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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Apr 23. 2024

쓸모 있음의 쓸모 없음 만들기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지 17년쯤 된 곳이다. 처음  이 곳에 집을 보러 왔을 때  내부구조도 좋았고 우리 네 가족이 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교통편도 좋고 근처에 있는 초중고까지 모두 다 걸어서 갈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조경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마음에 쏙 들었더랬다. 나무도 꽃도 풍성했고 정성들여 가꾼 티가 났다. 우리는 며칠만에 이 집을 계약했고 이사온지 8년이 다 되어 가도록 늙어서도 이집에 살자 할 정도로 집에 정을 가졌더랬다.


그런데 벗꽃이 한참 절정을 달려갈 즈음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엄마 눈감고 일로 따라 와봐."

하면서 현관 입구로 나를 끌고 가는 거였다. 무슨 일이지 싶어 눈을 감고 순순히 따라갔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이게 뭐야?


"아저씨들이 나무 자르고 있더라고. 너무 아까워서 내가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엄마 보라고 가져왔어. 너무 예쁜데 너무 아깝잖아."


그야말로 이제 꽃을 피우려는 연분홍빛의 벗꽃이 가지째로 커다랗게 댕강 잘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너무 예뻤다.


"아니 이렇게 예쁜데, 이제 벗꽃 시작인데 이걸 왜 하필 지금 자르기 시작하는거야? 꼭 잘라야하면 벗꽃 시즌 좀 끝나면 자르지."


안되겠다 싶어 자초지종을 살펴보려 밖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꽤 많은 벗꽃과 사철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왜 자르는 거에요. 꼭 잘라야 하는거에요?"


"나한테 그러지 말고 관리 사무실에 말해요. 나는 아무 권한이 없고 일하러 온 사람이니까요."


안되겠다 싶어 평소 인사하며 지내던 관리사무소 분께 전화를 드렸다. 정중히 인사를 드린 후 지금 이 나무들을 꼭 잘라야 하냐고 부드럽게 여쭈었다. 그랬더니 7년만에 자르는 것이고 이번에 꼭 잘라야 하는 것이니 어쩔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길, 이미 벗꽃은 다 져서 초록 잎이 흔들린다. 그런데 그 옆에 보니 가을이면 참으로 예뻤던 단풍나무도 가지를 다 잘라 놓았다.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든 단풍이 얼마나 예술이었는데. 올해부터 당분간 그것까지 못 볼 생각을 하니 이내 섭섭해졌다.


쓸모 있음과 쓸모 없어짐의 차이는 참 간발이구나. 누군가에겐 참 쓸모 있고 좋은 일들이 다른 이에게는 쓸모 없음 혹은 불필요한 일로만 여겨지고, 그로 인해 쓸모 있음은 한순간에 쓸모 없음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면 10년은 더 이곳에서 살아야 볼 수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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