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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Apr 09. 2020

2020년 봄의 고난과 행복

요즘은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많다. 소위 말하는 '꼰대' 아저씨들 때문이다. 그들이 막 내뱉는 말들이 쉽게 나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생각한다. 하지만, 요가 매트 위에서, 영화를 보다가, 자려고 누웠을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기억들은 생각보다 쉽게 마음의 안정에 금을 내어버린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시국이 빚어낸, 재택근무라는 특이한 상황 때문에, 아침 출근 시간마다 출근 대신 출첵을 하고 있다. 출석 체크가 아닌 '출근 체크'.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춰 노트북 카메라를 켜고, 업무 시간이 되면 팀 단위로 화상통화를 시작한다. 주로 팀장의 일방적인 전달사항을 듣는 것이 대부분이고, 간단하게 '혹시 코로나 증상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팀원들이 돌아가며 보고를 하며 끝이 난다. 짧게는 삼 분, 길어야 칠 분만에 끝나는, 그야 말로 '출근 체크'다. 


영양가 없는 업무지시와 협박조 섞인 평가를 들으며 주간 회의가 진행된다. 역시나 대부분의 회의 참가자들은 일방적으로 듣고 있는 것이 기본이고, '고나리질'을 당하는 당사자는 형식적인 "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주의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나는 마이크를 음소거 해놓았다. '어떻게 하면 이 회사를 떠나 경제적으로 자유로우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제로 몽상에 빠져든다.


이런 칙칙한 일과가 반복되는 생활 속에도 필연적으로 확실한 행복과 기쁨은 존재한다.

가령, 하루 전 날 만들어둔 티라미수를 커피와 함께 먹을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단 맛과 쓴 맛의 밸런스라든가, 업무 시간 20분을 땡땡이 치고 하는 요가라든가 (이 때 요가를 집중력 있게 잘 해서 관자놀이에 땀까지 맺히면 금상첨화다), 저녁을 먹고 더 이상 춥지 않은 저녁 산책을 남편과 팔짱을 끼고 나가는 기분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최근 하나 더 추가된 기쁨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간 이슬아>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유명해진, 주 5회 한 편의 글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이슬아 작가의 글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글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마음이 또렷한 설렘을 준다. 물론 그 글은 때로 웃기고 때로 뭉클해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작은 기쁨이 이슬아 작가의 글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재작년 이맘 때 쯤, <일간 이슬아>라는 매체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이슬아 작가가 주로 SNS를 통해 본인의 작업을 홍보하는 만큼, 역시나 나도 지인의 SNS를 통해 이슬아 작가의 존재와 그의 연재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의 글을 구독하고 이전 원고들을 읽으며 신선한 감동을 받은 나는 친구 세 명에게 그의 원고를 무단 배포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자리를 빌어 작가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내가 구입한 책을 친구에게 빌려주는 느낌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작권 침해다.) 그 중의 한 친구가 '정'이다. 정은 역시나 내가 보내준 이슬아 작가의 글을 매우 좋아해주었고, 나는 전달자로서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몇 주 전, 정에게서 오랜만에 온 연락.

  > 우리 혀나 슬아 봄호 신청했니?

  > 안했으면 내가 선물해주고 시푼데 어떠니?


나는 잠깐동안 충격에 빠졌다.


친구란 뭘까... 

이런 선물은, 애인에게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낭만적이라고 해야 할까. 사려깊다고 해야 할까. 비슷한 취향과 성향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일 하다 잠깐 쉬는 시간에, 혹은 퇴근 후 침대에 엎드려서, 휴대폰으로 SNS를 하다 이슬아 작가의 포스트를 보고 나를 떠올려주었을 정이 그려졌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끔 깜빡하지만,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상기되면서 나무가지에 돋은 새순마냥 기분이 새로웠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물질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이메일 구독'이라는 형태의, 물성이 없는 또 다른 어떤 것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웠다. 손편지 같은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이메일이라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진한 감정의 교류가 오갈 수 있는 것이었다. 잊고 있었지만 이메일은 한 때 나에게도 꽤 소중한 사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이슬아 작가는 보통 한국 시간으로 그 날의 자정쯤에 글을 보내오기 때문에, 내가 있는 미국 동부 시간으로는 오전 11시 전후에 이메일을 받는다. 오전의 화상통화로 침울해진 기분을 다시 들뜨게 하는 기다림의 감정은 아침밥을 챙겨먹는 일 보다도 소중하다. 매일매일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이슬아 작가와 나의 친구 정에게 봄볕같은 감사함을 전한다. 나도 다른 친구에게 매일의 소소한 기쁨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면서.



+

다 쓰고 보니... 이전 글과 너무나 비슷한 내용의 글이 되었다. 

친구들 한 명씩 돌려가며 찬양하기. 흐흐흐.

너무 똑같은 레퍼토리인 것 같긴 하지만, 진심이므로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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