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간이 지나 기본기 수련을 마친 나는 스파링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파링은 실력을 증진하기 위한 '연습 시합'을 말하는 데, 주짓수에서는 한 명의 파트너와 1세트 당 6분간 진행된다. 우리 체육관에서는 준비 운동 후 기술 수업을 듣고, 수업 종료 20분가량이 남 있을 때 2세트 정도 스파링을 하고 수업이 끝난다.
처음 스파링한 날 나는 블루벨트인 고등학생 친구와 만났다. 스파링 할 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관장님께서는 "뭘 하시든 이 친구 배에 올라타면 이기는 거예요." 하셨다. 그 친구는 바닥에 누워 가드자세를 취했고 내가 공격하기로 했는데,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가끔 그 친구의 도복 바지를 잡았는데 그 친구는 새우 빼기나 뒤구르기로 가볍게 피했고 나는 그 친구 기본기 동작 수련만 해주고 끝났다.
다음 날엔 화이트 벨트 3 그랄인 고등학생 친구와 만났다. 그 친구는 어제 만난 친구 보단 힘이 더 세 보여서 잡히면 못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더 빠르게 도망 다녔고, 어쩌다 그 친구에게 걸리면 스프링 튀듯이 폴짝 뛰어서 빠져나갔다. 그날도 나는 그 친구 기본기 동작 수련을 해주고 끝났다.
그 다음날 나는 태권도를 오래 했다는 화이트 벨트 4 그랄 고등학생 친구와 만났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짓수 하시는 분들은 태권도나 유도, 복싱, 수영, 크로스핏 등 대부분 다른 운동을 오래 하신 분들이 많았다.
'아,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나는 승마를 조금 했는데, 왠지 주짓수 체육관에서 승마는 너무 약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땐 괜찮았는데, 다른 분들의 출신 운동을 듣고 보니, 하체를 더 빠르게 써서 안 잡히고 잘 도망가는 방법 밖엔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 보였고, 정글에서 살아남는 초식동물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주짓수가 아닌 도망 주짓수, 즉 발짓수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