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러브 May 13. 2024

근로자의 날은 가족과 함께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요즘에는 근로자의 날에 학교장 재량휴업일을 하는 학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두 아이 모두 학교가 쉬고 남편도 회사를 하루 쉬는 바람에 마치 공휴일처럼 느껴졌다. 다만 큰아이는 중간고사 기간이라 아침식사를 하자마자 스터디 카페로 갔다.      


원래 매주 수요일은 도서관에서 요가 수업을 아침마다 받는다. 필라테스 센터에서 하는 요가 선생님과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면서도 차분한 수업이 마음에 들어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공휴일처럼 되어버린 날, 나 혼자 운동하러 가기가 뭐했다. 그래서 오랫만에 코에 바람을 넣고 싶어하는 아들을 위해 천리포 수목원으로 향했다.  

    

천리포 수목원은 부지가 넓고 바다를 옆에 끼고 있는데다 세계의 다양한 수목들을 심어 놓아서 봄에 가면 참 아름답다. 복직 전에 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자, 그리고 내년 봄에는 복직 후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정신없이 흘러갈 나날들에 와보지 못할 공산이 많을 듯하여 이곳으로 가족 나들이 장소를 정한 것이다.  

    

태안 안면도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은 고 민병갈 선생님께서 가꾸신 개인 수목원이다. 민병갈 선생님의 원래 이름은 ‘칼’이며 파란 눈의 미국인 출신이다. (그의 한국인 이름이 조금은 생소한 ‘병갈’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는 한국전쟁때 한국으로 파병된 군인이었다가 전쟁이 끝나자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군대를 자원해서 한국에 미군으로 머물렀다. 자신이 전생에 한국인이었다고 자주 말 할만큼 그는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부터 한국 문화와 풍경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 그는 나중에는 귀화하여 진짜 한국인이 되었고 우리에게 이 아름다운 유산을 남겨주었다.     

     


벗꽃과 목련은 진작에 다 졌지만 다행히 겹벗꽃이 아주 예쁘고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처음 이름을 들어보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 그 향기들은 힐링 그 자체였다. 봄이 거의 끝난 무렵이어서 그랬는지 사람도 많지 않아 한산해서 더욱 좋았다.

               

남편과 아들은 수목원 안에 도착하자 마자 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 한 카페에 들러서 딸기라떼를 주문해 야외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보는 초등학생한테 맞춰주는거야 아니면 여보의 정신세계가 초등학생 인거야?!"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새 옆의 풀이름을 빗대어 또다시 초등학생 5-6학년이 할 만한 농담을 친다.      

아들이 웃으며      

"그냥 초등학생 정신세계인걸로."       

        


바닷가를 낀 산책로를 걸으며 이 곳이 마치 외국 어느 곳인듯한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근처에 있는 좋은 곳들을 둘러보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하게 되는 여행의 패턴이자 묘미인 것 같다. 이제 이동시간이 긴 여행은 체력에 부친다. 그저 근처에 좋은 곳, 근처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파리의 샹젤리제를 걷는 것보다 더 달콤하다. 시차를 견딜 필요도, 저렴하고도 합리적인 비행기 시간대를 찾아 눈이 빠져라 괜찮은 항공권을 구입할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드는 숙소를 살펴보며 비교분석 할 필요도, 후기를 샅샅이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반나절이나 한나절 훌쩍 바람 쐬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장소, 그걸로면 족하다.                

수목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는 다양한 식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꽤 합리적인 금액의 다양한 화분들이 있었고, 파리지옥같은 독특한 식물도 있었다. 파리지옥이란 식물은 책에서나 보았지 실제로는 처음 보았는데, 아이가 얇은 종이를 잎 사이에 집어넣자 입이 확 오므라졌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만 보던 장면을 실제로 볼 줄이야. 마치 눈이 달린 듯한 식물의 영민함과 영리함에 깜짝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는 배고픔을 조금 참고 집 근처로 와서 평소 우리가 좋아하던 한정식 식당으로 갔다. 역시 언제 먹어도 풍성하고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집에 돌아온 안도감과 함께 허기짐에 그릇들을 싹싹 비웠다. 근로자도 아닌 내가 근로자의 날 덕분에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

이전 10화 누수라는 죄목(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