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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명으로 본 한•중의 속살

(한중 지명으로 야기되는 주장 4-10)

by 오해영

오랜 시간이 깃든 지명은 단순한 공간의 표지가 아니라 그만큼의 시간 동안 그 지역을 바라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품어온 역사 문화의 기록표이다. 이 기록을 살펴봄은 국토를 높은 곳에서 한 덩어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지역을 세세히 살펴보는 의미이다.


마치 새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듯이 전체를 조망하는 게 아니라 땅에 서서 주변을 가만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며 이렇게 하면 다른 것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지명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오래된 지명이 들려주는 숨은 이야기


첫째 작은 산과 강이 이롭다


한•중 양국의 천년 지명(오래된 지명)이 있는 곳은 큰 산이나 강이 아닌 생활 터전 옆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산과 강 주변이다. 인력과 가축의 힘을 이용하여 삶을 살았던 시대에는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산과 강에 기대어 해결하여 왔다.


큰 강이나 큰 산은 인간의 생존에 별 도움이 없으며 오히려 큰 재난을 입혀 삶을 더 어렵게 하였다. 이들을 활용하는 경우는 중앙 집중적 거대한 집단일 경우이었다. 보통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산과 강은 휴먼 스케일 규모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받도의 산과 강의 규모는 휴먼 스케일이 대부분이다.


중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중국을 대표하는 황하나 장강은 규모가 너무 커서 접근하여 이용하기 어렵고 오히려 엄청난 재앙을 일으켜 생활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강과 산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었다.


두 번째 오래된 이름 속에 담긴 이주와 피난의 발자국


한반도 동남부 바다와 연해 있는 지역은 일본 중국과 쉽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이 지역의 지명에 관계된 이야기가 상당히 스며 있다.


동해안 지역은 일본과의 교류나 왜구 침범을 대비한 활동이나 한양행 사신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머문 사연이 지명에 담겨있다. 남해안의 경우 백제 부흥운동의 실패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안타가운 사연이 있고 전쟁을 핑계로 우리 땅의 일방적으로 빼앗은 사건이나 고려와 몽고의 일본 정벌을 위한 연합 기지 설치 이야기도 있다.


중국의 한나라가 침략올 때 어느 장군이 귀국하지 않고 정착한 이야기가 지명에 있다. 조선출범에 비협조적인 고려왕족과 고려 지식층의 강제 이주 이야기도 있다. 특이하게 서해안의 경우 오래된 지명에 중국과의 교류나 그들의 침략 이야기가 없다.


전라도 내륙으로 눈을 옮기면 중국에서 난리를 피해온 사람들의 정착 이야기와 고조선 발해 고구려 유민의 이주 사연이 있는 지명이 있으며 경주 귀족 강제이주와 청해진 해체 후 주민 삼터 옮기기 사연도 있다.


경상도 내륙의 경우 왜구를 피하기 위한 섬 주민 집단 이주 이야기가 있으며 강원도 내 지명에도 고려 선비들의 조선 건국을 못 마땅하여 자발적으로 피신한 이야기도 있다.


세 번째 지역 자생형과 중원 확장형 지명


한반도의 오래된 지명은 중앙의 권력이나 문화에 덜 구속되는 지역에 많다. 이들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농어업의 형편이 좋아서 생활에 큰 곤란이 없는 지역이었다.


특히 남부지역의 경우 삼국시대 이전부터 많은 소국들이 공존하여 왔으며 중앙 정치에 영향이 적어 오랜 기간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러하다 보니 자생적 성격의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이 지명에 스며있다.


중국은 땅은 크지만 공인된 천년 지명은 매우 적으며 대부분 수도에서 상당히 떨어진 지역에 분포한다. 이를 벗어나면 천년고현이 아예 없다. 따라서 거대한 땅덩어리에 무척 오래된 문화라는 말도 천년고현의 눈으로 보면 조그마한 지역의 점들이 일부지역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원지역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그들의 쓰임을 찾으려 비중원지역으로 옮겨 살면서 중원의 문화를 이식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중원의 문화의 확장이나 중원 문화를 지향하는 그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네 번째 우리 겨레활동영역 확대이다.


중국의 천년고현 절반이 산동성에 분포하는데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활발했으며 또한 그곳에 살았던 동이족은 중국의 한족과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동이족과 관련 이야기가 있는 천년고현이 상당히 존재한다. 아마 이들 지역과 만주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요소나 연관점을 찾아봄도 필요하다 하겠다.


오래된 지명을 지키는 이유


이처럼 오래된 지명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그 안에는 뿌리내리고 살던 삶의 이야기 낯선 땅으로 떠나온 발걸음 나라와 나라가 만나고 부딪힌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지도를 펼치고 오래된 지명을 따라가 보면 그 안에서 과거의 숨결과 속살을 마주 볼 수 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 특별한 기준에 따라 천년 고현이라 불릴 만한 지명을 골라 보존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다가올 문화의 세기에 대비하여 지명을 어떻게 대하고 관리함이 좋을지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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