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평화롭던 어느 날 육지에서 체육관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주짓수에는 재밌는 문화가 있는데, 원하면 자신이 놀러 간 지역 체육관에 가서 함께 수련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회원들에게 그게 '도장 깨기' 같은 건지를 물었는데, 주짓수에서는 그런 용어는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늘 오신 손님은 검은 도복에 커트 머리 여자분이었는데, 흰띠를 매고 있었다. 흰띠라고 해서 어쨌든 같은 흰띠가 아니었고, 그분은 그랄이 몇 개 정도 있는 것 같았다. 신입회원인 나는 처음에 이분도 우리 체육관 회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타 지역에서 온 손님이라고 하셨다.
어쨌든 나는 오늘 이 분과 짝꿍이 되어 주짓수를 배웠다. 어차피 나는 내가 지금 뭘 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여서 관장님이 가르쳐 주시는 동작을 따라 하기도 급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는 딱히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 우리는 관장님께 상대방의 방어를 뚫고 유리한 포지션을 점유하는 '크로스그립 패스'라는 걸 배웠다. 우리가 배운 건 한 명이 매트에 등을 대고 가드 자세를 취하면, 다른 한 명은 서 있다가 상대의 오른쪽 발목을 잡고, 자신의 왼쪽 발목으로 상대의 오른쪽 발목을 누르고, 허벅지를 압박한 뒤, 상대의 오른쪽 옷의 깃을 잡고 자신의 무게로 상대를 압박하여 상대의 오른쪽 옆구리를 제압하는 동작이었다. 방향은 본인이 편한 쪽으로 상황에 맞게 왼쪽으로 해도 된다.
내가 먼저 매트에서 가드 자세를 취했고, 상대방분이 패스를 하기로 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먼저 깔리기로 한 것인데, 그분이 내 오른쪽 바지 깃을 잡고 정강이를 누르자마자 통증이 싸하게 느껴졌다.
'아... 이렇게까지 아프게 운동하려고 주짓수에 온 건 아닌데...'
잡히자마자 내 정강이는 그분의 손등뼈로 이미 멍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원래 주짓수는 연습도 실전처럼 하는 건가?'
생각하면서 다음 동작을 기다리는 데, 그분의 발목이 내 오른 발목을 누르자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무 나약한 건지, 운동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이것도 못 참는 건지, 다 같이 운동하고 있는 체육관에서 아프다고 말해도 될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일단은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겠거니 하고 그냥 참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아프게 깔리던 나는 드디어 용기를 내서 한마디 했다.
"아파요..."
말하면서도 나는 좀 부끄럽기도 했고 스스로가 너무 나약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파요."라는 말을 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기에 이것도 수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운동하다가 어이없이 부상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 후로도 그분은 몇 번 더 아프게 하다가, 내가 계속 아프다고 하니까 드디어 멈추셨다.
"저기 그러면 제가 동작만 해볼게요."
나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웠고, 그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관장님께 들은 바로는 눈치 보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면 된다고 하셨다.
사람들마다 통증의 강도는 다르고 몸을 다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서 주짓수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배려와 존중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주짓수는 운동하면서 자신의 몸 컨디션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게 되어 왠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