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자기표현이 중요하다. 하지만 운동은 예술과는 다르게 기본기가 중요하고, 규칙을 익히는 게 중요해서 모든 운동을 처음 접할 때 예술보다는 좀 더 각 잡히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주짓수는 기본기도 있지만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고 응용하는 것들이 다른 운동보다는 좀 더 허용되는 것 같아서 개성을 존중하고 자기표현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평소 나는 무술은 엄격하고 진지하고 근엄하며, 고정화된 뭔가가 많은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주짓수만의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술 초보인 내가 보기에 도복에 패치를 붙여서 자신만의 커스텀 도복을 만드는 건 좀 신기하고 획기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예쁜 도복 입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도복 꾸미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승마할 때는 관심도 없던 복장이었는데, 주짓수에서는 왜 이렇게 관심이 생기는 걸까? 승마는 말이 멋지면 되지만, 주짓수는 내가 멋져야 해서 그런 걸지도..?
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름을 나기엔 도장에 등록할 때 받은 도복 하나로는 좀 부족하니까 나도 도복 한 벌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사람들의 도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리 도장에는 파란색, 검은색, 흰색 도복이 가장 많고, 가끔 카키색, 짙은 남색, 회색 도복을 입으신 분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개성 있는 패치가 붙어있는 도복도 눈에 띄었는데, 관장님은 호돌이가 그려진 도복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고, 예쁜 나루토 도복도 있으셨다.
얼마 전, 어떤 여성 회원분은 주술회전 도복을 구매하셨다고 했다. 나는 관장님의 나루토 도복과 그분의 주술회전 도복을 보다가 주짓수하시는 분들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들 하셨다.
이제 막 주짓수에 입문했는데 처음부터 좋은 도복을 사는 건 좀 사치 같았던 나는 입문용으로 쓸 수 있는 저렴하지만, 예쁜 도복을 한 벌 구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도복 어때요?"
도복을 구매하려고 해외 직구 사이트를 기웃거리던 나는 가장 저렴해 보이는 도복을 사려고 여성 회원분께 보여드렸다. 그분 말씀은 해외직구 사이트에서 저렴한 도복을 잘 못 사게 되면 새것이라도 스파링하다가 찢어져서 창피를 당할 수 있다고 하셨다.
"헐"
나는 스파링 하다가 옷이 찢어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도복은 정말 잘 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여성 회원분께 조언을 받아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검은색 도복을 한 벌 구매했다.
"원하시면 새로 사신 도복에 패치를 붙여도 좋아요.
"아, 그렇군요."
여성 회원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도복 꾸미기가 마치 다이어리 꾸미기 같은 건가 싶어서 도전하고 싶어졌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좀 막막했다.
"패치는 너무 작으면 도복에 달기 힘들고, 재봉으로 붙일 수 있는 걸 사셔야 해요. 접착식은 안되고요."
우리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저는 저번에 카키색 도복에 그루트 패치 붙였었는데, 그거 예뻤어요."
여성 회원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그분의 그루트 도복은 보지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색감이 세련되고 특이하고 예쁠 것 같았다.
"저... 그런데 그루트 패치 어디서 구해요? 사려면 어렵지 않아요?"
나는 패치를 검색하니, 예쁜 게 많이 나오지 않아서 잘 못 붙였다가 괜히 도복만 더 촌스러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여성 회원분께 물었다.
"네. 아주 많이 검색하셔야 해요."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패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주짓수 패치를 검색해 보니, 다소 특이하고 강한 느낌의 해외 패치들만 많이 나오고 아기자기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검색하는 나를 보며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다른 회원분들 보면 특이하고 예쁜 패치를 많이 다셨거든요. 다른 분들 도복 참고하시면 될 거예요."
회원분들이 붙인 패치는 다양하고 예쁜 게 많았는데 '코크'라고 쓰여 있어서 콜라 상표인 줄 알고 자세히 보면, '초크'라고 쓰여있는 패치도 있었고, 동양적인 학 무늬가 새겨진 패치, 브라질리언 주짓수라고 쓰여 있는 패치 등 주짓수와 어울리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마음껏 표현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뭐가 있었지?'
도복에 패치를 붙이는 건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인데, 나는 주짓수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기에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저기 회원분들 등 뒤에 동그랗고 커다란 패치는 뭐예요?"
회원분들이 하나씩 달고 있는 검정색과 은색 실로 새겨진 패치를 가리키며 여성 회원분께 물었다.
"우리 체육관 마크인데요. 하르방 마크도 있고, 저 마크도 있어요. 저 패치는 관장님께 구매하시면 돼요."
나는 다른 캐릭터 패치들은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우리 체육관 패치를 하나 구매하기로 했다.
'앗. 그런데 이걸 어느 위치에 달지?'
막상 받아 든 패치를 보니, 도복 어디에 달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다른 회원들을 보니, 오른쪽 어깨 위, 왼쪽 옆구리 등 다양한 위치에 체육관 패치를 달고, 주변을 예쁘게 꾸몄다. 나는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체육관 패치를 등 뒤 가운데에 달기엔 너무 정직한 주짓수 초보 같은 느낌이 들었고, 어깨 위나 왼쪽 옆구리에 달기엔 실력에 비해 너무 건방져 보이는 주짓수 초보 같은 느낌이었다.
'으아, 너무 어려워.'
결국 나는 고민만 하다가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패치는 책장에 잘 진열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