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께 전화를 드려 댁에 도착하시면 전화 한통 주십사 말씀을 드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전화가 오자마자 댁으로 내려가 살펴보니 부엌 쪽 천장이 가로 1m 정도로 젖어 있었다. 나는 물이 새는 줄 몰랐다며 머리를 조아려 먼저 사과를 드렸다. 그리고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파트 행사로 인해 월요일에나 되어야 방문을 할 것이며, 씽크대 쪽이 아닐 것을 대비해 누수업자와도 월요일에 약속을 미리 잡아놓았노라고 말씀드렸다. 누수업자는 누수의 원인은 셀 수 없이 다양하며 누수를 잡는데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으며, 누수 탐지 결과 그저 아파트의 노후 때문이어서 딱히 해결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는 말씀도 전해드렸다.
실제로 내가 이전 아파트에 살 때 누수가 되어서 윗집으로 가서 상황을 말씀을 드렸었더랬는데, 본인 집은 아무 이상이 없다며 누수업자도 불러줄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피해자인 내가 30만원을 들여 누수업자를 불러 누수탐지를 했고 누수업자는 결론적으로 아파트 노후로 인한 결로 현상이라고 하셨다. 사모님께 그 이야기도 더불어 말씀드렸다. 내 선에서 누수를 잡기 위해 최선을 해보겠지만 그런 결론이 날수도 있음을 미리 언질을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사모님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언찮아하시는 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주말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려고 누웠는데도 이 일을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기다렸다가 9시가 되자마자 관리 사무실로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대뜸
"오늘은 월요일이라 바쁜데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아랫집에서 주말 사이에 천장에 물이 더 번져서 아침부터 관리 사무실로 찾아왔다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조금 단호한 어조로 오셔서 5분의 시간 정도면 살펴보실 수 있을텐데 물이 자꾸 번진다면서 언제오실지 모르겠다고 하시면 어쩌냐 잠시 시간을 내어 아침에 방문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전화를 끊고 10분 후에 남자분인 아파트 관리사분 두 분께 집으로 오셨다. 씽크대를 살펴보시고 수납장 아래 배관을 보시더니 씽크대쪽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씽크대 아래 배관이 너무 낡고 부식되었다면서 집 관리를 너무 방만하게 했다며 난데없이 질타를 하셨다. 아니 내가 배관 관리까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곳에서 물이 샌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러면서 이제 아랫집과 두 집이 알아서 하라면서 일장 연설을 하고 집을 떠나셨다. 민원처리를 도와주러 오신 것인지 귀찮음을 해결하러 오신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7-8년을 살면서 층간소음으로도 아랫집과 얼굴을 붉힌 적이 한 번도 없을정도로 잘 지내왔다. 종종 남편은 과일을 사서 아이를 데리고 가 인사를 드리며 아이가 있어서 시끄럽지는 않냐고 여쭈었고 아랫집 할머니는 '애들이 다 그렇지' 하시며서 괜찮다고 하셨더랬다. 하지만 우리집의 어딘가로부터 물이 새고 급기야자신의 집 천장에 물이 새고, 그것이 주말동안 더 번지자 넉넉하게만 보였던 할머니도 예민하게 돌변하셨다.
민원의 어려움이라는 것이 상대방의 인격 때문만이 결코 아님을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결국 금요일에 미리 기민하게 예약을 잡아두었던 누수업자 분이 월요일 11시 반에 도착했고, 그분은 이 지역에서 못잡는 누수도 결국에는 다 잡아주었다는 블로그 후기 답게 빠르게 누수를 잡아내셨다. 원인은 보일러였다. 보일러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보일러에서 새는 물이 다용도실 바닥의 틈으로 누수가 되었던 것이다. 누수업자 사장님은 물길을 만들어 보일러에서 떨어지는 물이 수채구멍으로 바로 떨어지도록 비닐로 길을 내어 조치하셨다. 나의 요청으로 바닥의 틈도 방수처리를 하여 메꾸어주셨다.
얼른 보일러 AS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일러 누수를 알리고 빠른 방문을 요청드렸다. 다행히 오후 3시경이 되자 보일러 기사님이 방문하셨다. 보일러 배관 사이의 링이 부식되어 그 사이로 물이 새는거라고 하셨다. 수리는 10분 정도로 빠르게 끝났고 누수의 원인을 말끔히 다 제거했다. 4일만의 일이었다.
다음 문제는 도배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콘크리트가 물을 머금고 있으므로 벽지를 뜯어내고 최소 한달은 말린 후에 도배를 해야 한다고 누수업자 사장님은 알려주셨다. 아랫집 할머니께서 자신이 인테리어를 했던 집에서 시공을 맡기고 싶어하셔서, 그럼 그 곳 전화번보를 알려주십사 하고 전화를 드렸다. 알겠다고 하셨지만 종일 연락이 없으셨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다시 할머니께 연락을 드려 보험 처리 등에 필요하고 일정을 조율해야 하니 도배업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재차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지금은 밖이라서 정신이 없으니 이따 집에가서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도배업자는 내일 방문하기로 했으며 언제올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이제 내가 신경을 꺼도 되는 일인가. 내 선에서 할 일은 다 끝난 것인가. 끝날때까지 끝난것 같지 않은데... 아무튼 나도 이제 이 지난한 누수사건에서 그만 신경을 좀 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