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가제본은 망한 것 같아요.

by 김용희

“집에 프린트 있으신 분”


민주가 절친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민주는 제주에 오자마자 사귄 나의 동갑내기 친구이다.


“나 가능한데 지금 신제주. 급한 거야?”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던 나는 민주의 메시지를 보고 답장했다.


“이따가 오면 해줘도 돼. 용희 너 책 언제 나와?”

“이번 주에 가제본 받아보고 괜찮으면 다음 주 인쇄하려고. 집에 가면 잠깐 보자.”

그렇게 나는 프린트물을 들고 민주를 만났다.


“용희야, 너 책 다음 주에 나오는 거야? 책 나오면 출판기념회 이런 것도 하지 않아? 그런 거는 안 하는 거야?”


내 친구 민주는 아마 내가 유명한 작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 나는 독립출판으로 할 거고... 비용은 내가 부담하는 거라 아마 그런 건 못할 것 같아..."


“아쉽겠다. 그래도 출판기념회도 하고 싶을 건데... 네 책 나오면 내가 1번으로 예약할 거야. 내가 1번이고 효경이가 2번.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 팔면 한 10권은 팔 수 있지 않나?”


내 책을 사주겠다며 해맑게 말하는 민주가 고마웠다. 소라빵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책이 나오면 그 친구가 진정 나의 베스트 프렌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하시더니, 민주는 정녕 나의 제일 친한 친구가 맞았던 것 같다.


“고마워.”


“나영이도 살 거고 민지도 사라고 해. 아참, 정아 언니도 있다. 벌써 5권 팔았네. 5권도 생각해 보면 누구 있을 거야.”


혼자서 벌써 5권 팔아준 민주가 덕분에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 민주야.”




민주와 헤어진 후 나는 처음 내게 책을 써보라고 권유했던 진희 님에게 최종 원고 파일을 보낸 후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 어떤지 한 번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귀엽게 나왔네요. 그렇지만 아마도 인쇄가 나오면 좀 속상할 수도 있어요. 제 친구들도 열의에 차서 인쇄를 넘겼는데 최종 인쇄가 나오고 엄청나게 실망하더라고요. PDF로 보면 쨍한 색감들이 한 톤 어둡게 나오기도 하고 종이 질에 따라 많이 달라 보여요. 혹시 인쇄가 잘 안 나오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나는 걱정스러워하는 진희 님께 말했다.


"요즘은 디지털 인쇄라서 웬만하면 잘 나온다고 하는데... 설마 잘 안 나오려고요? 아마 괜찮을 거예요."





신청한 가제본은 목요일 출고 되었다. 제주도의 택배 배송은 타지역보다 하루가 더 걸리는 특성상 주말과 휴일에 따라 배송이 달라지고, 택배사나 그날의 날씨에 따라 배송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된다. 보통 태풍에 걸리면 물건이 선적되지 못하고 1~2주 그냥 지연되기도 한다.


책 샘플은 인쇄 일정과 배송일자를 생각해서 넉넉하게 화요일에 주문을 넣었건만, 엽서 디자인에 너무 심혈을 기울였던 탓에 화요일 저녁 간신히 파일을 완성해서일까? 금요일과 토요일 아침까지도 청원 허브에 걸려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애가 타는 마음에 택배사 송장 조회를 통해 위치 확인을 해 보았지만, 금요일 새벽 청원에 있다는 것까지 확인되고 이후 행적은 묘연했다.


택배 기사님이 바쁘시다는 건 잘 알지만, 책 만들기 프로그램이 다음 월요일을 마지막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제주에 물건이 들어오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든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평소 택배가 오전에 배송되는 것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기사님께 문자를 드렸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송장 번호 6699760 월요일 오전 9시까지는 꼭 필요한데요. 청원에 멈춰있고 조회가 안 되는데 혹시 월요일 오전에 제가 찾으러 가면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제주에 들어왔으면 제가 받으러 가도 되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이윽고 택배 기사님의 답장이 도착했다.


"조회해 보니 제주는 오늘 올 것 같습니다. 배달은 월요일은 되는 데 9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급하신 건이면 오늘 찾으러 오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1시 반부터 5시까지 하차이니 물건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결국 나는 택배기사님의 문자를 받고 토요일 오후 센터로 찾아가 샘플을 받았다.


'과연 결과물이 어떻게 나왔을까?'


지금은 가제본이 도착해도 아무 느낌이 없지만, 당시에는 택배 상자를 열기까지 마음을 진정시키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나는 센터 앞 주차해 놓은 차 안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아, 이게 뭐야."


첫 책을 본 순간 나는 한숨과 함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식물도감이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다큐멘터리 느낌의 책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 책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몇 가지를 추려 말하자면... 일단 사진 해상도가 너무 낮아 사진이 깨져 보여서 누군가 한 번 시범적으로 만들어 저렴한 책 같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사진의 색감이 일관되지 않았으며, 일러스트는 너무 튀고 그에 대비 사진의 느낌은 또 너무 진지했다. 책 구성도 문제 였는데 동물을 만난 에세이와 장소 소개 글 다음에 갑자기 시가 나와서 책 콘셉트가 너무 모호해 보였다.


'이거 참, 완전 망한 것 같은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민주의 얼굴이 스쳐 갔다.


'아무리 민주가 사준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도저히 못 팔 것 같은데.'

나는 민주에게 책 표지를 사진 찍어 보냈다.

"민주야, 책 샘플 나왔어."


해맑은 민주에게서 곧 답문이 왔다.

"책 완전 귀엽다."


‘아, 이젠 정말 어떡하지?’


책 샘플을 받고 나니 오히려 책을 쓸 때보다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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