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당신만의 책 만들기' 마지막 수업 날.
소라빵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일까지 괜찮은 콘셉트를 만들어야, 앞으로 혼자서도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진은 일단 다 빼는 게 좋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사진의 화소가 낮아 사진이 많이 깨져 보이기도 했고 실제로 종이에 인쇄되어 나온 동물 사진은 너무 진지하게 동물도감 같은 이미지를 풍겼기 때문이다.
'사진은 다 빼고... 그리고 시도 빼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일단 인디자인을 켜서 사진 페이지를 다 빼버리고, 시도 다 지워버렸다.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 페이지를 다 지우고 나니, 책 분량이 12장 밖에 남지 않았다.
'헐... 나 또 다시 써야 할 것 같은데?'
책 쓰는 게 원래 이렇게 어려운 건가? 벌써 몇 번째 책을 다시 쓰고 있는 건지... 과연 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걸까? 이쯤 되면 내가 책 쓰는 걸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놔...'
나는 진심 망연자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실망한 마음에 무작정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나처럼 생긴 김작가라는 캐릭터를 하나 그렸다. 나는 그 캐릭터에 '책이 없는 김 작가' 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김작가는 방 한구석에 누워서 책을 들고 울고 있었다.
'완전 나랑 똑닮았구만...'
참 이상한 말로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캐릭터를 그리자마자 영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책을 써도 책이 없는 김 작가 라니... 그냥 이렇게 좌충우돌 했던 이야기를 에세이로 적어도 재밌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내일 마지막 수업에 가져갈 책의 콘셉트를 완성하고 일러스트를 그린 후, 한 꼭지 정도의 에세이를 완성했다.
마지막 수업은 모두가 들뜬 왁자지껄한 시간이었다. 지난 10주간 우리는 정말 열정적으로 임했고, 이번 기수의 수업 분위기도 좋아서 우리 수업에서 완성된 가제본은 4권이나 되었다.
"우와. 이번 수업은 정말 역대급이네요. 모두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해요."
감동한 소라빵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의 가제본을 살펴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비록 내 가제본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을 가지고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듣는 게 정말 재밌고 유익했다. 우리 수업에는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수강생분들도 있었는데, 마지막 날 나는 이분들께도 소중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음... 제 생각에는 책의 사진이 이런 퀄리티 라면 빼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사진 중에 일부는 괜찮은데... 여기 화질 낮은 사진들은 일단 빼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사진을 넣으려면 전체적인 색감을 통일시키는 게 좋아요."
"저는 사실 지금 만드신 가제본도 느낌이 괜찮거든요... 이런 책이 많이 없으니까 한 번 계속 작업해서 완성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이분들의 피드백을 듣고 어제 새로 쓴 원고를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생각을 좀 해보았는데... 저는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했어요. 제가 어제 한 번 써봤는데 어떤지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두 분께 어제 쓴 에세이 원고를 내밀었다.
"저는 이게 더 나은 것 같은데요? 읽기 편하고 일러스트도 심플하고..."
"저는 앞의 표지는 좀 너무 정신없기도 하고 좀 별로인 것 같아요. 표지만 바꾸면 꽤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요..."
표지에는 내가 어제 완성한 김 작가 캐릭터가 있었다. 아마 김작가 캐릭터는 나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 였나보다.. 여기저기 다니시던 소라빵 선생님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다가오셨다.
"용희 님, 어제 제가 드린 피드백을 듣고 오늘 바로 만들어 오신 거예요?"
"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 좀 빠르게 해 보았어요."
나는 선생님께 원고를 내밀었다. 소라빵 선생님은 천천히 내 원고를 살펴보신 후 말씀하셨다.
"용희 님, 저는 이게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이 원고를 한번 완성해 보세요."
그렇게 10주간의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업은 끝이 났고 분주하게 돌아가던 나의 월요일도 한가해졌다.늘상가던 도서관에 가지 않으니, 뭔가 허전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 뭐. 이 시간에 글을 더 쓰면 되지.'
나는 차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고요히 있자니 생각도 차츰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일단 지난번은 책의 목차와 콘셉트가 있었지만, 책을 만들다가 기획 의도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생각과는 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새로 쓰는 책은 목차를 먼저 정하고 철저하게 지키면서 일관된 글을 먼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디자인은 가장 나중에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비록 가제본이었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본 경험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무엇보다 글 작가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것. 정말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뼈 때리는 교훈이 되었다. 막상 책을 만들어 보니 하나하나의 글이 톡톡 튀면서 재밌을 수는 있지만 책 전체가 일관된 문체를 가지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느낌을 만들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필력(筆力)'이 아닐까? 아마 나는 지금부터 꾸준히 글을 쓰면서 필력을 늘려가야 진정한 작가가 될 것 같다.
'그래. 모든 경험이 부족한데 어떻게 완벽한 책을 만들 수 있겠어?'
나는 비록 10주간의 여정에서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라 그냥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던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수업에서 다시 콘셉트를 정리하고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보니 마음이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지...'
내 가제본도 다시 찬찬히 뜯어보니 정말 열심히 해준 과거의 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안 해 봤으니까, 사진도 넣어보고 일러스트도 넣어보고 시도 넣어보고 그랬던 건데... 무엇이 안 되는 건지 알게 된 사실만으로도 배움은 얻은 것이고 앞으로 또 새로운 책을 만들어 가면 되는 거니까... 자신을 너무 밀어붙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시도는 아름다운 것. 지구는 행동하는 별>
나는 가제본의 첫 장을 열어 손 글씨로 몇 자 적었다.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작가들은 가제본의 자신을 느낌을 적어 놓는다던데, 나중에 다시 보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미래에 작가로 데뷔한 뒤에 이 가제본을 보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지금 느낌을 더 적어보기로 했다.
'가제본을 만들며 느끼게 된 것은 책이 안 예쁘게 나왔다고 해서 그리 좌절할 필요도 없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너무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앞으로 계속 책을 만들게 되면 스스로 지치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주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했어. 김 작가. 다시 처음부터 잘해보자.'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한글 파일을 열고, 새로운 책 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