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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동기 내 친구.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야.

by 소소러브


인관관계가 그리 넓지 않은 나에게도 20년지기 절친이 있다. 그 아이와는 입사 동기이자 연수원 동기로 처음 만났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치고 드디어 교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지 얼마지나지 않아 40일간의 초임교사 연수가 시작되었더랬다. 생각해보면 꿈도 많고 생기발랄하던 그 시절, 누구와도 쉽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귀는 것도 힘들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자리가 고정석이었는지, 아니면 늘 비슷한 자리에 앉게 되는 인간적 습성 때문이었는지 그 아이는 늘 내 앞줄에 앉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는 수업에도 얼마나 집중해서 듣는지, 그 아이의 뒤통수와 허리는 늘 미동도 없이 꼿꼿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우리 도에서 임용고시 수석을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강의만 열심히 듣는 게 아니었다. 질문을 얼마나 예리하게 하는지, 저 사람은 참 특별하구나 느꼈다.


하루는 야외 강의가 있던 날이었다.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초등교사 특성상 그 지역의 유적지를 찾아가 탐방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그때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관찰하고 왔던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미처 보지 못했던지 그 친구도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는지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가 먼저 나에게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세상에. 너도 이 동네 살아?

나도! 반갑다. 우리 동네에서 오며가며 자주 보자.”

수석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그 아이는 참으로 순수하고 쾌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맑았다.

나중에 그 친구가 말하길


“너도 다른 사람들이랑 좀 달랐어. 항상 눈이 반짝 반짝 빛났거든. 그런 사람은 흔치 않아.”


그 친구가 해준 말에 내가 마치 특별한 사람이라도 되는양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 친구란 참 좋은 것이었다. 타지역에서 와서 이제 막 결혼한 언니네 신혼집에 더부살이로 있던 나에게 그 친구와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다. 우리는 함께 둘만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토익 공부를 하기도 하고 함께 방통대 영문학과에 편입하기도 했다. 함께 40일간 배낭 메고 호주 여행도 함께 했다. 20대 초반에 인도 여행까지 다녀왔던 여행 베테랑인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그건 나에게 첫 해외여행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변변한 국내여행 조차 제대로 가 본적 없는 나에게 40일간의 호주여행은, 게다가 배낭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더랬다.


대학가 근처 카페에서 만나 다이어리를 펼쳐 5년 후, 10년 후를 계획하고 그려보던 그때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녀도 나도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 했다. 결국 우리는 같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비록 과는 달랐지만 말이다. 석사과정을 마치자마자 나는 더 이상의 학위 대신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식에서 평소의 배구하던 실력을 살려 내 부케를 단번에 낚아챘던 그 아이는 이어서 박사 코스에 진학했다. 부케의 위력이었던지 그해에 친구도 곧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며 10년만에야 그 힘들다는 박사 코스를 마치게 되었다.


친구는 지금은 교사를 하면서 두 대학교에 출강을 하는 강사가 되었다. 언젠가는 자기만의 연구실을 가지고 정식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그 와중에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 연구자로서의 삶과 생활자로서의 삶, 둘 다 놓지지 않는 대단한 재주꾼이다. 지난 여름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 여행도 갔더랬다. 이미 부모님께서 70줄에 들어서셨고, 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신지 3년이 되셨다던가. 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부모님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웬만해선 힘들다는 얘기도 잘 안하는 친구지만 여행에서 다녀온 후 이번 여행이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웃으며 대답했다.

“휴~~진짜 힘들었다. 두 아이에 부모님까지.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시더라.”

친구의 말에 울컥했지만 그 힘든 일을 다 감당하고 무사귀환해준 것 만해도 너무나 감사했다.

나에게 늘 롤모델이 되어주는 자랑 스런 내 친구가 있어서 좋다. 좋은 일이 있으면 시기, 질투 같은 감정 하나 없이 그저 축하해 줄 수 있는 서로가 있어서 행복하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꼭 필요하다던가. 친구로 인해 삶은 더 행복해지고 풍요로워짐은 틀림없는 명제인 듯 하다.


우리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히
친구로 남자.
사랑한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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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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