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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습 그대로 천년을 머금은 지명

(한중 지명으로 야기되는 주장 4-9)

by 오해영

이름은 권력이다


지명에는 그 지역의 자연과 역사문화가 버물려 있으며 그 역할이나 사회적 요구가 변하면 이름이 바뀐다. 더욱이 왕조시대 지명 변경은 흔했는데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옛 왕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혹은 지역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 위해 지명을 바꾸곤 했다. 그만큼 지명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권력의 표현이었다.


757년 신라 경덕왕은 전국 지명을 한자로 바꾸었는데 표면적 이유는 당나라 문화 따르기였지만 속내는 왕권 강화였다. 고려왕조는 지방 호족 포용 수단으로 지명 개명을 활용하였는데 왕조 출범에 찬성하거나 새 직접 참여를 하면 지명의 급을 승격시키고 반대하면 강등시켰다. 즉 지명을 보상과 처벌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의 경우 고려 왕조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개명을 하였는데 전 왕조에서 좋은 대우를 받은 지명을 중점적으로 바꿨다. 이처럼 왕조시대 대규모 개명은 외부로 표방하는 명분이 어찌 되었건 숨겨진 의도는 정치적 의도의 다른 표현이었다.


또한 지명개명을 실행할 때 유교 경전과 중국문화에 해박한 학식을 갖춘 지식인들을 앞장 세웠으며 필요할 경우 물리력을 동원하여 강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하다 보니 지방은 명분과 강제력을 앞세우는 중앙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천년 넘게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지명이 있다


이와 같이 지명은 단순한 땅 이름이 아니라 시대 정치의 함수이었다. 시대가 달라지고 권력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 그 변화의 시작은 종종 지명의 이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수많은 전쟁 정치적 격동 문화의 물결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이름이 바뀌지 않은 지명이 있다.


757년 신라가 바꾼 지명중의 일부가 고려와 조선 왕조를 거치는 동안에 역사적 사건과 정치적 변혁의 수용돌이에서도 바뀌지 않고 천년이상 첫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들 지명을 놀랍게도 남부지방인 전라도 경상도 지역에 몰려있고 충청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중부 지방에는 거의 없다.


살아있는 지명.png

(1268년 동안 사용된 지명 현황-구례 압해 제외)


변하지 않은 지명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천 년 지명의 비밀 첫째는 우리말의 느낌을 가진 이름이다.


신라가 당나라식으로 지명을 바꿀 때 지역민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우리말의 발음을 최대한 살려 한자로 표기한 경우가 많았다. 또 유교 의미의 한자를 사용하였으니 지역 지식인의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이 요인은 왕조가 바뀌어도 사회의 변혁에도 지명이 변치 않는 중요 포인트가 된 듯하다.


예를 들어 경북의 지례라는 지명은 지푸다의 방언에서 유래됐고 여기에 유교적 의미인 예禮자를 붙여 지례知禮로 만들었다. 이런 방식은 주민들이 낯설어하지 않고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 하였을 것 같다.


천 년 지명의 비밀 두 번째는 군사요충지이다


군사 기지나 군대 주둔지 의미를 가진 지명이 있다. 군위는 백제를 정벌하기 위한 신라 군대의 병참기지였고 군을 사열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효령은 김유신이 군사작전을 계획했던 곳이며 그를 기리는 사당까지 세워졌다. 이런 요인은 쉽게 이름을 바꿀 수 없을 만큼 상징성과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지명이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천 년 지명의 비밀 세 번째는 교통요지이다


교통이 좋은 곳에는 물자나 사람의 왕래가 많다. 중국 교역 항구 물류지 여행객 많은 곳은 창고 숙소등 시설이 들어선다. 이런 지역에 주막 등이 생겨남은 자연스럽다 하겠다.


예를 들어 주천은 강원도와 충청도를 잇는 길목으로 유동 인구가 많아 자연스럽게 주막이 번창했다 술을 파는 샘이라는 뜻처럼 주천은 왕래하는 사람들의 쉼터로서 이름값을 했고 그 특징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천년지명의 네 번째 비밀은 고구려의 흔적이다


강원도 지역의 천년이상 변치 않은 지명 세 곳 중 두 곳에 고구려 관련 이야기가 있다. 아마 신라의 삼국통일로 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잃어버림에 대한 안타까움이 지명에 스며든 것일까 싶다.


그런데 뛰어난 인물의 업적이나 충성심을 나타내는 일이 왕조시대 중요한 항목이었는데 천년이상 변하지 않은 지명에는 극히 적다. 왜 그럴까?


지명은 그냥 이름이 아니다


지명은 단지 행정상의 구분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언어 기억 정체성이 녹아 있는 문화유산이고 역사문화의 비밀을 여는 열쇠이다. 천 년 넘게 바뀌지 않은 이름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동네 이름에도 어쩌면 오래전 사람들의 꿈 땀 전설 삶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이름은 언제부터 그 이름이었을지 그리고 그 이름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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