 이현은 2년 뒤에 대리가 되었고, 그리고 2년 전 소개받은 지금은 부장님이 된 대리님의 주선으로 만난 대리님의 동생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 모든 것이 꿈같았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 날이 되었다. 


 "참, 인생은 알 수가 없지?"


 이현이 결혼식을 마친 후 후영에게 물었다. 녹초가 된 그들은 이제야 해야 할 모든 것들을 다 끝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조금 즐길 수 있을 거 같아."


 이현이 대답이 없는 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자둬. 이제는 새로운 세계니까."

 

 그로부터 5년 후 이현은 후영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아니 후영은 이현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누가 먼저든 상관없이 이 헤어짐에 대해 이현은 의외로 대단히 차분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현은 의외로 차분하고 평화로워 보였기에 친구들과 가족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리고 이현더러 '대단하다'라고 '잘 해내고 있다'라고 말을 하던 사람들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이혼 후 3달쯤 되어서였다. 




 






 로즈씨와 건축가 남편


 



 "어머, 꼬마가 있었네요?"

 로즈네에 왔을 때 자신과 재이를 반겨준 이는 이 집의 안주인, 로즈씨였다. 창백한 안색에 마른 몸이었지만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은 단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숏컷의 머리에도 그녀의 외모는 당당해 보였다. 카키색 스웨터를 걸친 그녀는 춥다는 듯 어깨를 감싸며 부엌으로 가서 따뜻한 티와 레모네이드 한잔을 타왔다. 

 

 "나도 아이가 있었다면.... 아마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집을 파는 이유는 아이가 없기 때문이에요.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만 건강하지가 않아요. 어쩌면 오랫동안 병원에 있어야 할지도 몰라요. 이곳은 건축가인 남편이 나를 위해서 오랫동안 고심해서 지은 집이에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 취향은 아닐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특별한... 아주 특별한 집이에요."

 

 로즈씨가 '특별한'이라는 단어를 특별하게 강조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지요. 작은 꽃집 할머니가 소개해 준 분이 아니라면 이 집을 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작은 꽃집 할머니가 그러더군요. 이 집을 잘 보살필 분이라고."


 "아 제가요? 저는 이 집을 보살피기보다는 뭐... 잘 살고.."


 이현은 게스트 하우스로 이 집을 운영하겠다는 그녀의 계획을 차마 로즈씨 앞에서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면 이 '특별한' 그녀의 집이 그녀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끊임없이 견뎌야 하는 것이니까. 그녀에게도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로즈씨가 곧 놀러 온다고 했으니 그때는 사실대로 말하지, 뭐. 잘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현이 다시 로즈씨를 본 건 그녀의 죽음 뒤였다. 집을 판 뒤 로즈씨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서둘러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떠나버렸다. 로즈씨의 유골함을 들고 로즈씨의 남편이자 이 집의 건축가인 한 남자가 이 집을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 근처 바다에 아내의 유골을 뿌리러 왔다며 이 집에 잠시 들렀다고 했다.


 "로즈가 이곳을 사랑했어요. 여기서... 여기서..."


 처음 보는 남자가 이현의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이현은 어쩔 줄 몰랐지만 그가 어떤 말을 이어가려고 했는지는 알았다. 


"알아요...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왠지 이현은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아니... 제가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니 죄송하네요."


 얼굴이 붉어진 남자는 유골함을 두 팔로 꼭 감싸며 말했다. 


 "아내는 정말 좋아했어요. 여기에 아이와 엄마가 살 거라고 해서." 

 

 이현은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이 집을.... 사실 게스트...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려고..."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건축가 남편에게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내도 작은 꽃집 할머니로부터 소식을 종종 들어 알고 있었어요. 오히려 잘 됐다고 했어요. 아내는 손님이 많은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방이 모자랄까 봐 그걸 미안해했죠. 다락방과 창고는 쓸 수도 없을 테고...." 


 남자는 자신이 지은 건물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리고 한참을 그곳을 서성이다 재이와 몇 마디를 나누고 바다를 향해 유골함을 꼭 쥐고 떠났다. 


  남자가 떠나고 그날 밤 이현은 걷잡을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같이 눈물이 쏟아졌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오래도록 많이 한꺼번에 울어본 것은 아마 세상에 태어날 때를 제외하고 처음일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울음이 멈출 것 같지 않아서 재이가 잠이 들자마자 그녀는 눈물을 닦아 내서 흠뻑 젖은 수건을 들고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와서 3층의 다락방 문을 열었다. 

 이사를 하기 위해 온 날, 대청소를 한 이후 다락방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위로 뚫린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졌다. 푸른 밤, 동그란 달 하나 주위에 알알이 박힌 별들이 마치 창문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부둥켜안고 힘겹게 들어선 다락방안에서 이상하리만치 그녀의 눈물이 단박에 멈춰버렸다. 바닥에 깔린 나무의 거친 면이 마치 나무가 살아있었음을 증명이나 하는 것 같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어두운 밤을 녹이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방인 것처럼.


삐익, 삐익...

그녀가 걸을 때마다 바닥은 삐걱거렸다. 


드르륵... 드르륵...

그녀는 바닥에 등받이가 없는 의자 하나를 두고 올라가 두 팔을 힘껏 뻗어 창문을 열었다. 


아.... 

따스한 밤공기가 흘러 들어왔다. 다시 그녀는 눈물이 흘렀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콸콸 쏟아지는 폭포가 아니었다. 잔잔히 내리는 비처럼 그녀의 눈을 적시고 뺨을 타고 내려와 턱에서 머물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현은 오늘 만난 그 남자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사를 왔던 날, 창고 정리를 하며 로즈씨네가 두고 간 잡지 표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잡지 표지에는 낯익은 집, 로즈네를 배경으로 한 두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로즈네 집 앞으로 체크무늬 앞치마를 걸친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 꼬마들처럼 웃고 있었다. 여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긴 머리에 고운 머릿결, 그리고 한결 통통한 볼 사이에 패인 귀여운 보조개가 인상적인 로즈씨는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녀 옆에 있는 남자는 바로 로즈씨의 남편이었다. 그의 덥수룩한 앞머리 사이로 갈색 둥근 테두리의 안경 안에 갈매기 모양의 두 눈이 숨겨져 있었다. 하얀 얼굴과 곱상한 손가락은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집 안에서 설계도를 펼치고 있는 모습과 잘 어울렸다. 

 오늘 이현이 만난 남자와는 너무 달랐다. 새하얗게 샌 머리, 구부정한 허리. 로즈씨의 아빠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생김새.

  이현은 오늘 늙어 보이는 건축가의 얼굴에서 로즈씨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재이를 바라보던 모습, 그리고 '꼬마'라고 부르던 목소리... 그 미세한 떨림. 

 10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던 건축가 아저씨, 그리고 죽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로즈씨, 두 사람의 꿈은 이 집에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그녀는 다락방에서 달빛을 바라보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머물러있었다. 더 이상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로 했다. 울음이 멈추고 슬픔이 사라질 때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상하리만치 가벼운 행복감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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