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이남자랑 오래도 살았다 싶다. 마음으로는 한 10년쯤 산 것 같은데 말이다. 하기야 남편이 34살 되던해에, 내가 이십대 후반이던 12월에 우리가 처음 만났고 그 다음 해 봄에 결혼 했는데 지금은 남편이 벌써 50대 초반이 되었고 나 역시 마흔줄에 접어든지 꽤 되었다. 세월이 이렇게나 빠르구나.
돌아가신 아빠랑 같이 산 햇수가 21년 정도 되었으니 몇년만 더 지나면 부모님과 산 기간만큼 남편이랑 산 셈이 된다. 내일 시간 좀 비워줄 수 있냐는 남편의 갑작스런 물음에
"왜? 나 뭐 잘못한거 있어?" 하며 토끼눈을 떴더랬는데 다음날이 바로 식목일이자 우리의 결혼 기념일인 것이었다. 남들은 나무를 심던 날 우리는 '영원을 위한 결혼의 시작'을 심었더랬다.
차로 20분 정도 달려 한적한 숲길을 지나 저수지를 마주한 멋진 한옥 식당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생각해보니 이 남자와 함께 처음 밥을 먹은 것도 기와가 있는 한옥집에서였다. 대구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급히 달려서 들어간 곳이 비빔밥집이었다. 비빔밥이라는 것이 보통은 한 그릇에 밥과 나물이 함께 담겨져 나오는데, 그 곳은 특이하게도 나물이 커다란 쟁반 위에 따로 담겨져 나왔다. 길고 가는 섬세한 손가락으로 젓가락질하여 밥 위에 나물들을 예쁘게 담길래 무슨 남자가 저렇게도 손가락이 길며, 저렇게나 예쁘게도 나물을 담나 싶어 본능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곤 그 사람의 젓가락질이 끝나면 나도 저렇게 예쁘게 그릇에 나물을 담야야지 싶었다. 그런데 그가 부지런히 먹음직스럽게 담은 비빔밥 그릇을 내 앞에 내미는 거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 그릇을 예쁘게 담아냈다.
정갈하게 한 쟁반에 담아 나온 반찬들을 보며 그날의 일이 문득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갑자기 내린 빗줄기 때문에 우리 둘은 달렸고 우연히 기왓집으로 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이 남자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하다니. 이건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살아보니 어때? 나랑 살만해?"
느닷없이 남편이 물었다.
"응 이제 여보를 좀 알것 같아."
"나는 아직 여보를 잘 모르겠어."
"잘됐네. 그런 신비로움과 궁금증을 안고 앞으로도 쭉 살면 되겠다."
중학교 2학년때라던가 3학년때라던가. 오랜 병환으로 어릴 때 어머님과 이별을 했던 남편은 엄마하고 산 기간보다 나와 산 기억이 더 많다고 했다. 어릴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건 좀 슬픈 말이기도 했다. 늘 너무도 일찍 엄마를 여의고 자란 이 남자가 안스러웠다. 물론 서운한 일이 있거나 다투는 일이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못해서 탈이지만 말이다.
남편이 나란 사람을 통해 여자의 세계를 인식하고 여자와의 시간을 쌓아간다고 생각하면 뭔가 기분이 묘해진다. 남편에게 좋은 여자로, 좋은 아내로 지혜로운 엄마로 평생을 옆에서 함께하고 싶다.
차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꽃을 사주고 싶은데 여보가 요새 꽃병 물 가는 것도 힘들어 하니까 화분 몇개 사러 가자. 여보 식물 보는거 좋아하잖아."
"아니야. 요새 내가 너무 식물을 죽여서 내보내서 집에 있는 것만 잘 키울래."
하지만 웬걸.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초등학생 6학년 아들의 손에 이미 화분이 들려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라벤더로 골랐다며 씨익 웃었다.
"엄마, 잉그리쉬 라벤더야. 냄새 한번 맡아봐. 엄마 라벤더 향 좋아하잖아."
화분을 사오느라 학원차도 안 타고 오늘은 걸어왔다는 아들의 말에 두배로 행복해진 결기(결혼기념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