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제주의 또 다른 도서관에서는 지역출판인, 독립출판제작자 등 출판 과정에 관심 있는 도민을 위한 강의 프로그램이 오픈되었다. 강의는 출판기획에서부터 편집 실무, 콘텐츠기획, 출판 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출판인으로서 배워야 할 내용들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한 번 가볼까? 지금 듣고 있는 당신만의 책 만들기 프로그램도 거의 끝나가는데...'
나는 새로운 수업을 신청하면 아무래도 책 만들기에 대해서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그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마침 소라빵 선생님도 같은 수업을 들으시게 되어 가제본이 온 다음 날 우리는 어느 도서관 벤치에서 만났다.
"선생님, 어제 온 따끈따끈한 가제본이에요. 근데 예상보다 많이 망한 것 같아요."
나는 소라빵 선생님께 어제 도착한 가제본을 내밀며 말했다. 책을 받은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히 책을 살펴보시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수업 기간 내에 이렇게 샘플까지 찍으신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가제본이 망했다며 시무룩해 있는 내게 소라빵 선생님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그냥 지금 내가 가제본에 대해 느끼는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기로 했다.
"저는 사실 이 샘플을 보고 크게 실망했어요. 제가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하나 싶기도 하고... 사실 이런 퀄리티라면 앞으로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내 이야기를 듣던 소라빵 선생님은 매우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뭔가 얻은 것 같아요."
"그런가요?"
"네... 이 가제본을 좀 정리해서 책을 만들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책을 살펴보니 지금 상황에서 두 가지 방향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아예 책의 전체적인 톤을 다운시켜서 더 점잖게 가거나 아니면 더 정신없게 만들어서 톡톡 튀게 하거나... 방향은 용희 님이 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용희 님은 어떤 걸 원하시는 거예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저는 너무 점잖은 것보다는... 좀 밝고 톡톡 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예 전문적인 내용을 다룰 게 아니면... 제 생각에는 여기에 용희 님 자신의 이야기를 넣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여기 사라봉 토끼 페이지 있잖아요? 여기에 토끼를 봤을 때의 용희 님의 심정이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걸 한 번 써보세요."
"에세이 같은 걸 넣으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에피소드가 있을 텐데요. 생각해 보시고 만약 가능하다면 한 장소에 대해서 4장 정도의 글 분량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본인이 왜 이런 콘텐츠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 있으면 독자들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이야기가 있어야 독자들도 관심이 가는 법이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분명 뭔가 느낀 것들이 있을 거예요."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노트에 꼼꼼히 적었다. 선생님은 잠시 책을 보며 생각을 정리한 뒤 조언을 이어갔다.
"그리고 처음에 발표하셨던 이 책의 콘셉트가 좀 독특했는데... 그런 게 지금, 이 가제본에서는 잘 살아나지 못한 것 같아요. 되도록 기존 콘셉트를 유지하는 게 글을 쓰기엔 더 편하실 거예요."
"여기 시도 많은데 시는 어떻게 할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정 넣고 싶으시다면 한 편 정도 넣고, 너무 많이 넣지 않는 게 어떨까요?
독자들 입장에서는 에세이가 좀 더 이 감성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바쁘신 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그럼, 일단 오늘 선생님께서 조언해 주신 대로 다시 한번 작업해서 수업에 가져가 볼게요.”
당시 나는 소라빵 선생님이 친절한 조언을 해주시는 게 진심으로 고마웠고, 모든 게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가제본을 보고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는 것에 적잖이 감동했다. 그리고 오히려 책 경험이 많은 선생님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에게 더 따뜻하게 대해주셨다는 점을 가슴에 새겼다. 나는 책 제작과 관련한 소라빵 선생님의 조언을 소중히 잘 간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