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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May 04. 2024

누수라는 죄목

누가 죄인인가.

'누수'라는게 이렇게나 골치 아픈 일인줄 미처 몰랐다. 아니, 너무 까마득해서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았던 것이다.


금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서 동화쓰기 수업을 받는 날이다. 그 날은 수업을 시작한지 6번 만에 동화를 한 편 써와서 합평을 하는 날이었다. 처음 시작한 12명의 멤버 중 단 6명만이 참석했다. 더 놀라운 건 동화를 써 온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성실의 아이콘(?)으로 살아온 인생으로서 숙제를 안 한다는 건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뭔가를 특출나게 잘하지는 못해도, 꾸역꾸역 약속되어 있는 일들은 꽤 잘 해내는 스타일의 인간인 것이다.  

    

숙제를 나 혼자 해왔다는 것은 합평을 받을 대상이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즉, 가장 성실하게 글을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글이 분해되고 비판받고 지적의 대상이 되어 멘탈이 공중에 산산이 흩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나는 '합평'이라는 것을 책에서 문자로나 보았지 실제로 받아본 적은 아직 없단 말이다.     

사실 동화 쓰기 수업을 시작한 것도 합평을 받아보고 싶어서였다. 수필에 대한 합평을 받아보고 싶어 도서관 강좌를 살펴보았지만 수필 글쓰기 수업은 없었다. 대신 동화 쓰기 수업이 있었고, 수업 내용란에 '합평을 한다'는 설명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럼 여기 가서라도 합평이라는 걸 한번 받아보자고 시작한 수업이 동화쓰기 수업이었다.     


강사 선생님은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신 분이셨다. 매주 신춘문예 동화 한편을 나누어 주시고, 그 글을 함께 읽고 그 글에 대한 느낌과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나누었다. 신춘문예 당선동화를 읽어본 것 역시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상작들은 소재, 주제, 구성 방식 등이 다양했고 그러한 것들은 동화창작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되어 주었다.     


어쨌든 성실함에 대한 대가로(?) 유일하게 합평을 받게 되었다. 술술 읽히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이 많았으나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아쉬운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주셨다. 제목을 다른 것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첫 문장이 좀 더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사건은 좀 더 자세히 그려졌으면 좋겠다.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그 부분은 내용의 추가가 필요하겠다 등이었다. 친절하고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는 내 원고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다 타이핑 해오셨다. 원고지 분량만큼의 수정 내용이 보이는 듯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도 모르게 조금씩 멘탈과 체력이 동시에 탈탈 털리고 있는데, 잠시 여유시간이 주어져서 혹시 그 사이에 무슨 중요한 연락이라도 왔나싶어 핸드폰을 살짝 보았더랬다. 난데없이 관리 사무소에서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카톡이 이어져 있었다.         

 

"아랫집에서 물이 샜대. 수업 끝나면 연락줘."     


햐... 난국도 이런 난국이 없구나. 순간 사면초가의 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글쓰기에 대한 화살과 칼을  잘 받아내고, 때로는 막아내면서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급한대로 일단 글쓰기 단톡방 동기들에게 여차저차 하다고 누수에 대해  물어보니 누수는 빨리 잡아야 덜 번지고 규모가 커지지 않으니 얼른 처리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씽크대, 화장실, 보일러,세탁기 같은 곳에서 물이 새는 경우가 많다는 중요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자신도 모르게 보험의 특약으로 들어져 있으니 그 부분도 확인해 보라는 꿀팁도 있었다.      


누수에 대한 것은 이제 시작이었다.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드렸더니 관리사 아저씨께서는 씽크대에서 새는 거면 본인들이 보면 바로 아는데, 오늘은 행사가 있어서 방문이 어렵겠다고 하셨다. 게다가 내가 너무 늦게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월요일에 다시 전화를 달라고 하셨다. 일단 관리사무소 여직원분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랫집 주인분인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아랫집 사모님께서 6시 이후에야 집에 돌아오신다고 하셨기때문에 그분이 집에 돌아오시면 먼저 가서 상황을 살피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였다. 주말을 지나 월요일에나 들른다면 고의는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너무 늦은 사과와 방문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2편에서 계속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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