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랑하는 아들의 생일이다.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 7시부터 진통이 와서 한 시간 반을 차로 달려 서울로 다니던 산부인가로 가서 다음날 아침에 아이를 낳았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라 그런지 시간까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진통을 한지 22시간 만에 낳은 걸 기억하고 있는 거 보니 새벽 5시경에 낳았나 보다.
첫째 딸아이는 자궁문이 10센치가 다 열렸지만 아기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해서 급하게 수술을 해서 낳았다. 그야말로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수술실로 들어간 게다. 아기를 낳을 때는 온 몸의 뼈 마디마디가 늘어난다는데, 마디 뿐만이 아니라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열리는 기분이었다. 아마 자궁문만 열릴 수는 없는 노릇인가보다.
그렇게 첫 아이였던 딸을 낳고 나서는 산후풍으로 아주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한여름에도 발이 시려워서 집 밖을 나갈 수도 없었고 마트에 가는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할 수가 없었다. 뼈 마디마디에 한기가 들어 견딜수가 없는 시간이 아주 길어졌다.
다행히 대전에 있는 한 침술사로부터 3번 치료를 받고 나오는데 발에 처음으로 온기가 돌았다. ‘아..내 발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를 출산 후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를 가졌다.
둘째 아이는 제왕절개를 하고싶지 않았다. 그 이유로 첫째는 앞으로도 아기를 더 낳을 수도 있고 더 낳고 싶다는 생각에서였고, 두 번째는 수술로 인한 몸 회복이 너무 되지 않아서였다. (사람마다 회복 속도와 수술의 영향은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어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곳을 알아보았고 ‘메디플라워’라는 병원에서 나는 둘째 아이를 낳았다. 지금도 내 인생의 잘 한 일 중 하나는 둘째 아이를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은 일이다.
자연주의 출산은 관장, 제모, 내진을 하지 않고 아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산사와 의사가 함께 출산 시 옆에 있어주는 것도 이 병원을 택한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둘라’라는 아기를 낳을 때 옆에서 도와주고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을 둘수도 있지만 나는 남편이 그 둘라 역할을 충실히 잘 해주었다.
이 병원에서는 출산 전에 교육도 몇 번 받아야 해서 남편이 간혹 이런 것까지 받아야 하냐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교육을 위해서는 왕복 3시간에 교육시간까지 치면 주말의 5시간을 보내는 셈이었다.) 산후에 몸 회복이 빠른 것을 보고는 남편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워 하는 듯 했다.
아기를 낳던 날 아기를 낳자마자 내 배 위에 올려주셨고 조금 기다렸다가 아빠가 탯줄을 자르게 해주시는 것도 좋았다. 아기 아빠가 상의를 벗은 채 갓난아기를 안고 서로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았다. 가족실에서 네 살짜리 딸아이도 함께 출산의 장을 함께 했는데 딸아이는 3-4시간 정도 진행되었던 마지막 산고동안 자지도 않고 내 머리맡에 앉아 내 손을 한번도 놓지 않고 꼬옥 잡아주었더랬다. 나중에 딸아이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무섭지도 않고 엄마가 힘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온 가족의 노력과 정성으로 태어난 둘째 아이가 12번째 생일을 맞았다. 아침에 느즈막이 과일 샐러드와 수제딸기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아들은 아침부터 최애 메뉴 중 하나인, 어제 미리 포장해서 준비해 두었던 뼈 해장국으로 생일 축하를 시작하였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볼링을 치러 갔다. 중학교때 볼링을 1년간 배운 고1짜리 딸아이는 자세도 점수도 꽤 안정적이었다. 그에 비해 볼링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 아들은 아직 포즈도 점수도 조금 엉성하지만 그새 많이 자랐는지 집중력도 점수도 부쩍 좋아졌다. 나 역시 거의 매일 운동을 다닌 덕분인지 팔의 힘이 좋아져서 100점이 넘는 점수를 기록했다. 남편이 공을 던지는 힘이 좋아졌다고 평소 잘 하지 않는 칭찬을 했다.
볼링을 치느라 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점심식사를 위해 아들이 먹고 싶다는 짬뽕집을 향했다. 아쉽게도 휴무였다. 동네에 가본적은 없지만 남편이 종종 들른다는 중국집으로 갔다. 입구에 ‘화룡점정’을 꿈꾼다는 표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브레이크 타임이 걸릴만한 2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홀은 가득 차있었고, 그 덕분에 오붓한 룸에 들어가서 온 가족이 둘러 앉을 수 있었다. 물잔을 가득 채워 오늘의 생일을 한 번 더 축하한 후 삼선짬뽕 곱빼기와 탕수육과 잡채밥을 시켜 함께 나누어 맛있게 먹었다. 근래에 먹은 중국 음식 중에 가장 깔끔하고 만족스런 맛이었다.
생각해보니 아들을 가진 임신기간에는 유독 입덧이 심해 짬뽕 말고는 당기는 음식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나를 데리고 자주 중국집으로 향하였다. 뱃속에서 먹은 음식은 태어나서도 좋아한다더니 둘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칼칼한 음식을 좋아했고 유독 짬뽕을 좋아했다. 그리고 생일날에도 역시 ‘완뽕’을 해주었다.
성경에 보면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 자녀라고 생각하고 살 때가 많은 데 이 아이는 사실 하나님의 영의 자녀이다. 나에게는 잠시 맡겨진 것 뿐이고 나는 청지기의 직분으로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해주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선택의 원리를 잘 가르쳐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삶의 중요한 선택들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삶이 100만 배쯤은 더 풍요롭고 행복해진 나는, 아들이 존재 자체로 내 삶에 선물로서 와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7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동안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싶다.